▲푹풍이 불던 다음날 아침 여전히 풀잎이 누울 정도로 거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거칠게 몰아치는 태풍을 집 주변의 산과 나무들이 보호해 주었습니다.
송성영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없었고 작은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조차 없는 바닷가 산속 외딴집에는 우리 세 가족과 온통 비바람뿐이었습니다. 거친 파도 소리뿐이었습니다.
큰 비로 논두렁이 무너질 것을 대비해 물꼬를 적당히 터놓고 다락방에 기어들어 왔습니다. 요즘 풀밭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그나마 태풍 덕분에 겨우 일손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저녁마다 나섰던 바다낚시도 접었습니다. 전날 밤새 작업에 시달렸던 몸뚱아리를 울렁울렁 바람 먹은 장판에 눕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자다 깨다 했습니다.
집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와 보니 태풍은 짙게 깔린 어둠을 온통 휘젓고 있었습니다. 잠시 마당 한가운데 서 있다 보니 오롯이 대자연 앞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은 도서관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인상이는 대낮부터 엄마의 눈총에 붙들려 작은 도서관에서 뭔가 책을 펴놓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고 그 옆댕이에서 재봉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지난해 태풍 때도 그러했듯이 부지런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집에 피해가 없도록 무사하게 해달라고.
집 밖에서 거친 비바람에 몇 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문득 산 짐승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맨 몸으로 태풍과 맞서야 하는 그들은 우리보다 더 강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늦은 아침. 비는 점점 그치기 시작했지만 바람은 여전히 거칠게 불어대고 있었습니다. 논 물꼬의 이상 유무를 살펴보고 무성한 풀들과 몸을 비벼대고 있는 밭작물들 또한 별 일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할 일없이 빈둥거리다가 작은 도서관에 들어가 보니 아내와 인상이가 전날과 똑같은 위치에서 제 할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상아! 우리 바다에 나가자 비는 그쳤지만 파도는 셀겨. 너 태풍 부는 바다에 가 본적이 없지?""인상이 이제 금방 책상에 앉았는데 한 시간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되나?"시험공부에서 해방되고 싶은 인상이 녀석이 바다로 나가자는 말에 두 귀를 쫑긋 세우자 아내가 시간을 늘려 놓습니다. 할 일 없이 기다리고 있기가 따분해 모처럼 만에 스마트폰을 컴퓨터에 연결해 인터넷을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이번 장맛비로 우려했던 4대강 사업의 재앙이 현실화되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들만의 하나님은 죽기 살기로 믿어가며 눈앞에 빤한 재앙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들. 그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이명박 장로는 하나님의 하나만 알고 있지 삼라만상의 모든 것,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과 하나님은 둘이 아닌 하나, 그 존재가 바로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들 말대로 하자면 모든 것을 다 내려다보고 계신다는 하느님을 짓 까뭉개고 있었으니 그 재앙은 이미 예견된 것입니다.
눈에 빤히 보이기 시작하는 4대강의 재앙을 그들은 또 뭐라 변명할까요?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태풍 핑계를 대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태풍이 곧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위력 중에 하나임을 까마득히 모르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