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떠돌며 옷값만 1만 달러... 그는 사건 해결사

[서평] 리 차일드 <61시간>

등록 2012.06.15 11:10수정 2012.06.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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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시간> 겉표지 ⓒ 오픈하우스

리 차일드의 2010년 작품 <61시간>은 '잭 리처 시리즈'의 14번째 편이다. 잭 리처는 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키 195cm에 몸무게 113kg의 거한이다. 리 차일드는 왜 이런 거인을 만들었을까?

미국의 미스터리 마니아 오토 펜즐러가 엮은 책 <라인 업>에서, 리 차일드는 잭 리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준다. 우선 재미있는 것은 잭 리처(Jack Reacher)라는 이름이다.


리 차일드가 주인공의 이름을 만들지 못해서 고민할 때, 부인과 함께 수퍼마켓에 들렀다. 그가 수퍼에서 높은 선반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잘 꺼내들자 부인이 말했다.

"당신, 리처(물건을 집어주는 사람)로 취직해도 되겠어."

리처가 괴력의 거인이 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작가는 일부 범죄소설에서 형사나 탐정이 나약한 인물로 묘사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내 악전고투하다가 막판의 승리로 전세를 뒤집는 구성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적들과 대등하게 맞서는 강한 캐릭터가 필수적이다. 작가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라, 골리앗 대 골리앗의 대결을 원했던 것이다. 잭 리처는 이렇게 탄생하게 된 인물이다.

떠돌이 여행자 잭 리처


시리즈의 첫 작품인 <추적자>는 1997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에서 리처는 군에서 제대한 후에 혼자서 미국전역을 여행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런 모습은 15년이 지난 <61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처는 가방도 없고 짐도 없다. 여분의 옷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옷을 사서 입다가 사나흘이 지나면 버리고 새 옷을 구입해서 입는다. 1년에 옷값으로 1만 달러 가량을 쓴다. 누군가가 "왜 옷을 계속 사서 입냐?"라고 물으면 리처는 "그게 합리적이니까"라고 말한다.

리처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을 싫어해서 승용차도 없다. 그래서 버스 또는 기차로 미국을 여행한다. <61시간>에서 리처는 한 관광버스에 편승해서 러시모어산을 향해 가다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 때문에 사우스다고타 주의 작은 마을 볼턴에 머물게 된다. 눈보라와 혹한 때문에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다.

마을에는 리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른 요소도 있다. 마을 외곽에 골칫거리인 폭주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얼마 전에 이들이 마을에서 마약으로 보이는 물건을 거래했다. 마침 그 장면을 재닛 솔터라는 이름의 노부인이 목격했고,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법정에서 증언하겠다고 한 것이다. 솔터 부인의 도움을 받아서 폭주족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다면 이번 기회에 그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마약을 취급하는 폭력조직이 재판 전에 목격자를 없애버릴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도 암살자 한 명이 솔터 부인을 노리고 마을로 들어오는 중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여기에 흥미를 느낀 잭 리처는 마을에 남아서 솔터 부인을 돕기로 마음을 정한다.

작은 마을의 거대한 범죄

잭 리처의 신분은 '떠돌이'다. 많은 범죄소설의 주인공들이 한 곳에 정착해서 활동하는 형사 또는 탐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리처는 상당히 예외적이다. 그는 미국을 떠돌아 다니며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입도 없다. 그런데도 옷값으로만 1년에 1만 달러를 쓸 정도면 군 생활하면서 꽤 많은 돈을 모아둔 모양이다.

리처는 거구의 사나이지만 일반인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만한 덩치의 사내가 거칠고 불량하다면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겠지만, 대신 깍듯하고 상냥하다면 매력적으로 비친다.

이것은 리처가 가진 원칙과도 통한다. <61시간>에서 누군가가 리처에게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던 거예요?"라고 묻는다. 리처는 "사람들이 세상을 잘못되게 하는 게 싫었네"라고 대답한다.

리처가 행동하는 동기는 위 대답에 담겨있을 것이다. 리처 자신도 온갖 문제를 끌어안고 있지만, 이 세상 역시 옳지 않고 부당한 일로 가득 차 있다. 독자들은 그런 문제들이 책 속에서 통쾌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리처는 바쁜 독자들을 위해 그런 일을 대신해주는 인물이다. 매력적인 골리앗이다.

덧붙이는 글 | <61시간> 리 차일드 지음 / 박슬라 옮김. 오픈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61시간> 리 차일드 지음 / 박슬라 옮김. 오픈하우스 펴냄.

61시간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오픈하우스, 2012


#61시간 #리 차일드 #잭 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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