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 버크홀즈(Jacob Birkholz)몬태나 주 출생인 제이콥은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부터 라이딩을 시작했다. 버지니아 주까지 남하한 후 나와 같은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타고 있다. 여행 초반 하루 100마일씩 달렸다는 그는 이제 일주일에 한번씩 쉬어주는 요령을 터득했다.
최성규
허리를 삐끗해 통증이 남아있는 그에게 침 치료를 제안했다. 상부 요추 주위 척추기립근에 통증이 있고, 허리를 끝까지 구부릴 수 없는 상태. 한의학적으로 근육·인대·건의 문제는 경근병(經筋病)에 속하는데, 상하접경의 원칙에 의거해 수태양소장경의 후계혈(後谿)과 족태양방광경의 찬죽혈(攢竹)에 침을 놨다. 그 상태로 동기법(動己法 : 통증 부위를 자발적·수동적으로 운동시킴)을 시행한다.
처음 접하는 한방 치료와 궁합이 맞는지 예상보다 상태가 호전됐다. 신기해하며 허리를 여러 차례 굽혀보던 데이빗 아저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찰리(Charlie)도 좀 봐줄 수 있겠어?" "No problem." 문제는 없다. 이내 소설 속 호걸같이 우락부락한 찰리가 왔다. 사실상 종합병상이나 다름없었다. 188/80의 높은 혈압이 나타나 간이혈압계까지 지니고 다닌다. 어깨의 회전근개(Rotator cuff : 어깨를 회전시키는 4개의 힘줄 다발)는 엉망이며 오른 팔꿈치 뼈는 젊을 적 부서졌다.
3년 1개월간의 공중보건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진맥과 근육 테스트. 오른쪽 어깨관절은 외전 외회전 굴곡 운동시, 왼쪽 어깨관절은 내전 내회전 신전 운동시 문제가 있다.
혈자리를 하나씩 취하며 치료를 하니 그 전보다 관절의 움직임이 개선됐다.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한데 일회성 치료가 아쉬울 뿐이다.
여기 놋 카운티(Knott county)에는 마땅한 병원이 없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마을 보건소는 시원찮고, 그나마 가까운 병원은 16마일가량 떨어져 있다. 종합병원은 렉싱턴(lexington)까지 약 120마일을 가야 한다. 의료 접근성이 유난히 떨어지는 켄터키 주는 찰리처럼 아파도 참아야 하는 환자들이 꽤 많다. 카운티에 유일한 카이로프랙터(chiropractor)에게 환자가 몰리는 이유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사라진 찰리는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손에 술병 하나를 들고 말이다. 문샤인(moon shine). 그의 말에 따르면 1790년대부터 시작된 켄터키 주 전통의 가양주(家釀酒)다. 주재료는 옥수수인데, 공장에서 만들면 이 맛이 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세 명의 사나이가 모였다. 제이콥이 빠진 자리는 휘영청 밝은 달빛이 메운다. 양주잔 속으로 문샤인이 쪼르르 빨려 들어간다. 달을 마신다. 독하다. 그러나 맑다. 약간의 탄성과 함께 내뱉는 숨결은 뜨겁다.
윤오영의 수필 <달밤>의 정취가 켄터키 시골에서 펼쳐졌다. 총각 김치 대신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고, 농주 한 사발 대신 문샤인을 들이키고 달을 바라보았다.
"음 달이 참 밝군."6월 6일Hindman, KY - Booneville, KY65 mile ≒ 104.6 km회감(回甘). 녹차를 입에 머금었을 때 처음에는 쓰지만 나중에 올라오는 단맛. 차의 깊은 향미처럼 곱씹을수록 매력이 더해지는 장소가 있다. 데이빗 아저씨가 운영하는 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다. 25달러의 저렴한 숙박비로 샤워·세탁·잠자리·두 끼의 푸짐한 식사가 제공된다. 인간미 넘치는 교감은 덤이다.
정들자마자 이별이다. 아저씨가 차려주는 마지막 식사가 눈앞에 있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도 배가 고팠는지 바닥에 놓인 먹이를 오물오물 먹어치웠다.
"여행 끝나면 여기로 돌아와."고개는 끄덕이지만 우리는 안다.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기약할 수 없는 미래를 우리는 불확실성으로 긍정한다.
동지들의 체취... 재회를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