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고구려 노래, 참된 사랑 일깨우네

[노래의 고향 20] 강릉의 <명주가>

등록 2012.10.24 20:40수정 2012.10.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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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의 '정읍사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망부상(望夫像). 백제 노래 <정읍사>의 아내를 형상화한 동상이다. ⓒ 정만진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애잔한 법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생애를 두고 내내 그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노래 또한 그와 같아서 '부전가요(不傳歌謠)'에 깃들어 있는 사연들은 후세인들의 가슴까지도 서늘하게 한다.

전해지는 <정읍사>와 비슷한 부전가요 <선운산>


<정읍사>는 지금 전해지는 백제 유일의 노래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애절한 마음이 간결하게 묘파되어 있어 21세기의 현대인들도 가사를 읽으면 저절로 동병상련에 젖게 된다.

<선운산>은 <정읍사>와 엇비슷한 사연을 가진 백제의 부전가요다. 군대에 뽑혀간 남편이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선운산(禪雲山)에 올라 멀리 집으로 오는 길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애절한 망부(望夫)의 노래였다. 하지만 사연만 <고려사>에 남아 있을 뿐 곡조도 가사도 전하지 않아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역시 산과 강은 우리 민족에게는 일상이 아니었던 듯하다. 줄곧 들판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으니 아무래도 산과 강은 평화로운 삶에 굴곡을 드리우는 존재였을 터이다. 요즘 흔히 방장산이라 부르는 방등산(方等山)도 그렇게 역기능을 한 곳이었다.

남편을 원망하고 풍자한 <방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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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청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사진으로 보는) 경포호. 강릉을 대표하는 호수. 전설에 따르면 규수는 연못에 사는 고기에게 먹이를 주며 길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거대 호수는 제격이 아니므로 경포호를 <명주가>의 무대라고 할 수는 없겠다. ⓒ 강릉시

방등산은 신라 후기 이후 도적들이 들끓는 우범지대였다. 방등산 도적들은 민가를 짓밟으면서 부녀자들을 납치하고 겁탈했다. 한 여인도 도적들에게 잡혀갔는데, 아무리 간절하게 기다려도 무정한 남편은 아내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부전가요 <방등산>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남편을 원망하고 풍자하여 부른 노래였던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면 아마 지금도 큰 인기를 끌고 있을 법하다.


<지리산>은 도미 설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부전가요다. 미모와 교양을 갖춘 구례현의 한 여인을 백제의 왕이 범하려 했다. 하지만 여인은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왕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저항했다. 노래는 널리 퍼져 수많은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정절만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노래였으니 일상적으로 수탈에 시달려온 민중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을 것이야 자명한 일이었다.


아름답고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한 <명주가>



<선운산>, <방등산>, <지리산>은 모두 산을 지리적 배경으로 거느렸고, 부부 사이의 애증을 노래한 백제의 부전가요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지만, <명주가>는 소재도 주제도 전혀 달라 오히려 더욱 주목을 끈다. 게다가 이 노래는 고구려의 부전가요다.

한 소년 서생이 명주(강릉)에서 공부를 하던 중 양가의 규수와 사랑에 빠졌다. 두 선남선녀는 뒷날을 약속하였고, 소년은 과거 공부를 하러 서울로 떠났다. 무릇 모든 서사는 갈등이 있어야 사건에 얽히는 법, 규수의 부모는 딸에게 머잖아 혼례를 치르도록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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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청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사진으로 보는) 향호. 향호 역시 <명주가>의 지리적 배경은 아니다. <명주가>에 등장하는 연못은 양가의 규수가 고기를 기르던 작은 연못이고, 게다가 고구려가 남긴 배경설화이므로 지금 찾을 길은 없을 터이다. ⓒ 정만진

처녀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글로 적어 자신이 고기를 길러온 연못에 던졌다. 문득 고기가 물 위로 솟구쳐 올랐다. 고기는 편지를 입에 물고 물 속으로 사라졌다.   

서울의 서생은 부모에게 생선을 대접하려고 시장에 나갔다. 괜찮아 보이는 고기가 있어 사서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배를 가르자 정인(情人)의 눈물 묻은 편지가 나왔다.

서생은 그 길로 명주를 향해 내달렸다. 과거고 뭐고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규수의 집에 당도하니 혼례식 일보 직전이었다. 서생은 편지를 규수의 부모에게 보이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바로 <명주가>였다.

규수의 부모는 '어찌 이것이 하늘의 명령이 아니겠나.'하고 탄복, 딸과 서생을 평생의 반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당시 명주는 고구려 땅이었으니, 만약 <명주가>의 가사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지금 고구려가 남긴 감동적인 사랑 노래 한 곡을 뜨겁게 부를 수 있으리라.
#정읍사 #명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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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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