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우리도 사람입니다, 물건파는 사람!"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실패기⑧] 협박과 비아냥 일삼는 진상 손님

등록 2013.08.01 09:42수정 2013.08.0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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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동전문잡지에서 일했던 나. 지난해 가을 한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그리고 올해 봄 한 대기업의 대리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이 글은 잠입취재기가 아니다. 한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기일 뿐이다. 또한 두 곳 모두 스스로 그만뒀기에 취업 실패기이기도 하다. 글에 나오는 인명은 모두 가명임을 밝힌다. - 기자 말

명품을 팔긴 했지만 우리 매장은 '럭셔리'하기 보다는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강했다. 오며가며 들르는 단골이 많았다. 어떤 고객은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다고 즐거워하는가 하면, 지방에 있는 아들에게 차를 사줬는데 딸도 사달라고 할까봐 걱정이라며 고민을 털어놓는 이도 있었다. 형편은 달라도 사는 얘기를 허물없이 나누는 계모임 분위기가 은근히 재미났다.

또한 고객들은 대체로 정중했다. 옷 수선을 맡겼던 한 60대 여성은 수선비가 없다고 하자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기도 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혜수 언니는 "저런 손님만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세상사가 어디 우리 입맛대로만 굴러갈까. 손님도 마찬가지다.

고가의 제품을 팔다보니 '까다로운' 고객들이 많았다. 핸드백에 스크래치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건 평범한 수준이다. 셔츠 옷깃에 들어간 줄무늬 색깔이 연하다고 타박을 놓는 고객도 있었다. 몇 달 전에 사간 넥타이를 가져와 당연하다는 듯 다시 다림질해서 포장해달라는 소위 '진상' 고객들에게도 웃으면서 포장을 해줬다. 

컴플레인 고객 집을 나서며 눈물 한 방울

 흰 셔츠에 뭐가 묻었으니 다른 상품을 보내달라는 고객. 그 고객은 새 물건을 들고 집으로까지 오라고 했다.
흰 셔츠에 뭐가 묻었으니 다른 상품을 보내달라는 고객. 그 고객은 새 물건을 들고 집으로까지 오라고 했다.sxc
그 중 잊지 못할 기억이 몇 있다. 우리 매장에 없던 흰 셔츠를 다른 매장에서 받아 고객의 집으로 택배를 보낸 적이 있다. 고객이 전화를 해왔다.

택배로 받은 상품에 뭐가 묻었으니 다른 상품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다시 다른 매장에서 새상품을 받았다. 고객은 상품을 직접 확인하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선 직접 집으로 가야 했다. 배달은 당연히 '막내'인 내 몫이었다. 직접 배달까지 가는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단 몇 시간이라도 매장에 서 있지 않고 한낮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버스를 타고 1시간여 만에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고객이 내놓은 상품은 한 부분이 약간 구겨져 있었다. 고객은 뭐가 묻은 걸 매장에서 손으로 빨아서 보낸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저간의 상황은 모르나 내 눈에는 드라이클리닝 한 번 맡기면 될 것 같아 보였지만, 그냥 가지고 간 새 상품을 건넸다. 실 한 올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상품 앞뒤를 꼼꼼하게 본 고객은 약간 먼지가 묻은 듯한 부분을 찾아냈다.

그는 "언니가 볼 때도 문제가 있죠?"라며 내게 동의를 구했지만 난 즉답을 피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나라 밖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동안 여러 곳의 물류창고를 거친다. 이 상자에서 저 상자로 여러 번 포장됐다 벗겨지기를 반복한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는 상품이 어찌 한 점 허물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고객님의 기대치가 높은 것이에요, 드라이클리닝 한 번 맡기면 될 것 같아요'라는 말이 자꾸 목구멍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결국 내 선에서 해결 못하고 혜수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고객이 건네받은 전화기를 통해 혜수 언니가 계속 "죄송하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고객은 "정말 죄송해야 할 일"이라고 응수했다. 긴 통화 끝에 고객이 매장에 와서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기로 하고 나는 양손에 쇼핑백 두 개를 든 채 다시 매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으로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보였다. 속으로 '맘은 개떡 같은데 날씨는 왜 이리 좋냐'고 툴툴대는데 갑자기 뺨으로 눈물 몇 방울이 흘러내렸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물건 파는 사람!"

 "우리도 사람입니다. 물건 파는 사람이라고요! 반말 막 하지 마세요"라던 점장. 그가 달라보였다. 그래, 우리도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물건 파는 사람이라고요! 반말 막 하지 마세요"라던 점장. 그가 달라보였다. 그래, 우리도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김지현

또 다른 기억은 매장 점장과 함께 일한 어느 날의 한 장면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우리 점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은 다른 걸 떠나서 일 편하게 해주는 사용자를 좋아하게 마련인데 우리 매니저는 일을 별로 안 했다. 직원들과 거의 똑같이 출근하는 다른 매장 매니저들과 달리 우리 매니저는 오후 늦게야 얼굴을 내비치곤 했다. 매장에 와서도 일은 거의 혜수 언니에게 맡겼다. 혜수 언니가 쉬는 날 함께 일할 때도 매니저는 점심시간에 출근했다. 그만큼 내가 고달파지는 것이니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 그가 달리 보인 날이다. 한 부부 고객이 상기된 얼굴로 찾아왔다. 아내는 백화점에서 카드 6개월 무이자 행사를 하면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전화가 오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매장에는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제품들이 많았다. 보통 사람들이 일시불로 결제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액수다. 백화점에서는 이런 이들이 부담 없이 카드를 긁으라고 정기적으로 6개월 무이자 행사를 진행한다.

그 행사 역시 직원들은 언제 하는지 몰라서 고객들이 물으면 연락처를 받아 따로 알려주곤 했다. 그 고객은 몇 주 전에 점장과 통화하면서 그날 행사에 들어간 걸 알았지만 그날은 못 온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다음 행사 때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항의의 요지였다.

우리가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점장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 정도 사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아내가 계속 따졌다. 점장이 여차저차 했다는 설명을 하자 남편이 끼어들었다. 그는 반말로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쉰이 훌쩍 넘은 점장이다. 열 살은 넘게 어려 보이는 그에게 막말을 듣다가 참지 못한 점장이 소리쳤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물건 파는 사람이라고요! 반말 막 하지 마세요."

전율이 느껴졌다. 아, 우리도 속으로만 끙끙 앓지 말고 저렇게 '당신의 말 때문에 내가 아픕니다'라고 얘기해도 되는구나. 그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기뻤다. 고객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던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로만 응대하기에는 우리들도 감정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점장이 강하게 얘기하자 부부 고객도 움찔했다. 아내가 열 받은 남편을 진정시키면서 그만 가자고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선 영수증에 내 이름을 적는다.

"다음번 행사 때도 연락 안 해주면 저 부부, 바로 고객상담실로 올라갈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고객상담실서 눈물 쏟은 매니저 "젊었을 때 다른 일 알아봐"

 '까칠한 고객'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 눈물이 흘렀다.
'까칠한 고객'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 눈물이 흘렀다.김지현
부부는 마지막까지 협박조로 쐐기를 박고선 매장을 떠나갔다. 도대체 고객상담실에 가면 어떻게 되기에 저렇게 기세등등할까 의문이 들었다. 며칠 뒤 나는 고객상담실에 다녀온 한 매니저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그는 신발매장에서 일했다. 한 고객이 신발을 사간 후 두 번 신발을 바꿔갔다. 세 번째 다시 바꾸러 온 고객이 찾는 신발의 사이즈가 없어서 고객은 환불을 요구했다. 매니저는 환불을 하려면 처음 구매하면서 받았던 백화점 상품권을 반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고객은 항의했다(환불할 때는 당연히 사은품으로 받은 상품권을 반납해야 한다). 그러면서 고객은 매니저가 불친절하다고 지적했다. 고객은 퇴근 후까지 매니저에게 전화로 항의를 했고 두 사람은 옥신각신 통화를 했다고 한다.

다음날 고객은 고객상담실로 찾아가 매니저가 통화할 때 욕을 했다면서 녹음파일도 있다고 소리쳤다. 불려 올라간 매니저는 자신은 절대 욕을 한 적이 없다고 녹음한 게 있으면 들어보면 알 거 아니냐며 해명을 하는데 서러워 눈물이 자꾸 났단다. 삿대질하는 고객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40대 여성의 모습이 그려졌다. 가슴이 아렸다. 결국 고객상담실의 중재로 그 고객은 상품권을 반환하지 않는 걸로 끝이 났지만 1만 원, 5000원짜리 상품권 때문에 한 노동자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 언니는 말했다.

"백화점 일이 이런 것 때문에 정말 하기 힘들어. 나도 한 달만 있다가 그만 두려고. 좀 더 젊었을 때 다른 일 알아봐요."

서비스일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으로 상처받는 일이 많다. 웬만한 강심장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고객에게 "우리도 사람"이라고 외치는 우리 점장은 강단이 있어서 낫지 싶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고객의 '짜증'을 그대로 받는 사람들

 명품을 팔긴 했지만 우리 매장은 '럭셔리'하기 보다는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강했다. 오며가며 들리는 단골이 많았다(이 사진에 나오는 백화점과 브랜드는 기사 내 언급된 내용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명품을 팔긴 했지만 우리 매장은 '럭셔리'하기 보다는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강했다. 오며가며 들리는 단골이 많았다(이 사진에 나오는 백화점과 브랜드는 기사 내 언급된 내용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연합뉴스

앞서 소개한 부부 고객이 다녀간 몇 시간 후였다. 한 여성 고객이 트렌치코트를 들고 왔다. 소매 품을 줄여달라고 맡겼는데 수선한 제품을 보니 바느질한 자국이 다 보인다면서 얼굴을 붉혔다. 수선집에서 처음부터 그럴 수 있다고 말을 했었다고 확인을 해주긴 했지만 고객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객은 "몇백만 원짜리 핸드백 판다고 백만 원짜리 코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나 보죠?"라고 쏘아붙인 뒤 바로 환불해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가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부부 고객을 응대하면서 진이 다 빠져버렸는지 점장은 별다른 얘기도 못하고 바로 환불 처리를 해줬다. 이미 어깨와 소매 품을 줄여서 재판매가 불가한 트렌치코트는 바로 창고행이 돼버렸다.

서슬 퍼런 고객들 앞에서 그렇게 우리는 기가 죽었다. 어느 날, 직원 엘리베이터 앞 포스에서 일하는 언니들끼리 고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계절은 좋은데 왜 다들 신경질인지 몰라." 고객들의 온갖 짜증을 다 받아낸 그들의 목소리는 우울했다. 그 목소리와 함께 우리들의 마음도 자꾸 아래로 가라앉았다.
#감정노동 #서비스직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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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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