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병원과 친정, 우리집을 오가던 어느 날. 혜수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임아, 알바 좀 해줘라"라고... 언니의 목소리는 간절했다(사진 내 나오는 백화점은 기사 내 언급된 백화점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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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와 백화점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에필로그'가 있다. 엄마 병원과 친정, 우리집을 오가던 어느 날. 혜수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임아, 알바 좀 해줘라"라고 말하는 언니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사정은 이랬다. 새로 뽑힌 직원이 한 달 만에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카카오톡으로 매장 점장에게 그만두겠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그 바람에 언니는 한 달 가까이 쉬지 못하고 일해 간 수치가 올라갔다. 무릎 염증도 재발했단다. 병원에서는 일하지 말고 무조건 쉬라고 한단다. 전화 통화만으로도 언니의 힘든 일상이 그려졌다.
언니는 직원을 새로 구할 때까지라도 아르바이트를 해달라고 했다. 전 세계 매장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우리 브랜드는 아르바이트도 그 시스템을 아는 사람밖에 쓰질 못한다. 그래서 알바를 구하기도 힘들다. 예전에 일했던 직원들에게 연락을 하다가 사람이 없자 혜수 언니는 내게까지 전화를 해온 것이었다.
집안 사정도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여서 나는 1주일에 2~3일씩 매장에 나가기로 했다. 2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매장, 신상 핸드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새 판매원 모드로 돌아가 한 번씩 들어보고 소재들을 살폈다. 주변 매장 언니들도 반갑게 맞아줬다. 또다시 아침 커피타임의 일원이 됐다.
단골들도 여전했다. 그들이 전해주는 VIP라운지 커피의 달콤함도 그대로였다. 단 하나, 매출만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혜수 언니는 "빵 치고"(판매액 0원) 간 날도 많다고 울상을 지었다. 내가 있어서 매출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언니의 속앓이는 좀 나아질 걸 생각하니 기뻤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드디어 새직원을 뽑았단다. 매일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혜수 언니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 역시 바라고 있던 바다. 그런데 마음껏 좋지는 않았다. 시원섭섭했다. 지하철에서 어르신한테 자리를 양보해 놓고도 앉아 있을 때의 편안함이 못내 잊히지 않아 자꾸 좌석을 돌아볼 때처럼 말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쉬웠다.
다시 '고객님'이 됐지만... 아줌마 일자리는 빤해 아침 커피타임 때 앞 매장 진경 언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일자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라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당부다. 며칠 뒤 나는 내 일자리가 대체되는 걸 보면서 백화점을 나왔다. '그래, 세상에는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 많지, 그러니 내가 꼭 필요한 일도 많을 거야'라는 희망을 갖고서….
이젠 나는 '고객님'이 됐다. 막말을 해대는 사람 앞에서 "나도 사람입니다"라고 외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 사실이 기뻤다. 계속 '고객님'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몇 달 뒤 나는 다시 '고객님' 앞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다시 일을 구할 때는 꼭 주5일제 일자리로 가리라 마음먹었던 건 어디로 갔는지 주말에도 '고객님'을 외치고 있었다.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똥 같기에. 그에 비해 아줌마의 일자리는 빤하게 예측 가능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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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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