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돌보미 구하기보다 쉬운 것... '사표 쓰기'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실패기⑩] 판매왕 되기 항로에 켜진 빨간불

등록 2013.08.16 19:05수정 2013.08.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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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동전문잡지에서 일했던 나. 지난해 가을 한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그리고 올해 봄 한 대기업의 대리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이 글은 잠입취재기가 아니다. 한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기일 뿐이다. 또한 두 곳 모두 스스로 그만뒀기에 취업 실패기이기도 하다. 글에 나오는 인명은 모두 가명임을 밝힌다. - 기자 말

나는 슬슬 초보 판매원이 돼 갔다. 처음에는 접착제를 입에 바른 듯 잘 나오지 않던 '고객님' 소리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손님이 와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어색해하던 모습도 많이 나아져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걸 정도가 됐다. '판매 달인'의 길이 내게도 금세 열릴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인생의 걸림돌에 걸릴 때 더 일어나기 힘든 법. 판매왕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빨간불이 들어왔다. 백화점 근무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친정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어떤 차가 길을 건너던 엄마의 발을 밟고 갔다. 엄마의 발등 뼈는 으스러졌고, 바로 발에 심을 3개나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입원 2개월에, 3개월 동안은 발을 땅에 딛지 말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놨다.

엄마의 교통사고, 일상이 무너졌다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자 일상이 삐걱거렸다. 주말에 아이를 볼 사람이 없어 매장에 데리고 가기까지 했다. 아이는 매장 창고에서 낮잠을 잤다.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자 일상이 삐걱거렸다. 주말에 아이를 볼 사람이 없어 매장에 데리고 가기까지 했다. 아이는 매장 창고에서 낮잠을 잤다.신정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속담은 이럴 때 쓰나 보다. 엄마는 내가 마음 놓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한 든든한 '빽'이자 마지막 보루였다. 이 보루가 무너지자 나의 일상도 심하게 삐걱거렸다. 곧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오후 5시께부터 내가 집에 가는 오후 9시께까지 아이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몇 년 전 암수술을 하고 계속 야위어만 가는 친정아버지가 당신이 하시겠다고 나섰지만 아빠의 가녀린 팔을 보면서 선뜻 그러시라고 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주말이었다. 주말에도 일정이 많은 남편이 주말 내내 아이를 돌보는 건 불가능했다. 그동안 일주일이 어떻게 굴러갔는지 신기할 정도로 엄마의 빈 자리는 컸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것도 당장. 엄마가 병원에 있는 2~3개월 동안은 좀 일찍 퇴근하고 남편이 집을 비우는 주말에는 애를 매장에 데리고 나갈까도 생각했다.

실제로 엄마가 다친 주, 주말에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다. 남편은 출장을 갔다. 아이를 백화점 놀이방에 맡기면 몇 시간은 놀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과한 욕심이었다. 다섯 살 아들을 놀이방에 맡기고 온 지 30분도 안 돼 매장으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엄마를 찾는다고. 하는 수 없이 매장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에게 장난감을 안겼다. 아이는 반짝 관심을 보였다. 매장 한 구석에서 색칠 공부를 하고 자동차도 갖고 놀았다.


이제 일을 할 수 있겠구나, 마음을 놓는데 이번엔 낮잠이 문제다. 점심 때가 되자 아이는 눈꺼풀이 무거운지 눈을 껌벅껌벅한다. 그렇게 잠이 들면 좋으련만 낯선 곳이어서 그런지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그만큼 아이의 칭얼거림이 커졌다. 결국 아이를 업고 매장을 돌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하필 혜수 언니가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였다. 다행히 단골이어서 그런 괴기한 상황을 이해해줬다. 오히려 날 위로하기까지 했다.

등에서 잠든 아이를 매장 창고 안에서 의자 두 개를 붙인 채 재웠다. 점장도, 혜수 언니도 덮을 걸 찾아주고 잠에서 깬 아이에게 먹을 걸 주는 등 마음을 써줬다.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일할 수는 없었다. 내 마음도 불편하고 주변인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아이 돌보미 구하기보다 쉬운 것... '사표 쓰기'

 저임금 비정규직들의 근속 기간이 짧은 것은 사용자들이 쉽게 자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이 쉽게 그만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저임금 비정규직들의 근속 기간이 짧은 것은 사용자들이 쉽게 자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이 쉽게 그만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김지현

몇 개월간 저녁과 주말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다. 갑자기 사람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아이가 그와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했다. 그 일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사람을 쓰면 내 월급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일을 그만두는 게 낫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이 정리되는 몇 달 뒤에도 이 정도의 월급을 받는 곳을 찾긴 어렵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의 소리가 날 자꾸 집안으로 잡아 앉혔다.

저임금 비정규직들의 근속 기간이 짧은 것은 사용자들이 쉽게 자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이 쉽게 그만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보장되는 '밝은 미래'가 그들의 일자리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월급을 다 쏟아부어서 아이 돌보미를 구해 아등바등 일을 더 해봤자 내가 판매왕이 될 날은 요원해 보였다. 설사 판매의 달인이 돼서 월급 몇십만 원을 더 받아봐야 각종 직업병에 시달려 병원비에 털어 넣어야 할 판이다. 그럴 거라면 지금은 일을 때려치우고 집안을 돌볼 때다.

내가 그만두면 혜수 언니가 힘들어질 게 뻔했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얘기했다. 점장과 혜수 언니도 내 사정을 알아서 무작정 붙잡지는 못했다. 취업 포털에 채용공고를 냈다. 1주일 만에 사람을 구했단다. 세상에는 저임금 일자리가 많고, 그런 일자리라도 얻고 싶은 사람 역시 많았다. 새 직원은 백화점 경력이 많아서 나보다는 업무에 능숙할 것 같았다. 그나마 '혜수 언니에게 덜 미안하네…'라고 자조하면서 나는 그렇게 백화점을 나왔다.

사표 수리 후에도 이어졌던 백화점과의 인연

 엄마 병원과 친정, 우리집을 오가던 어느 날. 혜수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임아, 알바 좀 해줘라"라고... 언니의 목소리는 간절했다(사진 내 나오는 백화점은 기사 내 언급된 백화점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엄마 병원과 친정, 우리집을 오가던 어느 날. 혜수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임아, 알바 좀 해줘라"라고... 언니의 목소리는 간절했다(사진 내 나오는 백화점은 기사 내 언급된 백화점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sxc

하지만, 나와 백화점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에필로그'가 있다. 엄마 병원과 친정, 우리집을 오가던 어느 날. 혜수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임아, 알바 좀 해줘라"라고 말하는 언니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사정은 이랬다. 새로 뽑힌 직원이 한 달 만에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카카오톡으로 매장 점장에게 그만두겠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그 바람에 언니는 한 달 가까이 쉬지 못하고 일해 간 수치가 올라갔다. 무릎 염증도 재발했단다. 병원에서는 일하지 말고 무조건 쉬라고 한단다. 전화 통화만으로도 언니의 힘든 일상이 그려졌다.

언니는 직원을 새로 구할 때까지라도 아르바이트를 해달라고 했다. 전 세계 매장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우리 브랜드는 아르바이트도 그 시스템을 아는 사람밖에 쓰질 못한다. 그래서 알바를 구하기도 힘들다. 예전에 일했던 직원들에게 연락을 하다가 사람이 없자 혜수 언니는 내게까지 전화를 해온 것이었다.

집안 사정도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여서 나는 1주일에 2~3일씩 매장에 나가기로 했다. 2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매장, 신상 핸드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새 판매원 모드로 돌아가 한 번씩 들어보고 소재들을 살폈다. 주변 매장 언니들도 반갑게 맞아줬다. 또다시 아침 커피타임의 일원이 됐다.

단골들도 여전했다. 그들이 전해주는 VIP라운지 커피의 달콤함도 그대로였다. 단 하나, 매출만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혜수 언니는 "빵 치고"(판매액 0원) 간 날도 많다고 울상을 지었다. 내가 있어서 매출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언니의 속앓이는 좀 나아질 걸 생각하니 기뻤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드디어 새직원을 뽑았단다. 매일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혜수 언니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 역시 바라고 있던 바다. 그런데 마음껏 좋지는 않았다. 시원섭섭했다. 지하철에서 어르신한테 자리를 양보해 놓고도 앉아 있을 때의 편안함이 못내 잊히지 않아 자꾸 좌석을 돌아볼 때처럼 말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쉬웠다.

다시 '고객님'이 됐지만... 아줌마 일자리는 빤해

아침 커피타임 때 앞 매장 진경 언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일자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라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당부다. 며칠 뒤 나는 내 일자리가 대체되는 걸 보면서 백화점을 나왔다. '그래, 세상에는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 많지, 그러니 내가 꼭 필요한 일도 많을 거야'라는 희망을 갖고서….

이젠 나는 '고객님'이 됐다. 막말을 해대는 사람 앞에서 "나도 사람입니다"라고 외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 사실이 기뻤다. 계속 '고객님'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몇 달 뒤 나는 다시 '고객님' 앞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다시 일을 구할 때는 꼭 주5일제 일자리로 가리라 마음먹었던 건 어디로 갔는지 주말에도 '고객님'을 외치고 있었다.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똥 같기에. 그에 비해 아줌마의 일자리는 빤하게 예측 가능하기에.
#감정노동 #서비스직 #백화점 #판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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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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