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친숙한 바르셀로나... 해운대 느낌 나는데?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23] 카탈루냐의 심장, 바르셀로나

등록 2013.10.26 21:50수정 2013.11.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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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마다 재즈 선율에 취했던 파리에서는 제법 돈을 썼다. 어느새 가방에는 화려한 도시의 색깔을 견뎌낼 만한 신발이 하나 늘었고 아직도 흙 냄새가 풍기는 아프리카의 흔적이 제법 묻어있던 낡은 옷가지들은 버리고, 밝고 화사한 옷으로 탈바꿈했다. 유럽은 유럽인가 보다. 그러다 문득 한국의 친구로부터 소식을 받았다. 브라질에서 나와 합류하겠노라고. 묘하게 두근거리던 그 이메일을 보고서는 나는 파리를 떠나 야간열차를 타고 유럽의 끝,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무엇을 보러 갈지, 뭘 할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도착한 바르셀로나의 아침. 오락가락 비가 내렸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우산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 틈을 비집으며 거대한 배낭을 멘 채 몇 번 길을 물었지만,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내 영어에 당황한 그들만큼이나 나 역시 갑작스러운 스페인어에 당황했다.


그제서야 여기가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에스파냐 제국임을 깨달았다. 그 즈음 한국에서는 싸이의 노래 <강남 스타일>이 빌보드 2위에 올라 기념 콘서트가 벌어졌다고 하니 겨우 찾은 호스텔의 로비에 그 노래가 흘러 나오는 풍경도 낯설지만은 않았다. 싸이 덕분인지 한국에서 온 여행자를 한결 반갑게 맞이하는 호스텔의 직원에게 친절한 안내를 받은 나는 짐을 풀고 온종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르셀로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카파도키아의 파노라마 언덕에 오른 뒤부터 나는 새로운 곳에 가면 제일 먼저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버릇이 생겨버렸나 보다. 다음날 아침, 전날 내린 비로 날씨가 썩 맑지는 않았지만 <강남 스타일>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유독 즐기는 룸메이트 이드리스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는 몬주익 언덕(Montjuic Hil)에 오르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그녀는 마드리드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 슬픔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언제나 얼굴에 큰 미소를 보이는 활달한 아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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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에스파냐의 손길이 닿은 곳이라면 어디든 있는 에스파냐 광장 ⓒ 김동주


파리 못지 않게 여행자들로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지하철을 타고 에스파냐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니 쭉 뻗은 직선도로를 배경으로 에스파냐 광장이 나타난다. 사실 몬주익 언덕으로 가는 케이블카가 지하철역에서 이어져 있지만 너무 상세한 예고편을 보기 싫었던 나는 일부러 밖으로 나가 버스를 탔다.

과거 에스파냐의 영향을 받은 곳이라면 세계 어디든 있다는 그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드디어 도착한 몬주익 성. 어쩐지 이드리스가 없었다면 찾아오느라 제법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더니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주드. 나는 너 덕분에 학교에서 슈퍼스타가 될 거야. 강남 스타일의 노래가사 의미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이런 풍경, 어디서 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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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주익 언덕의 풍경 속에 나부끼는 카탈루냐의 국기 ⓒ 김동주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몬주익 언덕에(Montjuic Hil) 올라서서 바라본 바르셀로나의 풍경은…, 과연 멋있었다. 한쪽에는 부둣가의 모습이, 한쪽에는 해변을 낀 도시와 산 아래까지 빼곡히 집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어쩐지 고향인 부산을 떠올리는 묘한 향수를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본 스페인의 풍경은 대체로 부산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가파른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도시는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게다가 비교적 단조로운 지하철 노선과 바다를 끼고 있어 습한 날씨까지. 여행을 떠난 이래로 사람이 아닌 그저 고향이 그리워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냐며 묻는 이드리스에게 나는 사실대로 나 역시 이런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곳에서 태어나 자랐노라 말했다. 그러자 문득 그녀가 한쪽에서 나부끼는 깃발을 가리키며 묻는다.

"너 저 깃발이 뭔지 알아?"

그제서야 풍경에서 눈을 돌려 옆을 보니 스페인의 국기가 아닌, 빨강과 노랑이 반복되는 독특한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스페인에는 여러 개의 주가 있지만 실은 스페인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카탈루냐(Catalunya) 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마치 우리나라처럼 지역 색이 강한 스페인에서도 프랑스와 국경을 접한 카탈루냐는 유독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스페인과 대립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이드리스의 말에 의하면 프랑스와 국경을 접한 카탈루냐는 한때 프랑스에 속했다고 한다. 프랑스와 가까우니 불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이렇게 국기까지 따로 만들어가면서 카탈루냐 만세를 외치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내 질문에 이드리스 역시 고개를 저었다(심지어 카탈루냐는 국가도 따로 있다).

바르셀로나에 남아있는 한국인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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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에 남겨진 황영조 선수의 기록을 기린 비석과 동상 ⓒ 김동주


그러고 보면 FC 바르셀로나의 엠블렘에 그려진 국기 역시 스페인 국기가 아니라 카탈루냐 국기다. 16세기 때부터 중앙 마드리드로부터의 독립을 끊임없이 외쳐왔던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FC 바르셀로나가 주는 의미는 자부심 이상일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나미비아의 사막을 함께 횡단했던 스페인 친구 헤수스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그는 스페인 남부 세비야에 산다).

"주드, 만약 니가 바르셀로나에 간다면 꼭 마드리드도 가 봤으면 좋겠어. 아니면 내가 있는 세비야도 좋고.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도 조금 독특하거든. 거기 사는 카탈루냐인들은 까딸란도 언어를 써. 카탈루냐와 중앙마드리드를 외국인의 눈으로 본 느낌을 언젠가 나한테 말해줬으면 좋겠어."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나라와 분리되고 싶어하는 나라, 정반대지만 묘하게 닮은 것 같은 느낌 때문인지 어쩐지 바르셀로나에서는 한국의 향수를 느낄만한 것이 많았다. 카탈루냐와 중앙 마드리드는 마치 국토가 나뉜 한반도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별 생각 없이 들른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에서 한국의 오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마주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빠에야와 상그리아... 환상의 조합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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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그리아와 해산물 빠에야의 조합은 단연 최고다 ⓒ 김동주


스페인 축구리그가 이제 막 시작된 시점이었지만, 마침 바르셀로나의 경기가 없었고 표를 구하기에도 너무 힘들어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는 것은 포기했다. 하지만 그냥 가기에는 아쉬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렸던 경기장에 들렀다.

뜻밖에도 그때의 흔적을 한글로 새겨둔 비석이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때의 기억이 잘 없다는 이드리스와 달리 당시 TV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하던 황영조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 영상은 아직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있다. 더욱 짙어지는 향수를 달래기에는 술이 좋겠다 싶어 그날 저녁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넓고 깔끔한 식당은 배낭 여행객에게는 언제나 부담스러운 장소지만 현지인 친구와 함께하니 마침 고향 식당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해산물 빠에야의 짠맛과 레몬이 들어간 향긋한 상그리아는 정말 여행 중 먹어본 음식 중에 최고의 조합. 어둠이 깔린 밖으로 나와보니 높은 빌딩을 마주보며 요트들이 정박해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부산 해운대와 닮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느끼는 묘한 향수가 더더욱 깊어만 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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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라고 해도 믿을 만한 바르셀로나의 야경 ⓒ 김동주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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