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춘계문답은 넷째 사숙을 말하는 거였네

[무협소설 무위도(無爲刀)][32회] 춘계문답 (4)

등록 2014.03.27 12:08수정 2014.03.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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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장 춘계문답

a 무위도 無爲刀

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그 유래는 이렇습니다. 과거 어느 날 태허진인께서 몇몇 문파의 장문인들과 회합하던 중 사대 제자들에 대한 평(評)이 화제로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진인께서 제자들을 구름에 비유했는데, 첫째 모충연은 구름 위에 앉은 사람이라 평했고(一雲上人), 둘째 기승모는 꿈속에서 구름을 타는 선인이라고 표현했으며(雲夢仙客), 셋째 습평은 강 옆의 농막과 어울리는 한가한 구름에 비유했고(庄江片雲), 넷째 담곤은 잘 생긴 나무의 귀퉁이에 살짝 구름이 얹혀 있는 것(俊木圭雲)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물을 평한 것인지 무공을 암시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누군가 거기에 대해 주석을 부탁했지만, 진인께서는 대답을 하지 않고 빙그레 미소만 지었답니다. 그 후부터 강호에선 구름 '운'자 돌림의 사대제자 외호가 생긴 겁니다."
"오호, 운(雲)자 돌림의 각운이 생긴 연유가 거기 있었구먼."


관조운이 맞장구쳤다. 

"가장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외호가 둘째 운몽선객과 넷째 준목규운입니다. 꿈속의 신선과 잘 뻗은 나무의 귀퉁이에 걸린 구름이라. 진인께서 이렇게 표현한 의도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사람들은 제멋대로 입방아를 찧곤 했었습니다. 세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말로는, 무공의 자질은 둘째가 가장 뛰어난 반면 무공의 성취는 넷째가 으뜸이라는 걸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넷째 사숙의 비유에서 재목이 좋은 나무의 귀퉁이에 걸린 구름을 두고 또 이러쿵저러쿵 말이 한번 더 오갔다고 합니다. 미적(美的)으로 말하면 아주 운치 있는 장면이지만 의미상으론 꼭 좋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물론 구름도 어떤 종류냐에 따라 의미도 달라지겠지요.

무공의 경지는 둘째 사숙 운몽선객과 넷째 사숙 준목규운이 가장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째 사숙은 강호에서 홀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진짜로 신선이 되어 속계를 떠났다는 풍문이 있는가 하면, 무공 수련이 잘못 돼 광인(狂人)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는 괴이한 소문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넷째 사숙은 산서의 용문산에서 비룡문(飛龍門)이라는 문파를 열고 일파의 종사가 되셨다가, 제가 사부님 곁을 떠나기 전 해, 즉 오년 전부터 뜻한 바가 있어 정주에 비룡표국이라는 표국을 세워 무공의 명성보다는 세속의 이문을 추구한다고 들었어요. 그렇다고 넷째 사숙이 타락했다는 게 아니라 표국의 이문으로 문파의 내실을 기하겠다는 의도로 봐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과 관외 시주에 의해 유지되는 무림문파란 허약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아무튼 산서와 섬서 그리고 청해 지방까지 아우르는 비룡표국은 지역 상인들에겐 제법 이름난 표국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혁련지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물을 한잔 마셨다.

"그런데 사형, 사부님이 마지막으로 읊어달라던 시의 제목에서 누군가 연상이 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자 관조운은 아, 하고 탄성을 지르며 오른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춘계문답이라면 넷째 사숙님을 말하는 것이었네 그려. '춘'자가 봄이 아닌 다른 훈(訓)으로 쓰일 땐 움직일 '준'으로 읽지. 그건 넷째 사숙의 준(俊)자와 같은 독음이고, 다음의 '계(桂)'자를 파자(破字)하면 나무 목(木)과 모서리 규(圭)자로 나눠지니 넷째 사숙의 별호와 일치하는군. 그러니까 이 시는 바로 넷째 사숙인 준목규운 담곤 사숙을 찾아가라는 의미였군."


"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자깨나 가지고 논다는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관조운이 손으로 턱을 괴면 자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사형께서 사부님의 임종 이후 정신없이 쫓기는 바람에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으셔서 그럴 겁니다. 아무튼 사부님은 임종의 순간에도 철저하게 앞일을 염두에 두고 사형에게 뒷일을 맡긴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관조운은 혁련지의 명민함에 새삼 감탄을 하였다. 한편 넷째 사숙에게 가면 무극진경의 비밀이 풀릴 것인가 하는 염려와 함께 준목규운 담곤이 과연 자신을 사질(師姪)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의문점도 같이 일어났다.  

"이제 다시 괴한으로 돌아가요. 그 자는 왜 사부님을 고문했으며, 뜻밖의 훼방꾼인 천 집사를 처치하거나 제압하지 않고 그냥 사라졌을까요. 아무리 은퇴한 노인이라지만 스승님을 일거에 제압한 실력인데……."

혁련지가 다시 생각에 잠기며 혼잣말하듯 화제를 괴한에게로 돌렸다. 

"정황으로 보건데 천 집사 혼자가 아니라 장로 승인의 문제로 비영문 사람들이 곧 몰려올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진경의 요결이라는 것이 사부님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데, 사부님께는 협박이나 고문으로 안 된다는 게 입증이 됐잖아요.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고자 일단 철수했다고 봐야죠."

그녀는 스스로 묻고는 스스로 답했다.

"사매의 말을 듣고 보니 충분히 이치에 닿는구먼. 만약 사매 말대로라면, 사부님이 뜻하지 않게 돌아가신 지금에선 그 괴한이 나를 쫓고 있다고 봐야 하겠네?"
"제 추론이 맞는다면 그렇다고 봐야죠. 혹시 사형이 소주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관조운은 팔짱을 끼고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두드리며 생각을 했다.

"없어. 관가장에는 들리지도 않았고. 굳이 찾자면 연 장문인에게 말을 하긴 했지만, 연 장문인이 함부로 입을 열 사람은 아니고……."
"아무도 믿어선 안 돼요. 사부님이 피습 당하고 나서 불과 한나절 만에 무림맹과 은화사까지 왔잖아요. 이는 비영문 안에서 누군가가 외부에 연락했다는 결론이에요."

"하지만 연 장문인은……."
"연 장문인을 의심한다는 게 아녜요. 단지 장문인께서도 실수로 누군가에게 말을 했다면, 그 말이 사형을 쫓는 무리에게 이미 전해졌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곳도 안심할 수 없겠군."

"맞아요. 제가 있는 이곳도 안전하다고 볼 순 없어요. 은화사에서 같은 관군이라고 연락했는진 몰라도 금의위에서까지 사형을 수배했다면, 소주까지 체포령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예요. 금의위는 감찰기관이라 중원 곳곳에 감시망이 뻗어 있어요. 각 지역의 포청(捕廳)들도 그들의 지휘를 받으니까요."

"그럼 여길 빨리 뜨는 수밖에 없군. 정주에 가서 넷째 사숙을 만나봐야 내가 짊어진 비밀과 오해가 풀리겠네 그려,"  
"그래요. 한시라도 여기를 빨리 뜨는 게 상책이에요."

혁련지가 일어서더니 작은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녀는 검은 경장에다 연보라색의 덧옷을 걸치고는 허리에 검을 차고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관조운이 의아하게 물었다.

"사매까지 갈 필요는 없어."
"무공도 모르는 사형이 어찌 혼자서 감당하겠어요. 제가 같이 갈께요. 게다가 사형은 넷째 사숙도 잘 모르잖아요. 저도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얘기를 많이 들어서 제가 있으면 한결 나을 겁니다. 사부님과 관계된 일이니 저 역시도 모른 척 할 순 없어요.

그리고 제가 여기 있어봤자, 은화사, 금의위, 무림맹 사람들에게 시달리기 밖에 더 하겠어요. 마침 상계(商契) 간의 분규로 집이 엉망이 돼 어딘가로 피신해 있다면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나머지 뒷일은 저의 충실한 사랑의 포로 위약청에게 부탁하면 될 거예요."

혁련지가 간단히 짐을 꾸리면서 말을 했다.
덧붙이는 글 월, 목 연재합니다.
#무위도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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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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