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문>의 사도세자(이제훈 연기).
SBS
사도세자는 피해자다. 그것도, 억울한 피해자다. 이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측면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의 진면목뿐만 아니라 그가 실패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사도세자는 피해자인 동시에 패배자이지만, 우리는 앞의 것에만 주목하고 패배자라는 측면에는 덜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불리한 위치에서 패배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패배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패배한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사도세자는 왜 실패했을까? 사도세자는 13년간 주상을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한 대리청정의 주역이다. 그의 권력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총리보다도 막강했고, 미국의 부통령보다도 막강했다. 게다가 그는 단순히 대리청정만 했던 게 아니라, 대리청정을 통해 기득권 세력에 맞섰던 개혁의 투사였다.
사도세자는 비록 임금은 아니었지만 개혁 의지를 갖고 13년간 통치권을 행사했던, 우리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이제껏 우리 역사에서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열망을 가진 개혁가나 혁명가 중에서) 사도세자처럼 비교적 수월하게 최고 권력에 오른 인물은 별로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행운아였다.
그런데 그런 행운을 갖고도 뜻을 성취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딴 데도 아닌 뒤주(쌀통)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맞이하고 말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역사 발전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도세자가 실패한 원인은 어찌 보면 그리 거창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관점에서 따라서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실패 원인 중 하나는, 그가 '실패한 아들'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세자와 아버지의 관계는 일반적인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아니었다. 이 관계는 부자관계인 동시에 군신 관계였다. 또 정치적 동지 관계였다. 두 사람은 똑같이 탕평정치를 추구했다. 또 대리청정을 통해 대권을 빌려주고 빌리는 관계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동지 관계였다.
따라서 사도세자 입장에서는 '성공한 아들'이 되는 것이 정치적 성공과도 직결되었다. 성공한 아들이 되어야 성공한 신하가 되는 것이고 성공한 동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공동의 목표인 탕평정치도 실현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실패한 아들로 남았다. 이것은 그의 정치적 실패를 초래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13년간의 대리청정,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