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영조가 내시를 시켜 김택에게 인삼탕을 주는 장면
SBS
이 드라마에서 암시된 것처럼 영조는 정말로 경종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이 점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권위 있는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결정적 증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은, 경종이 죽기 3주 전에 벌어진 객관적 상황을 통해 우리 각자가 스스로 내리는 수밖에 없다.
경종과 영조는 복잡한 인연으로 얽힌 관계였다. 경종은 장희빈(희빈 장씨)의 아들이고, 영조는 장희빈을 죽인 일등공신인 최숙빈(숙빈 최씨)의 아들이다. 어머니끼리는 원수지간이었지만, 경종과 영조는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았다. 최숙빈과 영조한테 증오심을 품을 만도 했던 경종은 따스한 마음으로 이복동생을 포용했다.
이렇게 좋은 관계였지만, 경종이 왕이 된 뒤에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경종은 소수파 정당인 소론당의 지지로 왕이 됐다. 다수파 정당인 노론당은 경종이 왕이 되기 전부터 영조(당시엔 연잉군)를 지지했다.
경종이 왕이 되자 노론당은 경종을 압박해서 영조를 후계자로 만들더니, 경종더러 "일선에서 물러나시고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경종과 영조의 관계는 복잡하고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경종이 병석에 눕고 영조의 살해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경종이 왕이 된 지 4년 뒤인 경종 4년 8월 2일(양력 1724년 9월 18일), 경종이 병석에 누웠다. 이전부터 병치레가 많았던 왕이다. 당시 나이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나이는 30대이지만 병약한 왕이었다.
이때 경종의 병명은 한열(寒熱)이었다. 몸에 한기가 돌았다가 열이 나는 병이었다. 내의원에서 각종 탕약을 올렸지만, 좀처럼 차도가 생기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음력 8월 6일(양력 9월 22일), 경종은 창경궁 환취정으로 병석을 옮겼다.
병석에 있는 경종에 게장과 생감 권한 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