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바구니카라바조, '과일 바구니',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미술관. 이탈리아 최초의 정물화인 '과일 바구니'. 그런데 조명도 거의 없는 곳에,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는 먼 거리에 전시해 놓아서 위키미디어 이미지로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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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라바조의 '과일 바구니'는 이탈리아 최초의 정물화입니다. 그동안 인물화나 성화의 한 구석을 장식하는 데 불과했던 정물을 당당히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의미 있는 작품이란 말이죠.
자세히 보면 알록달록 탐스러운 과일들 대부분이 조금씩 시들거나 벌레 먹은 상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 미술관'에서 만났던 손톱에 때가 끼고 병든 바쿠스가 떠오릅니다.
신까지도 현실적으로 묘사했던 카라바조의 리얼리즘(사실주의) 정신은 정물화에도 이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그림을 열악한 환경에서 볼 수밖에 없다니, 이탈리아에 와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가장 큰 실망감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여행은 계속되어야겠지요? 아쉬움이 가득한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을 뒤로 하고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만나러 갑니다.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에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만날 수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20분 남짓. 하지만 예약 시간 30분 전에는 도착해서 티켓으로 교환하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순서로 예약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좀 있긴 하지만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다른 곳도 둘러보려고 좀 더 서둘렀습니다.
초기 르네상스 건축의 거장, 브라만테의 솜씨가 살아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예약 시각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특유의 붉은 벽돌의 우아한 성당 건물이 눈앞에 나타나자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합니다. 성당을 먼저 보려던 생각은 이미 저 멀리 사라졌고, 곧장 '최후의 만찬'을 만날 수 있는 부속 식당 건물로 향합니다.
예약하지 못한 수많은 여행객이 혹시라도 예약 취소된 티켓을 구할 수 있을까 좁은 건물 안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그 비좁은 틈을 헤집고 들어가 티켓으로 교환합니다. 부러운 듯 바라보는 눈길들. 무슨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득의양양한 기분으로 그들 사이를 당당히 가로질러 나옵니다. 이제 남은 건 '1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