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힐 로지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여행자들. 창밖으로는 설산이 보인다.
박혜경
쫄쫄쫄 흐르는 물로 핫샤워를 하고 식당에 앉았다. 방은 허름했지만, 식당은 아주 멀끔했다.
구름에 가리긴 했지만 사방에 뚫린 창으로 커다란 설산들이 보였다. 파란색 테이블 보와 빨간 체크 무늬 천을 엇갈려 깐 식탁에는 유리잔에 담긴 랄리구라스(네팔의 나라꽃)도 놓여 있다. 주방 입구에는 와인 진열대도 있다. 그리고 무려... 와이파이가 터진다! 100루피(한화 1100원)를 내니 순식간에 인터넷 세상에 접속이 된다. 포터 아저씨가 이 부근 로지 중 음식맛도 그렇고 여기가 최고라고 하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제 막 트레킹을 마치고 온 트레커들과 포터들은 로지에 하나 뿐인 난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방에 따로 난방시설이 없는 로지에서 추위를 이기려면 커다란 난로 주위로 모여드는 수밖에 없다. 침대 시트와 수건, 가방까지 주렁주렁 널린 난로 앞에 젖은 등산화를 두고 앉았다. 모르는 사람과 엉덩이를 다닥다닥 붙인 채. 바짝 붙어 앉아야 한 명이라도 더 불을 쬘 수가 있다.
"무슨 책이에요?" 내가 읽고 있는 책이 궁금했는지 왼쪽에 앉은 포터가 손짓을 하며 물었다.
"'트롤리 문제'라고 철학책인데 어렵진 않아요.""아, 철학책... 이 글자는 어느 나라 거죠?""아, 이건 한국어예요."우리의 짧은 대화는 만국 공통어인 미소로 끝났다. 이 와중에도 오른쪽에 앉은 남자는 계속해서 조용히 독서 중이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거리. 여행자들은 그렇게 따로 또 같이 불을 쬈다.
눈을 깜빡이기도 아까운 '푼힐 일출'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