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겉표지
이야기가 있는 집
'블랙아웃(Black Out)'은 대규모 정전사태를 가리킨다. 대표적인 블랙아웃은 2003년에 미국에서 일어났다. 뉴욕을 포함한 미국 동북부 전체와 캐나다 동남부까지 정전사태가 발생했었다. 이 정전은 3일 후에 복구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약 60억 달러의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말이 3일이지, 3일 동안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생활이 어떻게 변할까.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고, 밤이면 촛불이나 랜턴 불빛에 의지해야 한다. 전자레인지와 컴퓨터도 사용하지 못한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휴대폰 배터리 충전도 못한다.
편의점이나 식당에 가면 카드결제기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현금으로 계산해야 한다. 문제는 현금인출기도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냉장고와 TV도 먹통이 된다.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지 못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생활을 3일 동안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일상생활의 불편은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정전 기간이 길어지면 온갖 산업시설들이 마비된다. 지하철과 기차 운행도 중단되고 항공기 일정도 모두 취소된다. 각종 공장들도 가동을 멈추고 유통 및 운송업체와 병원도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진다.
전기가 사라져버린 세상의 모습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그보다는 상상하기 싫은 풍경이다. 애초에 전기가 없었다면 모를까. 그동안 당연한 듯이 풍족하게 써오던 전기가 갑자기 오랫동안 끊기면 많은 사람들은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보다도 언제 이 정전이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 더욱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마크 엘스베르크의 2013년 작품 <블랙아웃>은 제목처럼 장기간의 대규모 정전사태를 가정하고 있다. 무대는 유럽과 미국이다. 어떤 이유인지 이탈리아의 대도시들에서 정전이 생겼고, 그 정전은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오스트리아까지 번져간다. 마치 암세포가 퍼져가듯이.
이 정전은 몇 시간이나 며칠로 끝나지 않는다. 정전이 오래되면서 사람들의 모습도 조금씩 변해간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도 있다. 그 안에서 현실은 악몽처럼 변해간다.
각 국가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정전의 원인과 대책을 논의하지만 아무 진전이 없다. 이때 과거에 해커로 이름을 날렸던 주인공 피에로 만자노가 개인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 정전은 외부에서 고의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군가가 정전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유럽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 누가 어떤 이유로 유럽 전체를 적으로 돌렸을까?
생존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정전이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예고된 정전이건 갑작스러운 정전이건. 1시간 후에 전기가 복구되더라도 그 1시간은 참 답답하게 느껴진다. 여름 한낮이라면 에어컨과 선풍기가 작동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현대문명은 기본적으로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물과 공기, 전기. 현대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꼭 필요할 것이다. 물과 공기는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지 않겠지만, 전기는 느닷없이 끊긴 채 복구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전기는 그 특성상 어딘가에 보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꾸준히 흐르게 만들어줘야 한다. 마치 혈액처럼. 더운 여름날 전기소비량이 최대치에 이르게 되는 것은, 사람의 혈압이 갑자기 오르는 것과 같다. 당연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블랙아웃>에는 전기를 포함해서 전력망 네트워크 등 전문적인 용어와 이론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에너지 및 IT 분야를 포함해서 재난안전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풀어내고 있다. 이런 분야가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진다면 적당히 넘어가도 큰 문제는 없다.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런 이론이 아니라, 열흘이 넘는 블랙아웃 기간 동안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망가져 가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하고, 손에 돌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어찌보면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재앙은 천재지변이 아닌, 대규모의 장기간 정전일 수 있다.
블랙아웃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이야기가있는집,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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