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전통 옷을 만드는 모한 아내의 옷가게. 그녀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송성영
아파트 앞에 쪼그려 앉아 풀숲을 헤치고 다니는 닭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모한이 금세 돌아왔다. 나는 배낭을 짊어진 채 모한의 모터사이클 뒷자리에 앉았다. 그가 모터사이클을 몰고 간 곳은 아내가 네팔의 전통 옷을 직접 만들어가며 운영하는 옷가게였다. 옷가게 셔터 문을 열고 있을 무렵 그의 아내가 왔다. 비록 세 평도 채 안 돼는 소박한 옷가게지만 그녀는 네팔 아이들의 전통 옷을 재단해 패션쇼에 나설 정도로 수준있는 디자이너라고 한다.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마웠습니다.""아닙니다. 당신을 만날 수 있어 저희 가족이 더 고맙습니다."내내 내게 베풀어 주고 나는 받기만 했는데 무엇이 고맙단 말인가. 보시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고맙다는 것일까. 나는 그녀의 고맙다는 말이 당황스러웠다. 그녀에게 다시 한 번 합장을 하면서 재차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모터사이클에 올라탔다.
그가 농사를 짓고 있다는 고향으로 가기 위해 혼잡한 도시를 통과해야 했다. 그는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는 낡은 자동차들 사이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잘도 피해 달린다. 숨이 턱턱막히는 도시를 벗어나자 이름을 알 수 없는 작고 아담한 중소도시가 나왔다.
거기서 온갖 먹거리들이 질펀하게 널려 있는 시장을 기웃거렸다. 시골 농막에서 며칠을 보내려면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했다. 모한은 농막에 먹을거리가 충분히 있다며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사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가족에게 신세진 것을 조금이나마 갚음하기 위해 그의 노모에게 선물할 과일을 비롯해 쌀에서부터 채소에 이르기까지 찬거리를 푸짐하게 장만했다.
그리고 한국의 요리,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요리해 주겠노라 정육점을 찾아 헤맸다. 닭이나 양고기를 파는 정육점은 몇 군데 있었지만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힌두교도가 87%를 차지하는 네팔 사람들 역시 인도에서처럼 돼지고기를 즐겨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찾았다. 돼지고기는 킬로그램 단위로 팔고 있었다. 가격은 1킬로그램에 300루피,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네팔의 백반 식사비가 보통 200 루피 정도하니 아주 싼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