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의 광고
나이키
개중에서도 나이키 우먼이 운동과 페미니즘의 요소를 결합한 광고를 꾸준히 선보임으로써 호평을 얻고 있다. 확실히 나이키의 광고는 탄탄한 근육질 몸매의 모델을 내세우는 일차원적인 광고와는 차별화된다.
근래 나이키가 선보인 광고들은 역사적으로 여성혐오의 정서가 강한 국가들, 이를테면 터키와 러시아, 아랍권 국가를 배경으로 여성들이 억압과 금기를 박차고 나오는 강렬한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터키편은 요리 대신에 역도를 하고 금으로 된 액세서리가 아닌 금메달을 목에 건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BGM으로 페미니스트 가수 비욘세의 <세상을 이끌어>(Run the world)를 씀으로써 완성도를 높였다.
같은 시리즈의 러시아 편에서는 어린 소녀들에게 운동을 함으로써 강해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무대에서 '여자는 무엇으로 이뤄지는가(What are girls made of)'라는 노래를 부르던 소녀는 어두운 객석에 나타난 여성 운동 선수들의 환영을 본다.
소녀는 '여자는 반지와 꽃으로 만들어졌다네'라는 가사를 '여자는 의지와 힘, 타오르는 불로 만들어졌지'로 바꿔 부르고 음악회를 뛰쳐 나온다. 다음 장면에서 소녀가 서있는 곳은 한겨울의 축구장이고 그는 비장한 눈으로 골대를 응시하며 킥을 준비한다. 일련의 나이키 광고들이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단순하고 확실한 메시지와 강렬한 이미지의 대비로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띄기 때문이다.
나이키의 라이벌 브랜드인 아디다스는 이보다 우회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아디다스는 '마이런'이라고 불리는 마라톤 대회에 여성 전용 구간인 '우먼스8K'를 선보이고 여성 월드컵 광고를 꾸준히 제작함으로써 여성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런닝을 향한 아디다스의 애정은 최근에 선보인 광고(THE FEARLESS AF)에서도 드러난다.
이 광고는 '여성은 충분히 빠르지 않고 강하지 않고 단호하지 않다'는 편견에 저항하며,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여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남성의 이름으로 선수 등록을 감행해 여성 최초로 보스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던 캐스린 스위처를 향한 오마주도 잊지 않았다. 이 외에도 '핑계 말고 근육을 만들라(Make muscles, not excuses)'는 도발적인 슬로건을 내놓기도 했다.
광고 외적인 부분에서 아디다스가 이룬 업적으로는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와의 협업을 통해서 에슬레저룩의 유행을 선도한 점을 들 수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그의 아버지인 폴 매카트니(비틀즈의 멤버)를 모르는 어린 세대도 열광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디자이너다. 그는 체육관에서나 입던 운동복을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감각적으로 변형시켰고 그 덕분에 에슬레저룩의 상징과도 같은 디자이너로 등극했다.
크로스핏 전용 운동복과 운동화, 스파르탄 레이스로 주가를 올린 리복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을 모델로 발탁한 바 있다. 우아하고 가냘픈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난, 캐틀벨을 들어 올리고 스파르탄 월을 뛰어 넘는 강수진의 새로운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운동하는 여성에 따라붙는 '독하다'는 편견에 맞서고 반드시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여성들을 독려한다.
광고는 여성의 욕망을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을까
스포츠 브랜드는 아니지만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인 피앤지(P&G)도 편견을 깨고 여성성을 긍정하자는 의미의 '여자처럼(LIKE GIRL)'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모델들에게 '여자처럼 달려보라', '여자처럼 던져보라'는 주문을 한 다음 '여자처럼'이란 말에 담긴 차별과 편견, 여성혐오의 뉘앙스를 꼬집는다. 이밖에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운동을 그만두는 소녀들을 향해서 '멈추지 말라'는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최근 광고에 등장하는 운동하는 여성은 대체로 강하고 자기 주도적이고 자신감이 넘친다. 이는 끊임 없이 외모를 걱정하고 남자친구에게 신제품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섹스어필의 도구로써 존재하는 기존의 여성 모델들에 비하면 진일보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발전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개선해야 할 점들이 없지 않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는 여전히 제 3세계의 빈곤한 여성과 아동을 동원해서 옷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해당 기업은 자유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동원해서 막대한 수익을 취하는 동시에 여성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뿐만 아니라 나이키가 무슬림 여성을 등장시켜서 만든 광고는 편견과 억압을 깨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되레 무슬람 여성을 향한 편견을 부각시켰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끝으로 글로벌 브랜드들이 내놓는 여성 운동복이 과연 광고 속 이미지만큼 진보적인지 의문이다. 여전히 여성용임을 어필하는 핑크나 살구색 계열의 컬러를 많이 쓰이고 또 주머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주머니가 없거나 불필요한 장식이 달리는 등 개선할 점들이 남아 있다.
세계적인 카피라이터 빌 배커(Bill Backer)는 그의 저서(The care and feeding of ideas)에서 '광고와 선전은 이복 형제이며 광고는 뭔가를 인간의 욕구와 연결시키고 선전은 막연한 것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고 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낯설고 쿨한 여성의 이미지가 더 큰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광고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는 여성성과 여성의 욕망을 보다 구체적으로,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운동하는 여자' 이전 기사]① '애플힙'은 박수치면서, '승모근'은 보기 싫다니 ② '주먹대장' 그녀, 34초 만에 세상을 홀리다③ 헬스장의 레깅스, 너 보라고 입은 게 아닙니다 ④ 평창올림픽은 끝났지만, '안경선배'가 남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운동하는 여자>를 썼습니다.
한겨레ESC '오늘하루운동', 오마이뉴스 '한 솔로', 여성신문 '운동사이' 연재 중입니다. 노는 거 다음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공유하기
리복은 왜 강수진에게 발레 대신 복싱을 시켰을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