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e Finisterre. 신발 동상이 있다.
차노휘
피니스테레 알베르게에 가방을 두고 천천히 곶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곳을 보기 위해서 나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캠핑카도 눈에 띄었다(그곳은 순례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곳이었다).
땅 끝이라는 상징. 0km를 나타내는 표지석. 순례자들의 소지품이 걸린 철탑. 그리고 뭔가를 태운 흔적. 전에는 이곳에서 신발 등을 태웠다.
뭔가를 태운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헌것을 태우고 새것을 얻겠다는, 묵은 죄를 벗고 새로워지겠다는 여러 의미가 함축된다. 불이란 일종의 소독이나 정화의 의미도 있지 않는가. 지금은 환경보호 이유로 금지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대서양이 한없이 펼쳐진 바위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은 다음, 아주 편하게 앉았다. 등 뒤에서는 인증샷을 날리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앉아 있는 공간과 내 앞에 펼쳐진, 코르처럼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진한 코발트 바다는 내 것이었다. 그리고 900km를 걸어온 길 위의 시간과 장소들, 고뇌와 환희 등 말할 수 없는 감정과 사색 또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영역이었다. 비로소 그 모든 것들을 풀어놓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