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신구교 연합 노동자인권선언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 31] 1970년대 노동자 인권선언의 대표적 문건

등록 2022.03.02 16:17수정 2022.03.02 16:17
1
원고료로 응원
성당 전면부 명동성당은 지형과 좌향, 진입로 등의 제약으로 정북에서 서측으로 30.5°엇갈린 북북서 입구를 가졌다.

성당 전면부 명동성당은 지형과 좌향, 진입로 등의 제약으로 정북에서 서측으로 30.5°엇갈린 북북서 입구를 가졌다. ⓒ 이영천

 
유신체제의 광기 속에서도 한국사회가 미치지 않고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제단을 비롯하여 신구교 성직자들의 헌신적인 정화작업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이 땅의 '소금'이 아닌 '소금장수'가 된 일부 기독교계 명사들이 조찬기도회 따위의 기도회를 열고 유신 통치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했지만, 깨어있는 성직자와 신도들은 정의의 사역을 멈추지 않았다.

사제단은 2월 21일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와 공동 주최로 명동성당에서 '구속된 사제와 민주인사들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그동안 새로 구속된 사제들이 여러 명 있었다. 사제단이 천주교 내의 임의단체인데 비해 정평위는 공식기구였다. 두 단체는 때로 경쟁 또는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유신체제에 대처해왔다. 주교단에서는 사제단의 기능을 교회내의 공식기구인 정평위에 흡수하고 시국문제는 사제단보다는 주교단이 결정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단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국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즈음(5월 10일) 신구교 연합으로 명동성당에서 열린 '노동절을 기념하는 특별미사'에서 채택한 〈1977년 노동자 인권선언〉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교회사회선교협의회'는 신구교 성직자들이 복음정신을 사회 속에 심는 것을 그 정신으로 발족한 사제단과 뜻을 함께 하였다. 1970년대 노동자 인권선언의 대표적 문건의 하나로 꼽히는, 전문이다.

1977년 노동자 인권선언

노동자의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며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인권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어떠한 이유로서도 침해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노동법을 위반함으로써 노동자에게 비인도적 고통을 가하고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은 심히 유감된 일이며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범죄로 간주한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기업주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노동시간과 생산량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비민주적이며 봉건적 노사관계를 배격하고 자유인으로서의 대등한 노사관계를 요구한다. 

노동자에게는 스스로의 권익을 위하여 단결할 권리가 있고 기업주와 교섭할 권리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 노동력 제공을 단체적으로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오늘 노동자 인권을 위한 신ㆍ구교 연합기도회에 참석한 우리 노동자와 신도들은 국가의 장래와 노동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노동자 인권을 선언한다.


1. 노동삼권인 단결권과 단체 교섭권 그리고 단체 행동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2.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임시특례법, 긴급조치는 조속히 철폐되어야 한다.
3. 정부는 노사간의 자율적인 교섭을 인정하고 그 결정권을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
4. 수출이라는 미명하에 1일 8시간 노동제를 무시하고 13시간 또는 그 이상의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주와 경영인들의 불법적이며 비인도적 처사를 단호히 배격한다.
5. 우리는 근로기준법에 명시한 노동 시간, 휴식 시간, 주휴, 월차 휴가, 연차 휴가, 생리휴가를 엄격히 실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는 기업주와 경영인들을 배격한다.    
6. 우리는 근로기준법 위반 업체를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노동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노동청 당국의 태만을 강력히 항의한다.
7. 우리는 기업주와 동조하여 기업의 불법행위를 동조하거나 묵인함으로써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부 노동조합 간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8. 우리는 새마을운동이라는 미명으로 노동자에게 무보수 노동을 강요하여 자기 이익을 꾀하는 기업주를 강력히 규탄한다.
9. 정부는 최저임금법을 제정하여 기아임금에서 혹사당하는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10. 우리는 월 3만원(1일 8시간 기준) 이하의 노동임금을 기아임금으로 간주하며 조속한 인상을 요구한다.
11. 우리는 임시공, 도급공이라는 이유로 잔업수당, 특근수당, 야간수당, 퇴직금, 상여금, 산재보상금을 지불하지 않는 기업주를 강력히 규탄한다.
12. 우리는 종교단체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각종 위협과 공갈을 자행하는 기업주와 경영인을 강력히 배격한다.
13. 외자도입을 위한 근로자의 권리 유보는 중지되어야 하며 정부는 외자 업체의 횡포를 철저히 감독하여야 한다. 


주석
6> <암흑 속의 횃불②>, 282~28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