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영작가시집<어머니 그리고 편지>출간회장애 걸린 김남영시집의 플래카드
박향숙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어느 날 책방에서 보내는 아침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한 지인이 글 하나를 보냈다. 제목은 <빈 길>이었다. 당신과 종종 바둑을 두는 후배인데, 짤막한 글을 써서 가끔 보낸다 했다.
그래
길 이란게
비어 있어야지
꽉 찬 길도 길이더냐
걸음걸음 걸어서 닿고
걸음걸음 걸어서 함께가자
(중략)
얼릉
빈 길 위에서
가는 동안
손을 맞잡아 주소
서로 마음 달래며
그 빈 길을 가자
화려한 단어하나 없이 편안한 시어가 좋다고 나름 평을 써서 보냈다. 인연의 시작이었다. 며칠 뒤 이 글을 쓴 사람과 차 한잔 할 수 있냐고 전화를 받았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 답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냥 인사라도 하고 톡으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막상 만나보니, 내 목소리는 잘 들린다고 했다. 지인의 말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찌 내 말을 알아듣는지 물으니, 여성의 목소리는 그래도 어느 정도 들린다 했다. 소위 '여자 목소리 선택형 난청'이라며 웃었다.
기계음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소리톤이 낮은 남자 목소리 식별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찌됐든 내 목소리는 들린다 해서 평소보다 소리를 높이고, 발음을 똑똑 떨어지게 내면서 얘기했다.
며칠 뒤 개인적으로 부탁할 일이 있다고 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고령인데 노인유치원에 다닌다고,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글을 묶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미래에 있을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람들일 테니, 어머니를 기억하는 자리에 답례로 글모음집을 주고 싶다고 했다. 사람마다 추억의 장을 만드는 법이 다르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