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안 맞는 모순적인 상황에도, 독자는 그 느낌이 뭔지 정확히 알고 기억해 낸다.
픽사베이
알고 보니 이 제목은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 백세희 작가가 직접 지은 거였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었다가 반응이 좋아 종이책으로 출간한 케이스였다지?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왜 이런 제목을 지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울하면 계속 우울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마르텡 파주의 <완벽한 하루>라는 책을 구해 봤다. 25살짜리 남자가 아침에 권총으로 자살하는 상상을 하면서 일어난다. 하루 종일 죽음을 생각하는데 심각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재미있다. 작가는 이런 모든 것이 한데 모인 게 인생이고 모든 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 그래 행복과 불행이 따로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 우울하다가도 배고픔을 느낄 수 있고 죽고 싶다가도 웃긴 말을 하면 웃을 수 있는 게 인생이구나, 당연한 거구나 받아들이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사실 떡볶이는 그렇게 모순적인 감정에서 지어보았다. 슬픈 마음인데 제목을 위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 출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은 사실, http://omn.kr/rzj8
역시 그랬군. '죽고 싶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읽어나가는 독자라면 기대하는 다음 문장(내용)이 있었을 텐데 그것이 당연히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당황스러운 내용은 아니었을 거다. 앞뒤가 안 맞는 모순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상황은 모순적이지만 '그래 그렇지' 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거다. 독자는 그 느낌이 뭔지 정확히 알고 기억해 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역대급 판매고를 올리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사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 모순적인 상황을 독자들은 이미 문학이란 장르 속에서 꽤 오랜 시간 즐겨왔다. 비교적 근래에 출간 책 중에서는 정한아 작가의 <친밀한 이방인>이 그렇고, 당장 포털에 검색만 해봐도 모순적인 제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독자들은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과 최은영 장편소설 <밝은 밤>을 모순적인 제목으로 꼽았다(찾아보면 훨씬 더 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사전적 의미로 이방인은 '다른 나라에서 온 낯선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친밀하다고 해서 그렇고, 편의점 역시 사전에는 '고객의 편의를 위하여 24시간 문을 여는 잡화점'이라고 나오는데 '불편하다'는 게 그렇다. 또 밤은 어두운데 '밝다'고 하니 표현이 모순적이라서 그렇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모순의 효과를 제대로 노린 제목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모순적인 효과를 의도하고 제목을 잡은 건 아니었는데 이 제목도 그렇게 나온 것일지도.
☞ 명상을 하지만 가부좌는 하지 않습니다 https://omn.kr/20svf
아래는 시민기자가 직접 쓴 모순적 표현을 담고 있는 제목이라 소개한다.
☞ 수영장에 가지만 수영은 하지 않습니다 https://omn.kr/238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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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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