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또 다른 날
딸기책방
하지만 시험관 수술은 잘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가다 운 좋게 자연 임신이 되기도 했지만, 이런 행운마저도 이들 부부에게는 따라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태아의 심장이 멈추었던 것이다. 안타깝지만 '바다'와 '산'은 앞으로 '편견'과 '혐오'에 둘러싸인 채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젊은 부부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는 만화적 연출
김금숙 작가는 고통받는 난임 부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를 통렬히 비판한다. <내일은 또 다른 날>은 한 개인의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한 젊은 난임 부부의 애절한 사연을 통해 사회의 잘못된 잣대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출생률이 전 세계적으로 저조한 대한민국에선 앞서 서술된 편견과 혐오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회는 앞으로 개인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아이 낳을 것을 어떤 방식이든지 강요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텍스트가 안고 있는 문제제기는 의미 있다.
앞서 간략하게 적었지만 줄거리를 탐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김금숙의 작품을 만화적으로 읽으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보다 더 진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칸과 칸으로 이뤄져 있는 만화의 형식에 최선을 다하려는 아티스트의 노력을 확인하다 보면 더 진득하게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독자들은 그림과 말풍선으로 이뤄진 '형식'을 손쉽게 넘겨 보기보다는 작가가 무슨 이유로 칸을 허물었는지, 한 페이지나 두 페이지를 한 컷으로 운영해 담아내려고 했는지, 선택한 장면을 강조하기 위해 어떤 연출을 선보였는지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만화 읽기의 즐거움을 탐닉할 수 있다. 그럴 때 그래픽 노블은 좀 더 진정성 있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같은 내용이지만 깊이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너무나 갖고 싶지만 품을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을 말풍선과 칸의 미학으로 펼쳐 보이는 작가의 '의도'를 만나게 될 때면 섬뜩 놀라기도 한다. 마치 작가가 직접 경험한 흔적을 선과 그림과 칸으로 이야기하듯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느 신문사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험을 일부 반영했다는 김금숙의 목소리를 읽고선 이러한 특징이 그때서야 수긍이 가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처럼 진정성 있는 고백은 없으니까. 진정성 있는 연출과 관련해 한 장면만 꼽아보자면 아무래도 주인공 '바다'가 병원에서 시험관 수술을 받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수술을 받기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바다는 자신과 닮은 표정들을 응시한다.
예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다림은 길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문득 앞에 있는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생겼는데…나이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른데…묘하게 닮았다.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것처럼. 당신들도 나처럼 시험관 시술을 하러 왔구나. 남편 없이 온 걸 보니 과배란 주사를 맞으러 왔는가? 머지않아 이 중에 누구는 웃고 누구는 눈물 흘리겠지…나는 어떻게 될까? 노력해서 되는 일이면 좋겠다.(91~92쪽.)
결과론적이지만 바다는 눈물을 쏟는다. 작가는 이 장면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칸'을 허물고 병원에서 고개 숙인 표정들을 담아낸다. 이 장면을 응시하고 있으면 '나'와 가깝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