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여행지난해 여름 승빈네 가족은 제주도에서 여행을 즐기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승빈네 가족 제공
발달장애인에게 안전한 숙소는 어디에
여행을 떠날 때는 주변에 이해를 구하기 힘들어 빈틈없이 준비한다. 그러나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 숙소를 구하기도 간단하지 않다. 성아씨는 '까다로운 엄마'가 돼 여러 군데 전화를 건다. 아들 승빈은 환경이 바뀌면 어떤 게 위험한지 알지 못한다. 유리로 된 컵이 깨질 수 있고, 날카로운 포크나 칼, 뾰족한 서랍의 모서리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여행지로 이동하는 내내 긴장한 승빈이 도착할 때쯤 배가 아플 것도 예상한다. 승빈은 낯선 소음과 북적이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또래 아이들이 모여 노는 놀이터보다 무당벌레가 사는 풀밭 있는 숙소를 찾는다.
"며칠동안 검색을 하다 보면 부러워지는 문구가 있어요. '펫프렌들리 반려견 동반 가능 숙소' 말이에요. 반려견이 안전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숙소가 많아졌어요. 홈페이지에 안내도 친절하고요. 발달장애인에게 '프렌들리한' 숙소는 여전히 찾기 어려워요. 필요한 안내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으니 일일이 전화해서 물어봐요."
이렇게 고른 숙소는 대개 비용이 문제다. 내야 할 카드값과 아들의 편의를 저울질해 본다. 통화 내용을 들은 동생인 딸이 팔을 당기며 물어본다.
"우리 여행 가?"
열 살 난 아이 얼굴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을 보고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성아씨는 지난 휴가를 떠올린다.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딸이 불만을 터뜨렸다.
"엄마는 만날 오빠만 중요해?"
성아씨는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자꾸만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는 아들 승빈을 돌봐야 했다. 남편은 차를 돌려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숲속 놀이터를 누비며 옷을 더럽히던 딸은 가야 한다는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나중에라도 투정을 부려주니 고마운 마음이었다.
"승빈이 상태에 따라 일정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어요. 발달장애인은 힘들어하는 정도가 일정하지 않아요. 많은 변수가 있어요. 그럴 때면 제가 욕심을 부린 것 같아서 모두에게 미안해요."
발달장애 아들 스케치북에서 발견한 희망
성아씨는 자주 아이들 방에 들어간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장난감과 색연필을 줍다가 승빈이 스케치북을 열었다. 공항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차 밖 풍경... 승빈은 자기가 본 것을 사진처럼 정확하게 기억해 모두 화폭에 옮겨 놨다.
청량하게 쏟아지는 천지연 폭포의 기억은 아크릴판 위 과감한 붓질로 다채롭게 태어났다. 승빈의 마음 한 칸에 비행기가 두둥실 떠오를 때 창문 너머 보이는 넓은 날개, 얕게 펼쳐진 구름, 푸르른 하늘이 전부 깔려 있었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승빈은 이번 여행에서 어떤 동물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고 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듯했다. 아들에게 새로움은 두려운 것이지만, 동시에 기대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