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민간인희생자 유족 박영학씨
주간함양
박영학씨의 아버지 형제는 5남매였다. 남자형제 중 막내였던 아버지는 영특해 큰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서 와세다 대학을 나온 박영학씨 아버지는 대동아지진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그 당시 처녀들은 다 위안부로 끌려가고 하니까 어머니도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열 여덟에 결혼을 하신 거라. 그 당시 외삼촌이 우리 아버지를 맘에 들어 하셔서 중매를 한 거라. 결혼한 사람들은 위안부를 못가니까 외삼촌이 정보를 듣고 우리 어머니를 빨리 결혼 시켰지."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아버지는 정식발령을 받고 한달 만에 돌아가셨다.
"우리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편을 잡으셨어. 임시교사를 3개월 정도 하시다가 진주에서 정교사 시험을 보시고 1등을 했어. 발령 받으신지 한 달 만에 죽어버렸어. 빨갱이 놈들한테."
박영학씨는 세 살, 동생은 유복자였고 어머니는 스물 두 살이었다.
"빨갱이들이 자기들한테 가입하라고 했는데 안하니까 표적이 된 거지. 몇 번이나 협박편지가 왔더래. 아버지가 신경 쓰지 말라시며 태우셨는데 그런 게 자꾸 날아오니까 우리 어머니가 뭔가 하고 봤더니 가입을 안 하면 박길주 반동분자 언젠가는 쏴 죽인다고 적혀 있더래."
박영학씨 아버지는 아내에겐 안심하라고 했지만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가족과 고향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한테 그러더래. 며칠만 고생해라, 서울이든 부산으로 가자, 그랬는데 그 정보를 누가 찌른 거지."
이곳 기곡마을에서는 일본에서 가라데 선수였던 사람과 박영학씨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다.
"점검 나왔다고 문을 두드리길래 나가보니 총을 들이밀고 있었다고 해요. 싸리문 앞에 묶어놓고 쏴 죽였어."
돈을 구해오면 살려준다는 말에 어머니가 바로 앞집 집안 어르신께 돈을 구하러 뛰어가는 중에 뒤에서 총소리가 났다.
"두 방인가 심장에 맞았데. 밤새도록 피 흘리다가 새벽에 죽었지. 그 당시에 똑똑한 사람들, 포섭 안 되면 다 죽였어. 참 아까운 사람이지."
사건 당시 세 살이었던 박영학씨는 아버지 얼굴도 기억할 수 없다. 아버지 사건에 대해선 어머니, 큰아버지, 사촌 형들에게 들은 내용이다. 성장하면서 알게 된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억울했던 박영학씨는 직접 이 사건을 알아봤다.
젊은 시절 배를 탔던 박영학씨는 배에서 내리는 휴가 때마다 부산 서울 대구로 아버지와 같이 근무했던 분들을 찾아다녔다. 그 당시 돈 1000여 만원 이상 써 가며 사진을 찍고 녹음을 하며 기록을 남겼다. 그를 보자 친절하게 얘기해주는 분도 있었지만 "세월이 다 그랬다. 너희 아버지가 운이 없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는 "그래서 이 일을 알아보는 게 참 어렵구나 생각했다. 내가 배를 20년 탔는데 그때만 해도 총각이던 때라 이꼴저꼴 보기 싫어서 캐나다에 그냥 내리려고 했다"며 한탄했다.
"이런 고통을 당한 자녀들을 정부에서 내몰라 하면 안 돼. 47년생들이 이런 가정이 많아요. 칠십이 넘은 내가 이 나이에 혜택 보려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 억울하게 죽었으니까. 민간인 학살이며 보도연맹 해서 군인이 죽이고 적대세력이 죽이고 한 사건이 얼마나 많나. 정부에서 세월은 흘렀지만 이렇게 우리처럼 불우하게 큰 가정들이 있다 이런걸 알아주면 좋겠더라고".
* 이 기사는 증언자의 구술을 그대로 살리고자 방언을 사용하였습니다. 구술 내용 중 날짜, 나이, 숫자 등에는 구술자의 기억의 외곡이 있을 수 있으며 전체 내용 또한 증언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록됐습니다.
유족
■ 이름 : 박영학
■ 희생자와의 관계 : 희생자의 아들
■ 생년월일 : 1947년 4월1일 / 만 76세
■ 성별 : 남
■ 주소 : 함양군 안의면 안의초등길33
■ 직업 / 경력 : 항해사
희생자
■ 이름 : 박길주
■ 생년월일 : 1923년 9월28일
■ 사망일시 : 1949년 2월20일
■ 성별 : 남
■ 결혼여부 : 기혼
■ 주소 : 경남 함양군 안의면 귀곡리 625
■ 직업 / 경력 :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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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발령 한 달 만에 아버지는 반동분자로 몰려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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