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앞의 I Love Nice 조형물아 앞에서 사진 찍는 동안 타깃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여기가 좋아 뛰어다니는 어린이는 내 아들만은 아니다. 사진 속 아이도 그랬다.
유종선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소매치기를 당하다니
한 10여 초였을까. 난 믿을 수 없었다. 믿기 싫었다. 맞은 편의 한국인 관광객이(대학생 친구끼리의 여행으로 보이는 두 여성) 나의 실시간 표정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주야.... 아빠, 지갑 도둑맞은 것 같아.'
'에엥 진짜요?'
두 여성은 이 대화도 다 듣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움에 갑자기 말문이 터졌다.
'저기, 지갑 괜찮으세요?'
'네? 아... 네 저희는.'
'조심하세요 전 방금 도둑맞았네요'.
'아, 네......'
도대체 이런 오지랍은 왜 부리는 걸까. 맙소사. 자기 혐오가 덮친다.
2023년 올해는 니스 카니발의 150주년이었다. 동선이 썩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겨울의 니스를 스케줄에 굳이 넣은 것은 바로 이 카니발을 우주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트램에서 내리니 온 도시에 축제의 기운이 가득했다. 그러니 소매치기도 가득하겠지.
보통 유럽의 겨울은 비수기다. 여전히 관광객이 많긴 하지만, 철새처럼 국경을 넘나든다는 유럽 소매치기들이 쉰다면 겨울이다. 굳이 겨울에 활동을 해야겠다 싶다면 150주년을 맞은 니스의 대형 축제 현장을 노리겠지. 신나서 공항 밖에서부터 사진 찍는 우리 부자가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목표물로 보였을까.
숙소에서 물어 경찰서를 찾아가 리포트를 작성했다. 이것도 유튜브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직업란에 연출자,라고 적자(그걸 굳이 왜 그렇게 자세히 적었을까? 지갑 찾아줄까봐?) 경찰관이 묻는다.
영화? 드라마? 뭐 연출했어? (한국도 아닌데 이걸 왜 묻지?) "네, <60일 지정생존자>라는 드라마를 연출했고, 미국 원작의 한국 버전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어요"라고 조건반사적으로 대답한 후 더욱 급격히 부끄러워진다.
이건 뭐, 교통 사고를 당해 피 흘리며 쓰러져 있을 때 외국인이 '아유오케이?' 하고 물었는데 반사적으로 '아임파인땡큐'라고 대답하는 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