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근교 세고비아의 수도교도시에 물을 운반하기 위한 다리로 로마시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유종선
여행도 결국은 일종의 소비 행위다. 관광지와 교통편, 숙소의 스케줄을 계획하고 구매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여행자들은 볼 수 있는 것들만 보게 된다. 현지 사람들이 살아가며 느끼는 것들이 궁금했지만, 들여다 볼 기회가 없다. 상미 집에서의 며칠은 나와 우주에게 여행의 새 단계를 열어주는 기간이었다. 마드리드 현지에서 발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가족과 동행하는 경험이었다.
상미와 렉스는 중학생이 된 큰 아들의 방을 우리에게 내주었다. 방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 스타들의 사진이 잔뜩 붙어 있었다. 우리가 'FC바르셀로나 홈구장에 다녀왔는데 되게 좋더라'고 말하니, 첫째는 우릴 반기는 와중에도 '거기보다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더 좋다'며 라이벌팀에 대한 적대감을 확실히 표현했다.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은, 우주에게 FC 바르셀로나 홈구장에서 사온 옷은 안 입히기로 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난 쩔쩔 맸는데, 둘이나 셋 키우는 집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내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이어질 네 번의 아침은 그 체험판이었다.
프랑스 대가족 풍경, 폭풍처럼 보였다
상미와 렉스의 첫째 온(가명)은 중학생, 둘째 조(가명)는 5학년, 셋째 린(가명)은 유치원 생이다. 객식구 둘까지 포함해서 깨워서 씻기고 아침을 먹이고 나가기까지, 무슨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일이 일어났다. 투정, 장난, 갈등, 훈육, 칭찬, 독려, 눈물바람, 웃음바람....... 사람이 많으니 이렇게 감정의 관계도가 많구나. 숱한 감정들이 짧게 짧게 오가다가 우루루 각자 집을 나섰다. 나는 숨을 죽이며 뭔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지만 신통치 않았다.
렉스를 처음 알게 됐던 건 둘이 한국에서 연애를 할 때였다. 난 어릴 때 잠시 프랑스에서 체류한 적이 있어서 프랑스 사람을 반가워 한다. 렉스는 마침 나와 동갑이라 어릴 때 봤던 TV프로그램이나 만화 주제가 같은 것을 공유하는 기쁨이 있었다. 워낙 오래된 기억이고 지금까지 연락이 닿는 현지 친구가 없어, 난 다 잊어버린 서툰 불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렉스랑 어릴 때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다만 달랐던 건 난 파리에서 살았기에 파리를 그리워하는데, 렉스는 프랑스 남부 툴루즈 출신이라 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 '서울 깍쟁이들' 같은 느낌인 걸까? 상미와 렉스가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에 거주하게 된 것도, 또 바르셀로나보다는 마드리드를 선호하는 것도 그런 취향에 따른 결과일지도 몰랐다.
둘은 결혼 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신혼을 보냈는데, 난 그 때도 이들 집에서 며칠 신세진 적이 있었다. 첫째 온이가 아기고 둘째 조가 뱃 속에 있을 때다. 상미는 한국어에 굶주렸던 듯 내게 많은 대화를 쏟아냈다. 당시 렉스는 갑작스레 외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는 상미가 우울해한다며 걱정했다. 그때만 해도 싱글이었던 난 상미의 고군분투를 거죽이나마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당시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렉스는 임신 후기였던 상미를 대신해 나를 기차역에 내려줬다. 그 순간 나는 휴대폰을 렉스 집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렉스는 걱정 말라며 소포로 보내주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온갖 연락을 도맡는 조연출 일을 해야할 상황이었다.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 근처에 택시가 한 대 멈춰섰다. 두고간 휴대폰을 들고 상미가 쫓아왔던 것이다. 내가 덤벙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릴 때나 별로 다른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