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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죽고, 얼어붙고... 농민의 마음은 타들어 갑니다

기후 재난으로 인한 농민의 피해

등록 2024.09.03 12:54수정 2024.09.0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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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농작물

농작물 ⓒ organicdesignco on Unsplash


나는 한살림생산자다. 유기재배기준을 준수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한다. 아래 사례들은 과수(저농약을 강화한 참여인증 1단계)를 제외하고는 유기재배를 하고 있는 한살림생산자의 경우이고 피해 정도에 대한 금액 역시 한살림 생산자(2000세대) 기준이다.

기후 뒤에 붙는 말이 세지고 있다. 변화 -> 위기 -> 재난으로. 그것은 기후로 인한 피해의 강도와 빈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농업의 특성상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놓여있는 농민의 경우 매년 반복되는 재난에 가까운 피해로 인한 생산물의 망실과 생산 불안정성에다 인건비 등 경영비 상승 등으로 인한 소득률 저하로 생활이 밑바닥으로 내몰리고 있다. 2~3월의 이상난동과 잦은 비, 4월의 냉해, 6월 우박 피해, 7~8월의 장마와 폭염, 8~10월의 태풍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 속에서 생산자, 농민은 어떨까?

나의 경우 2018년 8월 최고 42도까지 올라간 폭염으로 인한 기억이 아프다. 700평에 550kg의 종자생강을 심어 216kg을 수확했다. 7월 중순까지 싹이 트고 헬리콥터 날개를 연상케 하는 본잎이 나왔던 밭이 고온을 견디지 못해 말라 죽어갔고, 8월 말에는 녹색으로 물들었던 밭이 갈색으로 변했다.

그 뒤로 한 달여를 밭에 가지 못 했다. 비용 이전에 암담했고 갈아엎지 못하고 수확한 결과는 참담했다. 종자값도 못 나왔다면 어떤가? 밭 임대비, 파종과 수확 그리고 김매기 4번의 인건비, 자재비용 등은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재해보험 대상이 아니었고, 피해로 인한 정부 보상은 없었다.

일 년 농사 망했는데... 보상도 제대로 못 받는다니

2023년에 사과 값이 폭등했고 그만큼 사과가 귀했다. 사과 생산자는 어땠을까? 사과 농사짓는 50대 생산자를 예로 들어보자. 과수원 2000평에서 중생종인 홍로 1000평에 12톤, 만생종 부사 1000평에 15톤이 평년작이다. 2022년 4월 냉해 피해로 홍로 기준 4톤 수확으로 33% 밖에 수확을 하지 못했고, 2023년도에는 4월 냉해 피해에다, 6~7월 긴 장마(55일)로 인한 탄저병으로 0.2톤 수확으로 16% 정도로 수확을 했다. 재해 보험에 가입했으나 탄저병은 일반병이라 보험보상은 없었고, 역시 국가보상도 전혀 없었다. 농사로 돈을 벌지 못했으니 농사를 계속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도로 주변 풀 베는 팀에서 일하고 있다.

2023년 12월 1일 ∼ 2024년 3월 10일 기준 평균 기온은 전·평년 대비 2도 이상 상승했으며(과실류는 3년째 이어졌던 냉해 피해를 피해 갔다), 강수량은 전·평년 대비 3~5배 많고, 일조시간이 전·평년보다 169~176시간 부족(약 30% 감소) 했다. 농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맥류(밀, 보리, 귀리)와 월동작물인 양파와 마늘이 생육이 약화되고 병충해가 창궐했다. 맥류의 경우 잦은 비로 작물의 생육이 악화되었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붉은곰팡이병이 심해져 평년작 기준 밀은 44%, 찰보리 65%, 쌀보리 66%, 검정찰보리 54%, 귀리 39% 정도 수확이 이루어졌으며 품위 역시 정상품이 적었다. 전라남도의 경우 함평을 제외하고 재해보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자체의 피해보상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설채소는 어땠을까. 성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고 있는 50대 생산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1200평의 시설에서 참외 농사를 짓고 있는데, 3~4월 40%, 5월 30% 수확량 감소가 있었고 6월에 정상화 되었는데 국가보상은 평당 500원(60만 원/1200평)이었고, 재해보험에 가입했는데 일조량 부족은 해당 사항이 아니어 보험금 지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7월 초 충청도 지역에 시간당 100mm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가 있었다. 역시 농민의 피해는 컸다. 30대 생산자는 약 510평의 생강밭이 산사태와 호우로 유실되고 침수되었다. 국가보상은 없었고, 생강은 재해보험 대상이 아니었다. 50대 포도 생산자는 1000평의 밭이 완전 침수되었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익어가는 포도를 따내었고, 나무가 사는 지는 내년을 보아야 안다. 역시 국가 보상은 없었고 재해보험 가입은 불가였다.

한살림은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생산안정기금을 운영한다. 자연재해로 인해 약정량 기준 출하량이 50% 미만일 경우 농업경영비를 보전해 주기 위해 50% 기준 차액을 생산자에게 지원해 주는 제도다. 2020년에서 23년까지 생산안정기금 지급액이 118억이므로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자의 총 손실액은 236억(연 59억)이다. 자연재해가 대상이므로 병충해 등으로 인한 손실은 빠져있다.

기후위기는 생산의 불안정성을 심화한다. 농사를 지어 농산물을 출하하고 받는 돈으로 먹고살며,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식으로 농업을 지속하는데 '농산물의 출하하고 받는 돈' 부분에서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의 지원과 재해보험을 통한 지원 역시 멀리 있거나, 아예 없다. 코로나 이후 인건비와 농자재 비용의 급격한 상승(인건비는 100% 이상)과 기후 위기로 인한 비용 증가와 생산성 약화로 인한 소득률의 급격한 하락이 매년 되풀이되며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의 현실이다.

기후변화에 적응하여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찾고, 농업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농민의 자기노력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시간과 여력이 필요하다. 사과를 따고 있어야 할 농민이 도로에서 예초기로 풀을 베고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처럼 가치나 미래만 이야기하는 사이에 작금의 현실 속에서 떨어져 나가는 농민을 어찌할 것인가. 소비자와 국가의 역할이 절실하다. 농민이 살아야 환경보존, 식량생산, 일자리 창출 등의 농적 가치를 실현할 것 아닌가.
기후재난이 일상이라서 하는 말이다. 재난이 닥치면 먼저 사람을 살려 놓아야 할 것 아닌가?

폭염 속에서 처서(올해는 8월 22일)가 지났다. 여름의 끝에서 찬바람이 불어서 작물이나 농민이나 가을을 준비하는 24번째 절기 중 14번째 절기다. 농민은 가을농사를 위해 김장 배추나 양배추, 브로콜리 등을 심기 시작한다. 올해는 폭염이 길어 3~4번의 모종을 밭에 내다 심는다. 더위에 말라 죽으니까. 그래도 추위가 일찍 오면 결구가 안 되고 품위가 안 나오니 심어야 한다. 심어야 가을에 수확이 있으니까. 그래야 내년 농사가 있으니까. 농민은 이렇듯 일상에서 힘들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조도운 님은 전북의 농민이자 한살림 정책 전국위원장입니다.
#기후정의행진 #907기후정의행진 #기후정의 #한살림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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