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는 여친, 그 섹시함에 '뿅' 갔다"

[자전거와 휴가를 ⑤] '메가쇼킹' 만화가 고필헌과의 자전거 데이트

등록 2006.08.11 08:49수정 2006.08.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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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설레는 여름 휴가. 자동차 여행도 이젠 식상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빠름 속에 놓친 느림의 풍경이 있는 자전거 여행은 어떨까요. 10주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 다섯째 주에는 자전거와 함께 떠나는 휴가를 제안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호흡하는 섬진강과 강화도 기행, 출퇴근길 대전 도심에서 즐기는 생태 여행, 자전거 타고 떠나는 신혼여행까지…. 인터넷에서 '메가쇼킹 만화가'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고필헌 작가와 '괴물'이 출몰하는 한강으로 '자전거 데이트'를 떠났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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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필헌씨와 그의 애마인 '스트라이다'. 한강변에서 자전거 데이트를 하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 김대홍

"죄송합니다. 15분쯤 늦겠습니다."

큰 실례를 했다. 바쁜 작가를 불러 놓고 지각을 하다니. 그것도 실내가 아닌 한강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습니다. 저는 지금 자전거 타면서 이곳저곳 다니고 있거든요. 천천히 오세요."

약 15분 뒤, 양화대교 부근에서 '메가쇼킹 만화가' 고필헌(33)씨를 만났다. 그는 스투닷컴에 <애욕전선 이상 없다>를, 파란닷컴에 <라스베가스 디스코 익스프레스> <탐구생활>을 연재 중인 인기 만화작가다. 삼각형 미니벨로인 '스트라이다'를 몰고 나온 고 작가는 얼굴 가득 푸근한 웃음을 보이며 지각한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내리쬐는 땡볕에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 데이트를 시작했다. 성산대교 근처 모래찜질장 그리고 자전거를 타면서 이뤄진 안장 위 인터뷰를 소개한다.

"자전거 액션 나오면 '껌뻑' 죽었죠"

- 자전거를 탄 지는 오래 되셨어요?
"얼마 안 됐어요. 중학교 시절 잠깐 타다가 99년(군대 제대 뒤)쯤부터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어요."

- 아니 갑자기 왜 그런 결심을 하셨죠?
"제가 원래 느린 것을 좋아해요. 자동차는 되게 싫어하고. 운전면허도 안 땄어요. 따면 자동차를 괜히 사고 싶을 것 같고. 사면 더 좋은 차 타고 싶은 욕심 생길 것 같아서요. 앞으로도 운전면허는 안 따려고요."

- 자동차가 싫으면 오토바이도 있잖아요.
"아, 제가 연기를 무척 싫어해요. 군대 시절 화생방 훈련 받을 땐 '쥐약'이었어요. (어린 시절에 소독차 뒤를 따라다니곤 하지 않았나요?) 그것도 싫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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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필헌씨가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느림' 때문. 그는 어린 시절 성룡이 주인공을 맡은 <프로젝트A>의 자전거 액션 신에 흠뻑 빠졌었다고. ⓒ 김대홍

그는 확실히 '느림' 예찬론자였다. 자전거를 타서 좋은 이유를 묻자, 건강, 느림, 환경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자전거를 타면 '항상 앞질러야 하고 치고 올라가야 하는 각박한 현대 문화에서 한숨 돌릴 수 있다'는 것. 함께 자전거를 탈 때도 아주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여유'를 즐겼다.

그는 올해 초 한강 근처로 이사왔다. 이유는 단 하나, 자전거를 많이 타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그에게 자전거로 한강을 달리면서 얻게 된 좋은 점을 물었다.

"새롭게 알게 된 게 많죠. 한강에 백사장이 있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노량진 근처에서였는데, 백사장에 앉아서 풍경을 보고 있으니까 오리 떼가 몰려와서 '꽥꽥'거리더라고요. 차만 타고 다녔으면 절대 못 봤을 풍경이죠.

자전거로 한강을 다니면서 생긴 나만의 비경도 몇 군데 있어요. 하나는 상수 지하보도 앞인데 여기서 보이는 밤섬 풍경이 무척 좋아요. 망원지구에서 보는 야경도 좋고요. 특히 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데, 구름이 흘러갈 때는… 참, 좋죠."

입을 다물고 있으면 한없이 침묵을 지키고 싶을 것 같은 고 작가. 자전거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이야기가 '술술술' 나온다. 그런데 그의 자전거 사랑은 거의 본능적인 듯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전거 만화나 영화만 보면 '껌뻑' 죽었다. 기억에 남는 영화나 만화를 소개해 달라고 하자 이야기 봇물이 터졌다.

"어렸을 때 자동차를 타고 벌이는 액션 영화가 무척 많았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멋있더라고요. 대신 자전거 타고 벌이는 액션은 예술이었죠. 성룡의 <프로젝트A> 기억나세요? 자전거를 타고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찌나 멋있던지.

그리고 일본 작품 중에 <메신저>라고 있어요. 초난강(쿠사나기 츠요시)가 주연한 작품인데, 자전거로 오토바이 퀵서비스와 대결하는 내용이에요. 끝내줍니다. 꼭 보세요. 그리고 <이티> <구니스> 등 많죠. (<인생은 아름다워>도 있죠) 맞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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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영(강풀), 정헌재와 함께 웹툰 1세대로 불리는 '메가쇼킹' 만화가 고필헌. ⓒ 고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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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필헌 작가가 작품화를 원했던 소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한강 괴수 영화, 또 하나는 자전거 액션 영화다. 최근 영화 <괴물> 개봉으로 절반의 꿈을 이뤘다. 그의 방에 있는 괴수 5종 세트(왼쪽)와 합성물 '스턴트맨 만화가'(오른쪽) ⓒ 고필헌


음, 지금까지 살면서 아쉬운 게 두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한강에 괴물 나타나는 영화가 왜 없었느냐는 것이었어요. 다행히 얼마 전 영화 <괴물>이 개봉됐더라고요.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데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어요. 또 하나는 자전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없다는 거죠. 빨리 나왔으면 좋겠는데…."

고 작가가 자전거 이야기를 할 땐 얼굴 가득 웃음이 퍼졌다. 꼭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마 주위 사람들에게 자전거 타라고 당연히 권유했을 것이다.

"자전거 앞뒤에 아기 태운 엄마 가장 아름다워"

- 강풀, 곽백수 작가와도 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분들에게도 권유하셨죠?
"그럼요. 제가 주위 만화가들 만날 때마다 자전거 타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잘 안 넘어오더라고요.(웃음) 거의 비슷한 반응이 나오는데, 자전거 타고 작업실 방문하면 첫마디가 이래요. '미쳤냐?'

언젠가 강풀 작업실에 케이크를 사들고 가서 간곡하게 자전거 타라고 권유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안 넘어오던데,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 보곤 자전거 타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모양이더라고요. 백수 형은 지금 열심히 자전거 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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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한강변을 달리면서 생긴 그만의 비경 중 하나. 상수 지하보도 앞에서 바라보이는 밤섬 앞에서 잠시 자세를 취했다. ⓒ 김대홍


- 여자 친구 분도 자전거 탄다고 들었는데요.
"아주 잘 타요. 저보다 훨씬 잘 타죠. 제가 여자 친구에게 반한 게 바로 자전거 때문이에요. 언젠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언덕길을 넘은 적이 있어요. 그때 나는 기어를 최대한 올리고 힘들게 올라가는데 여자 친구는 기어 조절도 없이 무덤덤하게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섹시하던지…. '뿅' 갔어요.(다리가 가늘진 않겠네요?) 그럼요. 저는 가냘픈 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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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작가의 얼굴과 실제 작가 얼굴. 닮았나? ⓒ 김대홍

자전거라면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는 고 작가지만 그가 싫어하는 게 있다. 특별하고 화려하면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자전거 문화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귀티 나는 자전거를 탄 상태로 한강을 질주하는 모습이다. 그는 그런 차림으로 과연 "장을 보고, 마실 나가고, 출근하느냐"면서 일상으로서 자전거 타기를 강조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자전거가 일명 '쌀집 자전거'예요. 가장 자전거에 적합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단순하면서도 튼튼하고 잔고장이 없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전거에 이것저것 붙기 시작했어요. 희한한 것은 그러면서도 오히려 옛날 자전거보다 고장은 더 잘 나더라고요.

자전거를 보면 꼭 우리 사회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겉은 화려해지는데 몸체는 더욱 부실해지는…. 언젠가 정장을 입고 자전거를 탄 사람을 봤는데, 참 좋았어요. 정장을 입기 싫어하는데, 언젠가 입어야 할 기회가 생기면 나도 그래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는 망원시장(고필헌 작가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장보는 아주머니들이 자전거를 끌고 나왔을 때 무척 보기 좋다고 말했다. 특히 자전거 앞뒤에 아기를 태우고 가는 엄마의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라면서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런 고 작가가 우리나라 자전거 문화에 대해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배려심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차가 너무 많아요. 배기가스도 많이 내뿜고. 배려심도 부족해요. 자전거를 보면 마치 '모기'라도 본 것처럼 '빵빵'거려요. 그런 차들을 보면 모두 한 명씩 타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네 명씩 타고 있는 차를 보면 참 멋져 보여요.

자전거 운전자들도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있죠. 얼마 전 전국 자전거 일주도로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반가운 일이죠. 하지만 먼저 사람들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강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시로 '따르릉' 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모든 교통은 약자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한강도로에선 당연히 보행자가 우선이죠.

도로에서 사람을 만나면 속도를 조금 줄이거나 잠시 기다렸다가 옆으로 빠지면 되잖아요. 또한 자기가 전투기라도 되는 양 무차별적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이 없을 때 달리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을 땐 위협이죠.

한강 도로는 서울 도로의 축소판이에요. '따르릉' 거리며 달리는 사람은 자동차를 탈 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도로를 많이 만든다고 해서 자전거 환경이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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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집 자전거'를 가장 좋아한다는 고필헌 작가. '쌀집 자전거'가 차도에 가득한 날이 오면 그는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지?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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