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조선학교를 알고 싶다면 이리 오라!

편견과 차별 속에서 피어난, '조선학교 판넬전'

등록 2006.12.02 14:31수정 2007.04.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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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 전화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심지어 수업중인 학교 주변에서 확성기로 조선으로 돌아가라, 조선학교는 망해야 한다고 외치는 우익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정부가 우익들의 불법적인 협박과 폭력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에는 반대합니다. 그러나 북한을 궁지에 몰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것이 가장 걱정입니다."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일본 언론들은 연일 이를 특집으로 다뤄왔다. 이는 재일조선인 사회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요미우리신문(讀買新聞)>의 10월 11일자 조간에는 '북조선 핵실험'에 관한 특집 기사가 실렸다. 그중에는 일본 내 조선학교의 피해 상황에 관한 짤막한 보도 기사도 있었다.

북핵사태로 다시금 불붙은 '협박'

a 교토 조선중고급학교 체육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선생님과 2인3각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교토 조선중고급학교 체육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선생님과 2인3각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 박은영

기사에 의하면 홋카이도(北海島) 조선학교에 걸려온 11건의 협박전화를 비롯해 센다이(仙台市), 삿포로(札幌市), 코야마(小山市) 등의 조선학교에 '북한에 돌아가라', '학생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폐교하라'라는 내용의 전화가 연이어 걸려왔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들은 조선인으로 살고 싶은 마음에, 또 자신의 아이들을 조선인으로 키우고 싶어서 조선학교를 만들고 이를 지켜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 실험 같은 민감한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긴장해야만 했다.

현재 일본 전국에는 71개의 조선학교가 있고, 약 1만2천명의 학생들이 등록되어 있다. 재일조선인들의 주요 거주지에 속하는 교토시의 조선학교에는 중급학교에 130명, 고급학교에 114명 정도의 학생들이 속해있다. 이들 중 일본 대학과 조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각각 30% 정도씩이다. 나머지 학생들은 취직을 하거나 전문학교에 진학한다.

이들이 배우는 수업 과정은 일본학교와 같다. 그러나 조선어와 민족교육을 병행하는 까닭에 전체 교육시간은 다른 일본학교에 비해 1505시간 정도 길다.


오늘의 조선학교가 있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10년 전 교토에 있는 제2초급학교(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에 교장으로 부임한 오성원씨. 10년 전만 해도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사회의 편견은 지금보다도 대단했었다고 한다.

"저는 딸아이에게 '치마저고리를 입고 당당하게 학교에 가라'고 말했지만, 딸아이는 '아버지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하굣길에 딸아이의 친구가 뒤에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더래요. 그 바람에 넘어져서 얼굴을 부딪치고, 벌겋게 부어서 피까지 났더라고요. 그땐 정말 괴로웠습니다."


아직도 일본 사회 속의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조선학교를 바로 알고, 알리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한가운데 '조선학교 판넬전'이 있다. 조선학교 판넬전은 무지와 편견으로 인해 차별당하는 조선학교의 현실에 공감하고 이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교토시와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모여 판넬을 제작, 각 학교를 순회하며 전시회를 연다. 2006년 6월경부터 적은 인원으로 시작한 모임이 어느새 교토의 유력 일간지인 <교토신문>에 실릴 만큼 성장했다. 교토대학, 도시샤대학, 교토외국어대학 등에서 각 학교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어느덧 열 차례가 넘게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편견과 차별 속에서 피어난, '조선학교 판넬전'

a 카페에서 열린 판넬전

카페에서 열린 판넬전 ⓒ 조선학교판넬전

지난 여름, 판넬전이 열린 교토 리츠메이칸대학. 작은 교실 가득 붙은 색색의 판넬에는 아이들의 사진과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은 여선생님, 그들의 삶이 녹아있는 낡은 교정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조선학교가 생긴 유래에 대한 설명부터 이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조장하는 일본정부에 대한 항의문까지. 한장 한장 꼼꼼히 살피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교토 제3초등학교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삼이>도 큰 호응을 얻었다. 어색한 조선어를 쓰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들. 아이들에게 '민족'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모습. 짧지만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는 조선학교를 더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큐멘터리 상영 후 조선학교 현황 설명이 이어졌다. 발제를 맡은 김의상(23·리츠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씨는 조금은 긴장된 모습으로 말을 이어갔다.

김의상씨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학교는 일본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교육하고 있지만 '학교교육법 83조'에 의해 각종학교(정식학교가 아닌 요리교실이나 사설 학원과 같은 등급)로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학교교육법엔 "정규학교가 되려면 일본교과서를 사용해야 하며 일본어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있는 조선학교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정규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조성금이나 보건시설 등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학교 판넬전'이 시작된 이면에는 조선학교를 '바르게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황을 알게 되었다.

조선학교 판넬전 실행위원회의 간부는 말한다.

"미래 일본사회를 책임져야 할 대학생들이 조선학교에 대해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 학생과 재일조선인학생이 함께 각 대학의 전시회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 기획전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황을 알릴 것입니다. 곳곳에서 일본정부의 차별에 대한 반대 운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또한 조선학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시민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대합니다."

그의 기대에 화답이라도 하듯 전시회를 통해 조선학교를 새롭게 보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리츠메이칸대학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1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해서 전시회장을 가득 채웠다.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시작한 학생들은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발산한다. 그 울림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다. 그리고 변화하고 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 입니다.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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