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할 때는 염소처럼 덜덜 떨었죠"

[인터뷰]레크리에이션 강사 조만기씨

등록 2006.12.18 18:16수정 2006.12.1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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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서 사람들이 저를 보면 저만의 '포스'가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제 목소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레크리에이션 강사 조만기(한림대 언론학과 3·26)씨는 행사만 시작하면 튀어나오는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참가자들과 하나가 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검은 베레모와 나비넥타이를 착용하고 행사장에 가는 그를 17일 한림대학교에서 만나봤다.


"노래 안 시켜준다고, 포크 들고 온 아저씨도 있었죠"

a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조만기씨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조만기씨 ⓒ 왕보영

검정 베레모, 흰색 나비넥타이, 트로트 가수들만 입을 법한 반짝이는 상의…. 이 모두가 조씨가 행사장을 갈 때 즐겨 입는 옷 스타일이다.

"처음엔 청바지에 티 쪼가리 하나만 입고 다녔는데 내 자신이 성의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옷 하나하나까지 신경쓰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런 그도 반짝이 의상에 나비넥타이를 한 뻔뻔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출 때면 쑥스러울 때가 많다고 한다. 요즘 곳곳에서 각종 연말연시행사가 치러진다. 행사가 있는 곳에 조씨의 입담이 빠질 리 없다.

"연말연시다 보니 송년회나 사은회 같은 행사가 많아요. 많을 땐 하루에 2~3개의 행사를 치를 정도로 쉴틈 없이 바빠요."


작년 4월 YMCA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자격증을 딴 것을 시작으로 그가 해온 크고 작은 행사만 500여개다.

"처음 맡은 행사에선 너무 긴장해서 염소 목소리처럼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어요. 말하는 것은 둘째 치고 종이에 미리 적어간 대본 읽느라 정신없었죠."


처음 강사를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조씨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 선배의 권유로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든 아마추어 때와는 달리 이제 프로가 된 자신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다고 한다.

"이젠 여기저기서 불러주는 이들이 많아 마냥 행복해요. '젊다는 것'이 제 유일한 장점이죠. 그 때문에 더 많이 불러주는 것 같아요."

춘천은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많이 없을 뿐더러 있다 해도 조씨가 나이가 어려서 분위기를 띄우거나 젊은 사람들을 상대할 때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500여개 행사를 치르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 난감할 때도 많았다고.

"술 취한 아저씨가 노래를 안 시켜준다고 포크로 찌르려고 하는 거예요. 순간 아차 싶었죠."

이 뿐만이 아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행사를 하는데 시끄럽다고 조폭들이 숙소에서 내려와 무대를 부수고 마이크를 뺏었던 일, 청소년 리더십 캠프에서 평소 아팠던 학생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던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생기면 더 이상 행사 진행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띄어놓은 분위기까지 침체돼 참 난감하다고.

이곳저곳 행사를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 많은 일을 겪어 봤지만 그가 조폭이나 술 취한 사람보다 무서워하는 이들은 '여중생'이다. 올해 여름 그는 학교 근처 여자중학교에서 특별활동시간에 레크리에이션을 가르쳤다.

"여중생들이 앞에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얼굴을 붉히는 조씨.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만기 왔어?'라며 짓궂은 인사를 하거나 날씨가 덥다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제가 말은 잘하는데 가르치는 건 잘 못해요. 더군다나 남중, 남고만 나와서 여중생들을 상대하려니…."

그는 아직도 그 때 생각만하면 진땀이 난다며 고개를 흔든다.

최근엔 엽기적인 중학생들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한 중학교 축제 사회를 맡은 조씨는 학생들의 장기자랑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학생들의 장기자랑은 말 그대로 '엽기적'이었어요. 한 학생이 장기자랑을 한답시고 무대 위에 수박이며 배추, 파 등 각종야채와 과일을 올려놓고 퍼포먼스를 하는 거예요. 무를 이로 갈지를 않나 파로 때리질 않나…. 무대가 난장판이 됐었죠. 그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는 요즘 중학생들은 자신이 학교 다닐 때와는 달리 훨씬 자유스럽고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아 보기 좋았다고 한다. 또 "선생님들도 장기자랑을 시키면 빼는 일 없이 오히려 더 즐기는 것 같다"며, "옛날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 이미지가 아닌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좋았다"고 말한다.

"혼자 있으면 오히려 우울해져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곁에서 함께 웃고 즐기는 것이 익숙해진 조씨, 대인기피증이 아닌 대인욕구증이 넘친다고 보면 무리일까?

"큰 사운드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혼자 집에 있으면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그는 이런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자신과 레크리에이션을 함께 할 사람을 학교에서 물색 중에 있다. 하지만 성적관리와 취업준비로 바쁜 대학생들을 상대로 파트너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저도 시간에 많이 쫓겨 다녔죠. 그 만큼 좀 더 부지런히 생활하니까 괜찮더라고요. 자신이 듣는 수업 말고 하나의 수업을 더 듣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학생들이 학업에 지장이 있을까봐 많이 꺼리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시작을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지켜볼 때마다 그는 성적에 울고 웃어야 하는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화가 나기도 한다고 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엔터테인먼트회사를 차리는 것이다.

"레크리에이션은 재밌으면서도 쉽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매력이죠."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아래부터 차근차근 알아가야 한다는 조씨. 그는 현재 책을 펴내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지금 나와 있는 레크리에이션에 관한 책들은 식상하거나 따분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어떻게 재미있는 글을 쓸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처법, 친해지는 방법을 쓰는 것은 어떨 것 같아요? 아니면 제가 겪은 바탕이나 경험담을 통한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죠?"

자신이 구상한 것을 오히려 그는 되묻기도 한다.

이사람 입담은 정말 대단하다.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의 힘과 재치 있는 말, 이 모든 것이 레크리에이션을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레크리에이션은 그에게 있어 생활의 활력소, 산소탱크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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