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왜 만화에 빠져드나

[한일 시민 친구 만들기 ⑪] 일본 탐방기 두번째 편

등록 2006.12.21 09:30수정 2006.12.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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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 좋은 잡지는 만화 잡지다. ⓒ 맛객

노숙자는 일본에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노숙자와는 다르다. 그들은 절대 남에게 피해가게 행동하지 않는다. 해 떨어지면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날 밝으면 정리 정돈을 깔끔하게 하는 그들을 보면서 일본인 특유의 사고방식은 노숙자도 예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노숙자 하면 연상되는 술판은 찾을 수 없었다. 술병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다. 신문을 보거나 만화잡지를 보면서 무료함을 달래는 노숙자들. 신주쿠 중앙공원 길가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수십 권의 만화책을 쌓아놓고 있었다. 이쯤 되면 노숙자라고 부르기에 앞서 '만화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술 대신 만화? 일본인들의 못말리는 만화사랑

@BRI@일본인의 만화사랑을 단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든 예지만 이처럼 만화와 일본인, 일본인과 만화는 부모와 자식처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들은 왜 만화에 빠져드는 걸까? 만화의 어떤 힘이 그들을 사로잡는 걸까? 재미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만화는 한국에도 많다. 그럼 한국 사람도 일본처럼 만화에 살고 만화에 죽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만화는 일본처럼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해답을 얻기 전에 일본에서 24년여 생활해 온 릿교대 이종원 교수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일본과 한국 사람의 외모는 닮은 듯하지만 행동방식은 180도 다르다. 한국 사람은 화나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일본 사람은 새파랗게 되면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한국 사람은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감정을 숨기는 사람은 비겁자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은 표현하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어린애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한국 사람은 문제제기를 위해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만, 일본인은 테이블 아래에 숨긴다. 서로서로 문제를 알기 때문에 취급을 안 하면서 가까워져 가면서 저절로 녹여간다.


이런 게 한국인과 일본인의 다른 점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사람을 '친절함'으로 인식한다. 언제나 웃고, 언제나 예의바른 일본인. 때문에 아무리 과격한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일본인과 싸우기란 쉽지 않다. 우리말에 있듯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때문이다.

만화는 속마음의 해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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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판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뒷골목에 있지는 않다. 대로변에 자리 잡은 애니숍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일본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 ⓒ 맛객

그래도 일본사람들도 인간인데, 감정이 있는 동물인데, 정말 친절하고 기분이 좋아서 언제나 웃고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나온 말이 '혼네(ほんね)'다. 문제를 테이블 아래로 숨기듯,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가식이고 이중인격자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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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상품으로 응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 모델의 원조 격인 만화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만화 등장인물 복장을 한 여자가 메이드(시중을 들어주는 하녀)카페를 홍보하고 있다. ⓒ 맛객

일본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급정거를 해서 앞을 보니, 앞 택시가 손님을 내려주기 위해 급하게 멈춰 섰다. 내가 탄 택시기사는 "빵!" 클랙슨을 한 번 누르고 다시 출발한다. 뒷좌석에서 기사의 얼굴을 바라보니 분명 화가 나긴 했는데 입을 꼭 다물고 있다. 한국 기사라면 벌써 강아지(개 새끼)부터 찾았을 텐데 꾹 참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 그들이 좋아하는 게 만화다. 무슨 얘긴가? 아니 만화라는 게 뭔가? 만화는 캐릭터(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과장되어 표현된다. 화난 상태라면 엄청 화나게, 웃고 있다면 숨 넘어 갈 정도로 감정을 과장 시킨다.

어쩌면 일본인들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삶을 살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만화를 통해 배설하는지도 모른다. 실생활에서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분노와 슬픔, 아픔 같은 감정을 만화 속 캐릭터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는 건 아닐까? 즉, 혼네의 탈출구가 만화라는 거다.

대리만족은 영화를 통해서도 할 수 있지 않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만화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라면 개인 대 단체에 있다. 만화는 혼자서 혼자만의 공간에서 아무런 방해도 없이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수십 수백 명과 함께 봐야 한다. 개인의 생활과 공간을 남과 공유하길 싫어하는 일본인 특성을 파악한다면, 왜 영화보다 만화인지 쉽게 수긍이 간다.

혼네, 익명성의 인터넷 공간에는 없다

<오마이뉴스 재팬> 도리고에 ㅤㅅㅠㄴ타로 편집장은 일본의 수많은 누리꾼들의 공격 표적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에 도리고에는 거침없는 언변과 주장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도리고에는 한국인"이라는 소리도 듣는다는 도리고에 편집장은 말한다.

"온라인상에서는 한국을 비난하는 글들이 난무하는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 익명이다."

그렇다. 익명일 때는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처럼 과격해지고 남을 욕하기도 한다. 다만 그들의 사고방식에 의해 대인관계에서는 속마음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과장된 캐릭터나 과격한 만화를 보면서 숨겨놓은 속마음을 발산시킨다.

그런 일본인의 생활이 만화를 발전시킨 힘일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오늘날 만화는 일본문화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생활 속 곳곳에서 만화와 함께하는 일본, 만약 그들의 삶속에서 만화가 없었다면 '혼네'와 '다테마에'로 대변되는 사고방식도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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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주인공으로 만든 캐릭터숍에는 청소년보다 성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 맛객

덧붙이는 글 |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메이드카페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메이드카페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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