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개월 x 7800원 = 오백만원

[나만의 특종] 20년 동안 부어온 적금을 타던 날

등록 2006.12.26 17:40수정 2006.12.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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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붓고 오늘(26일) 타러 오신 거예요? 그땐 7800원이 큰돈이었는데.”
“네 큰돈이었지요. 지금은 7800원이 작은 돈이지만 500만원은 그래도 큰 돈이지요.”
“그럼요 큰돈이고 말고요. 이게 이자율이 굉장히 좋은 상품이에요.”

은행 과장이란 남자가 한동안 그 통장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때 여직원이 “고객님 이 돈 어떻게 드릴까요?”라고 하길래 “이 통장에 넣어주세요”라고 대답했다.

매달 7800원씩을 20년 동안 붓고 500만원이 된 적금을 타는 날이다. 지난밤엔 괜스레 마음이 설레 잠에 쉬 들지 못했다. 통장과 도장을 만져보고 쳐다보고 또 만져보았다. 기어이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최고였다. 만원도 안 되는 돈을 20년 동안 넣으면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가보다.

@BRI@20년 전,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살 때였다. 그때 남편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단칸 셋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큰아이는 3학년, 작은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어렵게 새 출발을 시작하고, 적은 돈이지만 매달 조금씩 저축도 하고 적금도 들었다. 그때 서대문에 있는 주택은행에 이 적금을 들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은행이 많지 않아 본인이 원하는 은행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씩 가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 적금의 이율이 좋다고 해서 나도 없는 셈 친다면서 20년 만기로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20년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거나 지루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적은 돈이지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의 액수가 작은 행복도 맛보게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실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의 사업주가 바뀌면서 본의 아니게 사표를 내게 된 것이다. 가장의 실직은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조금씩 저축한 돈과 적금도 모두 해약해서 생활비로 충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 돈만큼은 건드리지 않고 싶었다. 만약 그 돈이 매달 7만8000원씩이나 그 이상을 부었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해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은 돈이기에 해약해서 써도 2~3달이면 몽땅 없어지고, 흐지부지 될 것이 너무나 뻔한 일이란 것을 알았던 것이다. 남편에겐 그 돈이 있다는 것조차 내색도 하지 않았다. 또 그것마저 해약을 한다면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가장이 실직을 했으니 아무리 적은 돈이지만 적금은 붓지 못한 채였다.

한 달 두 달, 실직상태가 계속 되었고 6개월을 넘기고 있었다. 답답했던 남편은 막일이라도 찾아본다고 했다. 막일도 한 두 달 정도는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 아주 기본적인 생활만 하고 그 이상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반찬값이라도 보태기 위해 부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쨌든 빚은 지면 안 되는데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이 고비를 잘 넘겨야지’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 먹기도 했다.

시장도 비교적 싸다고 소문이 나서 서민들이 많이 찾는 불광동 시장이나 용산 시장까지 다녔다. 그곳에서 장을 한 번 봐오면 일주일이나 10일 정도는 시장에 거의 가지 않고 동네에서 두부나 콩나물로 해결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여기저기 직장에 끈을 놓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더니 10개월만에 재취업에 성공을 했다.

직장에 취직은 했지만 그동안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다 썼으니 적금을 붓기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1년도 훨씬 지나서 적금을 붓기 위해 그 은행을 다시 찾았다. 1년 이상 밀린 통장과 두 달 치 적금 1만5600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은행 직원이 “이 적금이 너무 많이 밀려서 오늘 절반 이상 내지 않으면 자동해약이 됩니다”한다.

‘안 되지. 내가 이 적금을 어떻게 지켜 왔는데. 그럴 수는 없지’하곤 가지고 간돈 중에서 차비만 남겨놓고 겨우 절반 이상을 불입할 수 있었다. 그리곤 그 다음 달에 가서 나머지 절반을 마저 불입을 하고 정상적인 통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이 그 적금 시작하고 6년째 되던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후로 그 적금통장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선적으로 불입했다.

은행직원이 계산을 해본다.

“가만히 있어봐 7800원 x 240개월 = 187만2000원 붓고 500만원 타시네요.”

200만원도 안 붓고 500만원을 탄다면서 “이 상품 개발한 사람...”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한 달에 7800원씩 20년을 부어온 것이 어느새 끝이 나다니. 나도 20년의 세월이 잘 믿기지 않았다. 하룻밤 긴 꿈을 꾸고 난 듯했다.

그 적금 불입날짜가 되어 은행에 갈 때는 아주 가끔은, 이왕이면 그때 조금 더 큰 것에 가입할 것을 그랬나 하는 욕심도 생겼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도 잠깐.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것도 나에게는 큰돈이었고 그것마저도 안 들어 놨으면 어쩔 뻔했어 하곤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준다.

난 가끔 아이들한테 그 통장을 보여줬었다. 그럼 아이들은 “엄마 그 적은 돈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모으면 지루하지 않아? 난 짜증날 것 같아”한다. 그럼 난 “아니야 니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렇게 적은 돈이 모여서 큰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재미있다. 큰돈하고는 주는 묘미가 다르다” 했었다. 그 당시에 그 적금을 들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주택은행에 새까맣게 줄을 섰던 기억도 난다.

다른 통장에 500만원을 입금시켜 놓고 은행 문을 나섰다. 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 오늘 그 적금 탔다.” 남편이 “당신 그 돈으로 뭐할 건데?” “글쎄 저 강원도 오지에 가서 땅이나 알아볼까?” “그래 그러자. 땅 보러 가자고.” 남편이 장단을 맞춰준다.

나도 남편도 안다. 요즘 돈 가치가 그전만 못하다는 것을. 하여 제대로 된 땅 한 평도 못 산다는 것을. 하지만 남편이나 나나 그 돈의 가치는 그 이상이란 것을 또 알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깊은 절망 상태에 빠진다 해도, 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작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절감하게 되었다.

난 20년 동안 부어온 적금을 타고 7년 만기의 적금을 새로 들었다. 남편이 “한 3년 만기로 하지 지루하지 않을까?” “지루하긴. 7년 잠깐 가지.” “하긴 당신은 20년 동안을 부어 온 사람이니깐 7년은 잠깐이지.”오늘 저녁 남편과 근사한 외식을 하면서 자축파티라도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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