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의 역사 앞에서 오늘의 문제가 씁쓸하기만 한가 봅니다.변태섭
지난 2월 6일자 < PD수첩 >을 보니 <한겨레> 안수찬 기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본권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선배나 데스크의 얼굴로 다가온다"고. 그리고 이날 고재열 기자는 "독재 권력은 펜을 꺾었지만, 자본권력은 펜을 구부리고 길들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이미 많은 언론들이 대기업과 같은 경제주체에 해(害)가 되지 않는 기사만을 싣는 검열기준을 스스로 내화했다는 말이겠지요. "언론이 배고파지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삼성밖에 없다"며 기사 불기재를 종용한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의 말은 이런 면에서 인상 깊습니다.
<시사저널> 노조의 '고난의 행군'이 주목되는 것은 바로 그래서입니다.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언론의 문제이며, 나아가서는 미래의 제 문제일지도 모르니까요.
낭만을 꿈꾸며 입학한 대학은 낭만보다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사회의 이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식의 명제는 단지 교과서 안에서만 그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는 교과서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교과서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던 저는 20년 동안이나 '자기 배반화'의 길을 걸어온 셈이었죠.
<체 게바라 평전>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 사회과학 서적을 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와 가장 떨어져 있는 군대에서였습니다. 군 내에서 '보안성 검토' 명목으로 이뤄지는 검사 덕에 언제나 사물함 깊숙이 책을 숨겨둬야 했습니다.
박노자씨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와 같은 책은 위계질서를 근본으로 하는 군대이기에 감히 반입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사회에 대해 눈을 떴습니다. 그럴수록 부조리에 대한 물음은 깊어갔고, 물음이 깊어갈수록 기자에 대한 꿈도 확실해져 갔습니다.
전역 후 어느 날, 학교에서 초청 강의하던 한 언론사 기자가 그러더군요. 기자를 지망하는 사람이면 자신만의 골방 속에서 사회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골방을 깨고 나와 세상과 소통하고 사회와 호흡해야 된다고.
대학 초에 느꼈던 자기 배반화에 대한 충격만큼이나 기자의 그 말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골방 속의 철학자'는 단지 그뿐이다. 아마 그때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FTA 집회에 참가하고 대추리도 가본 것이.
100일 문화제가 있었던 이날, '자본권력에 맞서는 독립 언론투쟁'이라 평을 듣는 <시사저널> 노조와 함께 소통하고 같이 호흡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옳다고 믿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3인의 선배들에게 미약하지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