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그들과 잠시나마 소통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등록 2007.07.01 09:08수정 2007.07.0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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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ng

며칠간 시집을 읽었습니다.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제가, 시를 읽었습니다. 아는 거라곤 교과서에 나온 시가 전부이고, 교과서용 시를 보며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어린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가, 시를 읽었습니다. 쉽게 쓰인 시가 어디 있겠냐마는, 쉽게 마음에 들어오는 것도 있었고, 어떤 건 암호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떤 암호를 읽고 있고, 그 암호를 풀어야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다. 그래야 나는 소통할 수 있는 거라고.

소통. 하지만 전 소통하지 못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소통이란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가끔 전 누군가와 통하였다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착각이라 할지라도, 그때만큼은 통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집 속의 암호처럼 시오노 나나미와 첫 만남에서는 소통하지 못했고, 그와 소통할 용기도 나질 않았습니다. 소통 따윈 착각이라는 그 순간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적어 내려가지만, 전 자신과의 소통도 매번 새롭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적어 내려가는 이야기가 완성되어야,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하며 남들 보다 조금 쉽게 이해할 뿐입니다.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되새김질해봤습니다. 처음에는 소통하기 힘든 부분이, 두번째에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세번째에는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이 상상으로 그려진 엉뚱한 이미지라고 할지라도 어느 순간 한글자씩 따라가고 있는 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로마인 이야기>를 보는 소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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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ng

제가 가장 멈칫하는 부분은 바로 강압과 강제입니다. 언제나 강대국의 힘에 억눌린 많은 이익관계를 볼 때면 그럴 수밖에 없단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속의 울컥함은 가라앉질 않았지요. 그런 속에서 로마인들의 관용정신은 가장 눈에 띌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용과 개방을 중심으로 보는 그의 시선이 좋았고, 어느 순간 우리는 소통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내놓은 그들의 포용정책, 식민지의 문화와 종교까지 인정해 주는 그들의 대담함, 그리고 그리스의 작품들을 인정해 주고, 나아가 광대한 문화유산의 으뜸이 되게 하는 그들의 노련함. 내게 이렇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 공간이 원래부터 존재하였고 지금까지 존재하는데, 이 모든 것이 이렇게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로마라는 공간은 원래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당황하는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빼고 세계라는 존재를 말하기 시작했는가.

그렇게 되물어 보니, 제가 알고 있는 세계란 그리 넓지 않았습니다. 서양과 동양, 그리고 미국이라는 딱 세가지 존재만 세계라고 느꼈을 뿐, 로마인들의 흔적은 존재의 의미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기술이란 없고, 유적이라는 막연한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고, 그러니 배제해도 괜찮다고 무의식 속에 숨겼던 것 같습니다. 그곳의 존재는 막연한 곳이니, 내겐 없는 공간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는 이런 시선으로 로마인들을 보았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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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ng

처음 <로마인 이야기>를 집었을 때가 기억납니다. 내가 모르는 부분, 관심이 부족했던 부분,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제쳐 두었던 미지의 공간을 알아보고 싶단 생각에 훑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얀 백지처럼 어설프게 지명을 보고, 어설프게 공책에 적으며, 남들이 다 아는 기본적인 상식마저 모르고 있는 아이처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록 자신 있게 대답하고 손들지는 못하여도 조금이라도 내가 이곳을 알아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태껏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로마가 아닌 로마인에 대한 책은 읽어본 기억도 없었을 뿐더러 관심도 많지 않았기에, 하얀 백지상태로 그들의 삶을 그려 가며 아이처럼 그들을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원래부터 관심있던 곳이 아니었기에,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은 참으로 어설펐습니다. 어릴 적 수박 겉핥기식으로 유적들만 슬쩍 보고 온 저로서는, 새로운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나마 바티칸에 들러 봤던 유적들로 그들의 문화를 그릴 수 있었고, 그들의 그림으로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도 로마인들의 모습은 노예고 귀족이고 다 똑같은 얼굴로만 나왔습니다. 기껏해야 장신구만 다른 정도로 구분 짓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상상 속에서도 제약이 이렇게 많을 수 있단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랄 뿐이었지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저는 어린아이의 추리력밖에는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평민 출신인 마리우스가 능력을 인정받아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을 때는, 그 시대에서 그런 열린 길이 있단 사실에 '그런 건가'라며 뒤 늦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최첨단 시대라는 지금도, 한국에서는 학벌, 직업, 돈 등 얽힌 것들이 풀리지 않는데, 그 시대에 많은 이들에게 열린 길이 있다는 사실이 쉽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그들을 보면, 로마가 강대국이 아니라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강대국이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에서 쓸데없는 법규라는 걸 알면서도 남들 눈 때문에 자신의 권위 때문에 버티고 있는 어떤 이들과는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민권을 주고, 문화를 인정하고, 능력만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는 그 나라는, 나라의 대단함이 아닌, 그들의 대단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지요. 로마인이기에 가능한 표현과 가능한 장면.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마음이 이미 이곳에 빠져들었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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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ng

어릴 때는 많은 꿈을 가진다고 하지만, 저는 꿈이 없었습니다. 꿈이라는 자체가 허황된 것 같았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주머니의 송곳처럼 비집고 나오지 않게, 그저 모난 부분을 부드럽게 하고, 튀지 않게, 그렇게 생활하며 지냈습니다. 단지 시간을 먹었을 뿐이지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냥 좋다는 20살에 썩은 금붕어 마냥 둥둥 떠다니며 지냈습니다.

목표 없는 삶이란 그저 흘러가기만 할 뿐이라는 것도,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은 겁니다. 공지영씨의 <빗방울 속의 나는 혼자였다> 산문 책에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뻔히 아는 정답이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질질 끌려 다니다가, 결국 똑같은 답을 얻는다고." 저는 그런 날들을 지내고 나서야 남들이 늘 말해 주던 뻔히 아는 답을 얻었습니다. 내게 꿈이란 무엇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지.

그래서 로마인들의 꿈이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책에서는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을 뿐. 그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꿈은 무엇일까, 어떤 꿈을 가지고, 생활하였기에 그곳이 강대국이자 문화의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한국 사람과는 어떤점이 달랐고, 어떤점이 같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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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나라들의 인재들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행동으로 발탁된 것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얽매인 것들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학연, 지연, 혈연, 이 세가지 궁합은 아직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지요. 또한 그런 삶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원하는 꿈 보다는,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보다는 튀지 않는 알맞은 기계적인 인재를 원했던 건 아니었을까. 세계화에 발맞추어 간다고 하고서는, 아직 한국이란 곳은 그런 관습에 묶여 있었던건 아닌지, 생각이 들더군요.

책을 닫았지만,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끝나지 않은 로마인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고, 아직 그들에게 배워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그렇게 잠시나마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로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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