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향해 늘 환하게 웃는 김진용과장.김정혜
"웃는데 돈 드나요? 몸이 아프면 마음도 따라 아픈 법이죠. 그런 환자한텐 웃음으로 먼저 마음을 치료해 주어야죠. 의료적인 치료는 그 다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웃음은 만병통치약이죠."
김포 우리병원 정형외과 김진용(41) 과장. 여름날 노란 해바라기 같은 환한 웃음으로 반가움을 표한다. 그 웃음이 참 인상적이라는 나의 화답에 웃음에 관한 그의 소신이 참 간단명료하다. 웃음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백번 맞는 그 말을 참 쉽게 이야기하는 김 과장. 뼈를 다루는 정형외과 의사라기보다 오히려 아이들을 다루는 소아과 의사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인상 좋은 의사이다. 의사로서의 그의 삶에 관해 인터뷰하고자 했건만, 아무래도 웃음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것 같은 예감은 왜일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김 과장에 대한 소문은 그렇게 천리를 거쳐 내게도 전해졌다. '환자들에게 아버지로 불리는 의사'라는 것이 천리를 거쳐 내게까지 당도한 소문이다. 그것도 김 과장보다 훨씬 나이 많은 환자들이 그렇게 부른다니, 환자들에게도 김 과장에게도 뭔가 남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분명할 터.
"3년 전. 뇌성마비에 골다공증을 앓는 50대 주부가 발목이 부러져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뇌성마비 환자는 아무래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뼈가 자주 부러지는 편이죠. 그런데 골다공증까지 앓고 있다 보니 골절에 대해선 일반인들보다 다소 심각하죠. 수술 전, 긴장한 빛이 역력했어요. 그래서 어느 환자에게나 늘 그랬듯 손을 잡으며 제가 그랬습니다.
'아들에게 수술 받는다 생각하세요'라고. 아들이 부모의 부러진 발목을 수술하는 일이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겠죠?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그것 외 뭐 특별히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그날 이후 9살이나 더 많은 그 환자분이 저를 아버지라 부르더군요. 그리곤 시내에 올 일이 있으면 뭐라도 사서 들고 병원을 찾아오곤 하시죠. 오늘도 다녀가셨어요."
김 과장의 말 중, '아들에게 수술 받는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김 과장은 수술을 집도하기 전, 어느 환자에게나 그 말을 한단다. 아무리 하찮은 수술이라도 수술이란 건, 어떤 환자든 긴장하기 마련.
그것도 김 과장이 진료하는 환자들 대부분이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고 보면 환자나 의사나 긴장의 강도는 더할 듯싶다. '수술은 차치하고라도 수술에서 깨어날 수는 있는 것일까'하는,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어르신들에겐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그런 환자에게 이보다 더 마음 편한 위로는 없을 듯하다.
"사실, '아들에게 수술 받는다고 생각하세요'라는 말을 할 때면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환자가 저에 대한 티끌만한 신뢰도 없다면 그 말은 그저 허울 좋은 위선의 말이 되어버리니까요. 그 말은 환자로부터 아들 같은 신뢰감을 얻은 뒤라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저의 진료보다 환자의 그런 신뢰감이 오히려 환자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의사가 환자로 하여금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건 가식 없는 진실이지요. 그 진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먼저 손잡아 드리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말은 언제나 진실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기 위한 나 스스로의 채찍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천식에 치매까지 겹친 아주 고령의 할머니 한 분이 심한 고관절로 김 과장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셨을 때, 참 암담했다고 한다. 서울의 꽤 유명한 병원에서도 수술이 힘들다고 포기한 환자였다. 그럼에도 고통을 호소하는 부모를 차마 그냥 바라만보고 있을 수 없다는 자식들의 하소연에 수술을 하게 되었단다.
수술 전. 할머니의 시름 깊은 두 눈에 그렁한 눈물을 바라보던 김 과장은 또 그렇게 할머니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아들에게 수술 받는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치매는 점점 더 심해지셨다고 한다.
식구들이고 간호사들이고 다 안중에 없으신 그 와중에도 김 과장만은 또렷이 알아 보셨다고 한다. 회진 차 할머니를 뵈러 병실에 갈 때면 때로 그리 난폭하던 할머니가 새색시마냥 얌전해지시며 늘 김 과장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 주었다고 하신다. 그럴 때면 뜨거운 바람 한 줄기가 김 과장의 가슴 한복판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더란다.
그런저런 이유로 김 과장은 환자들 사이에 아주 자상한 아들 같은 의사로 소문나 있다. 그런데 의사가 자상한 것 하나만으로 환자들에게 회자될 수 있을까. 자상함 못지않게 유능함 또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표면적인 유능함으로 따지자면 김 과장 또한 부끄러울 게 없는 사람이다.
97년 연세대를 졸업, 전문의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이후 연세대 의대 강사에 이어 분당 차병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2년 김포병원 개원과 함께 의사생활을 시작한 지 5년째, 그동안 주치를 맡은 환자는 셀 수 없다.
더불어, 수술했던 환자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수많은 환자 중 사망환자는 4명. 환자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그 4명의 보호자들은 지금도 김 과장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라고 하니 의사로서 무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과연 자신을 유능한 의사라 생각하고 있을까.
"제가 유능한지 무능한지의 의료적인 평가는 오롯이 환자들의 몫이죠. 그런데 제 스스로 자부하는 유능함은 따로 있습니다. 의사에게 있어 유능함이란 '환자들을 푸근하게 보듬어줄 줄 아는 큰 가슴'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들로 하여금 '저 의사만큼은 분명 내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만큼 확실한 진료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의사의 진실이 환자들에게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실한 마음으로 환자의 손을 잡아줄 줄 알고, 진실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향해 웃어줄 줄 아는 큰가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