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모시는 게 복인줄 알라"는 말

어머님과 함께 5개월... 나를 돌아보게 되는 조언들

등록 2007.07.17 19:01수정 2007.07.2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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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시는 어머니와 인터넷으로 기사를 쓰는 나. ⓒ 전희식


어머니를 모시고 산지 5개월이다. 그동안 듣게 된 여러 조언들에 힘입어 좋은 기운을 다시 북돋우곤 했다.

"아무리 늙어 몸을 못 써도 어머니는 여자다"는 조언은 오랫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상당히 지쳐갈 무렵, 모진 맘먹고 노인병원으로 모신지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나가신 분의 며느님이 주신 것이다. 어머니를 모실 때 항상 여성으로서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잘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점에 대해서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레 확인해보게 됐다.

"내가 이토록 불효막심한 놈인가 하고 절망하곤 한다"는 말은 십수년 째 치매이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남자분이 나의 사정을 듣고 해준 도움말이다. 아무리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지만 현실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이 예고 없이 닥친다는 말이었고 마음가짐을 잘하라는 말로 새겼다.

"어머니 방에 이 향을 사르도록 하시오"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강화 사자발 쑥을 주신 분이다. 그 분은 연로하신 부모님이 오래 전 돌아가셨는데 오래 전에 있었던 경험을 되살려 내게 선물까지 해 주셨다. 방에서 어머니에게 쑥뜸을 해 드리고 있었지만 틈틈이 선물 받은 쑥을 피우니 방에 냄새도 없고 기운이 늘 뽀송뽀송 한 듯했다. 선물을 받을 때는 몰랐는데 사용하면서 그 효용에 감사하게 되었다.

보내주신 쑥 덕분에 기운이 뽀송뽀송합니다

"어머니 모시면서 제일 우선적인 것은 당신이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고 한 사람은 부모님이 다 누워 지내시는 분이다. 어머니가 먼저 쓰러져 12년짼가 똥오줌을 받아내는데 3년 쯤 전에 아버지가 또 쓰러지셨다고 했다. 처음 한 두 해는 정말 힘든 줄 모르고 모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3~4년 되니까 몸과 마음이 지쳐가더란다.

형제들이 와서 돌보는 것은 그 방법이 마음에 들지도 않아서 모두를 자신이 도맡아 했다고 한다. 나처럼 그 분도 막내라고 했다. 마음을 바꿔 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했다면서 나더러 '내가 다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굳이 치료하려고 하지 마라"는 충고를 해 준 사람이 있다. 내가 어머니 옷에 오줌 누시는 것 때문에 집요하게 방광혈을 비롯 여성무극보양침을 놓는 걸 보고 그랬다. 어머니가 엉뚱한 이야기하고 악담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

"우리 젊은 사람들도 체면상 참을 뿐이지 그런 악담을 마음에 담을 때가 얼마나 많으냐, 어머니는 그런 세속적인 위신이나 체통을 놨을 뿐 아니냐"고 했다. 늙어가는 모습 중 하나로 보고 잘 보살피는 것에 치중하고 고치려고 너무 애쓰면서 마음고생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라 여긴다.

"복인 줄 알아라"는 도움말은 주로 부모님이 안 계시는 분들이 하는 얘기다. 부모 마음을 아프게만 하고 효도다운 효도도 못 했는데 돌아가셨다면서 아무리 힘들고 말이 안 통한다 해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효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인 줄 알라는 말이다. 그 분들의 부모에 대한 자식된 회한을 엿볼 수 있다.

맞긴 맞는 말인데 너무 자주 듣다보니 같은 말을 하는 사람 중에도 좀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 있고, 또 조심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말은 쉽게 할 말이 아니라며 조심스러워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그런 '복', 다시 말해서 '치매나 거동 불편한 부모 모실 일'이 다시 생긴다면 정작 그 때 어떨지 장담하지 못하겠다는 겸손함이 보인다.

상대적으로 좀 쉽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그런 '복'이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엿보이는 듯 해서 나는 혼자 씁쓰레 웃기도 한다. 부모를 힘들여 모시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복 있는 사람임을 고백하고, 곁에서 그것을 격려하는 것이 좋은 그림일 것이다.

"복인 줄 알라"는 도움말, 맞긴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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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어머니. ⓒ 전희식

"야밤에 앰뷸런스 부를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으면 정말 비참하다. 형제들에게 돈 때문에 전화하는 것은 더 힘들다"고 한 말씀도 생각난다. 이 분은 생면부지의 사람인데 상상할 수 없는 큰 돈을 내게 주셨다. 나는 바로 이 돈의 절반을 어려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너처럼 이야기하면 부모 모시는 많은 사람들 욕보이는 거야"라고 말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도 나처럼 막내인데 나이드신 어머니를 오래 모시고 산다. 내가 하는 말과 주장이 너무 좋은 말만 골라서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이 친구의 불만이다. 오랜 친구인 그가 겪을 어려움들이 눈에 선하다. 오랜 친구가 하는 말인지라 그 뜻을 가만히 새겨본다. 부모 모시는 많은 분들을 욕보여서야 되겠는가 하고.

갑자기 이 친구가 그리워져서 방금 전화를 했다. "어, 히시가(희식아), 나 작업 중이야, 작업 끝나고 내가 전화할게"라고 했다. 나는 잽싸게 문자를 날렸다. "어허~ 그 나이에 작업 중이라니…, 정력도 좋아, 몸 생각해라 몸 생각"이라고.

"형제간에 우애 안 깨지게 해라"고 한 사람이 있다. 이 분은 삼남이다. 어머님 모시는 과정에 형제들과의 불화가 극에 달했나 보다. 지금도 큰형이 가끔 와서는 평소의 생활균형을 깨는 언행을 한다고 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조심하는 여러 금칙들이 있게 마련인데 당장 어머니 귀에 솔깃한 말과 어머니 입에 달라붙는 음식을 떠안긴다는 것이다. 형님과 형수가 가고나면 며칠 동안 뒷감당 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한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언젠가 우리집에 오신 어떤 분에게 밥을 먹으면서 어머님 전용 유기그릇을 보여주면서 물컵이나 대야 등도 플라스틱을 안 쓰고 소재를 가려서 쓴다고 했더니 밥그릇 국그릇은 물론 수저까지 한 세트 된 무거운 유기그릇을 가리키며 "이 무거운 걸 어머니가 좋아하시냐? 젓가락질 하자면 이렇게 4각이 져서 손가락 아픈 것도 몸에 좋은 것이냐"며 내 입장에 반발하는 것이었다.

너무 동네방네 부산떨지 말고 그냥 조용히 어머니나 잘 모시라는 충고로 들었다.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실마리, 어머님이 던져주시네

"또 좋은 책 한권 나오겠습니다"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들렸다.

어머님과의 생활을 잘 기록해 보라는 말도 되지만 어머니 모시고 사는 것마저도 일종의 글감으로 바라보지는 않는지 지적하는 것 같았다.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은 가까운 성직자분이라 중립적인 말로 했을 수 있지만 뒤쪽에 해석의 무게가 더 실렸다는 판단을 해 본다.

이런 말들은 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실마리가 된다. 결국 어머님이 내게 던져주는 삶의 실마리들이다.
#어머니 #조언 #효도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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