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이상 행동은 질병이 아니라 '치유' 과정

<엄마하고 나하고> 13회

등록 2007.07.15 10:27수정 2007.07.23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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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쓴 <어머님 전상서> ⓒ 전희식


어린 자식들이 바글바글 새끼 돼지들처럼 엉겨서 자는 야밤에도 어머니는 혼자 백여 개가 넘는 잠밥에 뽕을 주어야 했고, 그러고 나면 또 쉴 틈도 없이 첫 잠밥 위로 뽕을 넣어줘야 하다 보니 사나흘을 눈 한 번 붙이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내가 생생하게 기억 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니가 누에 잠밥 위에 엎드려 코피를 쏟은 채 잠든 모습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 마치고 밭에 가서 지게에 콩을 지고 오는데 내 뒤에서 산더미같은 콩 보따리를 이고 겨우 발끝만 내려다보면서 오시던 어머니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일어날 생각을 않고 쓰러진 채 하염없이 우셨다. 꺽꺽 하도 절망적으로 우시길래 어린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덩달아 엉엉 울기만 했었다.

아파서라기보다 고단한 삶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서였을 게다. 그때가 어머니 나이 40대 중반이었다.

현대 심리학의 거장 칼 융(Carl Jung)의 성 역할 대체이론을 원용하자면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내게 퍼 붓는 악담은 사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다. 칼 융이 말하기를 억압된 모든 정서는 언젠가, 어떤 형식으로든 폭발하게 된다고 했다. 분노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대상을 향하기도 한다.

홍숙자 선생이 쓴 <노인학개론>과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가 어려운 윤진 선생의 <성인노인심리학>에서 공히 지적하는 것이 있다. 노인들은 ‘만성기질성뇌증후군’을 앓게 되는데 감정의 안정성이 약화되어 기복이 심하고 분노나 자학, 체념과 은둔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 책에서는 ‘성숙형 노인’에 대해 말하면서 전기충격 등등의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노인행동의 유형을 분류하여 하나하나 치료의 대상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의 악담과 저주, 또는 의심과 불안 증세는 질병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일종의 치유 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 행위를 보장하고 잘 지켜 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 노인이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어떻게 살아 왔느냐에 대한 대단히 정상적인 귀결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를 보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다. 노인이 되면서 정신을 살짝 놓게 된 덕분에 저렇게 남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자식 흉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맨 정신이라면 저럴 수 없을 것이다. 분노는 더욱 내면화 되어 화석처럼 굳어져 병을 키울 것이다.

노인이 되면서 잘 안 들리고 잘 안 보이는 것도 하늘이 주시는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손이든 발이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눈이랑 귀가 여전히 밝고 마음이 청춘이라면 그 부조화를 안고 어떻게 살아 가겠는가?

미래에 대한 욕망을 키우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회상에 더 몰입하는 노인들의 심리적 성향 역시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이것을 두고 과거지향성 질환이라느니 하면서 정신병리학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나는 못마땅하다.

과거 어느 한 지점에 맺힌 한이 소통되지 못한 채 오늘까지 이어져 오다보니 악담과 저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흘려 보내야 한다. 했던 얘기 또 하고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 노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갓난애가 기저귀에 똥오줌 싸는 것과 같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다.

다만, 그것이 노인 당사자에게 고통으로 작용하지 않게 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어머니의 악담을 들으며 저 과정을 통해 어머니가 좀 더 가벼워지셨으면 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시아버지나 남편, 또는 세상을 향해 하지 못했던 반발과 저항감이 저렇게라도 풀리기를 바랐다.

역시 짐작대로였다. 어머니는 그날 밤에 여러 번 옷에 실수를 했다. 아침에도 못 일어나고 끙끙 앓으셨다. 깨어 나신 다음에는 나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몸과 마음에 쌓인 노폐물을 악담을 통해 쏟아 놓느라 애를 쓰셨기 때문이라 여겼다.

나는 어머니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9장이나 되는 길고 긴 편지를 썼다. '어머님 전상서'라고 시작되는 편지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인질환 #칼 융 #노인학개론 #성인노인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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