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홍수 시대', 참 지식을 찾다

[TV 리뷰] EBS의 <지식채널 e>

등록 2007.08.29 11:30수정 2007.08.2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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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홍수 시대’ 아니, ‘범람 시대’다. 조금 고상한 표현을 쓰면 ‘지식혁명 시대’다. 옛날에는 ‘학교’라는 곳이 지식을 습득하고 배우는 유일한 공간이었지만, 인터넷이라는 열린 세계가 등장함으로써 학교가 아닌 어디서나, 또 학생이 아니더라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무한정한 공간은 ‘지식’이 인간 이성을 이롭게 하거나 진보하기 보단, 이성을 해하게 한다. 사람들은 이를 속되게 표현하여 ‘쓰레기’라 이름 붙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지식이라는 목적보다 지식 습득의 과정과 방법이 더 중요한 시대다.

쓰레기 같은 지식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은 지난한 싸움이다. 범람하는 물은 피하면 되지만 쓰레기 같은 지식의 범람은 피할 수도 없다. 산 속에 들어가서 인터넷을 닫아 버리면 된다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또 하나의 도피일 수밖에 없다. 닫힌 공간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그럼 방법은 없는가? ‘쓰레기’ 같은 지식을 ‘참 지식’으로 걸려내려는 방송들의 시도는 많다. 그 중에 한 프로그램이 EBS <지식채널 e>다. 수많은 지상파 방송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있지만 제작진 자신들이 시청자를 설득하고, 가르치려 한다, 자신들은 선생이요, 시청자들은 학생이라는 시각에 강하다. 22분 정도의 시간에 3~5꼭지 정도를 통하여 방송되는 <지식채널 e>은 기존 방송이 지식을 전달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열린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스스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의 지식 프로그램에 대한 ‘반격’이라 말하고 싶다.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 지식 그 자체는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시청자를 설득하기 보다는 최대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통하여 5분의 짧은 시간동안 ‘지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입니다. 그것인 ‘선언적’ 의미에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입니다. 지식 그 자체보다는 ‘지식’을 바로 보는 시각에 주목한 것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잠깐 멈춰서서 생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5분이되기를 바랍니다.”(EBS <지식채널 e> 기획의도)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위하여 <지식채널 e>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지식을 전달하고, 설득하고, 가르치는 자의 모습으로 시청자를 대하지만 <지식채널 e> 지식 그 자체를 말한다. 제작자가 만들어 놓은 지식을 고스란히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스스로 체화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 하는 길, 다른 이가 만들어 준 지식을 받아먹는데 익숙한 우리는 <지식채널 e>이 낯설다. 지식혁명시대라 일컫는 시대에 지식인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이 낯선 <지식채널 e>의 프로그램 중 2007년 8월 21일에 방송되었던 ‘안녕하세요’와 ‘행동하는 사람’ 내용분에서 첫발을 내딛기 원한다.

‘안녕하세요’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을 다룬다.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그들의 노래가 귓속에 맴돌고 있다. 그들이 노래로 삶을 살아 온지 23년이 지났다. 1984년 세상에 나왔지만 군부독재권력의 억압에 그들은 ‘언더’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군부가 남긴 어둠의 역사, 죽임의 역사에서 ‘노찾사’는 어둠에 갇혀 사는 이들에게 ‘빛’이 무엇인지 노래로 말했다. 죽임의 삶이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살림’을 준다. 그 방법은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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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ebs <지식채널e>

“우리도 밑에서 같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도망치고, 그러다가 누가 부르면 다시 부르고 다시 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2007. 8. 21 <안녕하세요>).

가슴 찡했다. 80년대를 살아왔던 이들에게 '노찾사'는 분명 자신들을 돌아보는 계기였다. 80년대의 ‘치열한 삶’은 자본과 환경 때문에 '변화'가 아니라 '변절'했다. 프로그램은 그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 80년대를 반추하게 하였다. <지식 e 채널>의 묘미이다.

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가? 따지거나 묻지 않고, 현재의 노찾사도 평범한 삶, 곧 회사원이나 주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 그럴까? 이는 나는 지금 80년대의 치열한 삶을 그대로 살고 있지만 너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꾸중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시청자는 위안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이루는데 동참하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행동하는 사람'은 WHO사무총장을 지낸 고 이정옥 박사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를 한국인 최초의 UN기구 수장으로만 기억하기를 원한다. 지위에 먼저 눈길이 가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가 유엔기구 수장이 되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는 남태평양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하여 사모아에서 일생을 보냈고 백신의 황제라 할 만큼 기초의학에 관심을 가졌다. 숭고한 삶을 살아가는 선비 같은 사람, 돈은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아니었다. 그가 WHO수장이 된 후 한 말이다.

“내가 처음에 WHO에 취업한 것은 월급이나 여러 조건이 좋아서였다. 숭고한 사상을 가지고 취업한 것이 아니다.”(2007. 8. 21 <행동하는 사람>)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돈과 조건에서 초월한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평범함이란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야 말로 실로 위대한 것이 아닐까? 그는 말의 ‘숭고함’보다 ‘행동’을 택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갔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쓰는 돈엔 가난한 나라 분담금도 섞여 있다. 그 돈으로 호강할 수 없다.”(2007. 8. 21 <행동하는 사람>).

가슴이 떨렸다. 유엔 분담금은 부자나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분담금도 있다. 부자 나라의 1억 달러보다 가난한 나라의 1만 달러가 더 귀중한 법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는 이등석을 타고, 수행원 2명만 동행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질병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행동하는 사람’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고 <지식채널 e> 가르치지 않는다. <지식채널 e> 본 사람이 스스로 해야 한다.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 따지지 않는다. 행동하는 사람의 길은 자신 스스로 선택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설명하지 않는 지식,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지식. 지식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지식은 타인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아야만 습득할 수 있었지만 <지식채널 e>은 내레이션 없이 화면과 자막을 통하여 시청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지식을 알아가게 한다. 22분의 짧은 시간이 짧지 않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2기 티뷰기자단 응모

덧붙이는 글 2기 티뷰기자단 응모
#지식채널E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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