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김동화 선생
이정환
담배 한 모금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커피맛'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원고료가 나오면 다방에서 신청곡을 들으며 한 잔, 군대 첫 외출 나오자마자 다방으로 달려가서 한 잔, 아름다운 까페 창가에서 한 잔, 그 때마다 "짜릿짜릿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선생은 "지금도 다방 커피가 제일 좋다"고 했다.
커피·프림·설탕에 '분위기'까지 풀어 넣어야 제 맛이란 설명이다. 이 정도면 커피 맛 그 자체보다 분위기를 즐긴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실제 "짝퉁"이라고 놀렸던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둘리' 김수정 선생이다. 두 사람은 동갑에다가 같은 시기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통하는 바는 또 있었다. 바로 가난이었다.
"신인 만화가 시절 참 어려웠어요. 주인집 문간방에 얹혀 살고 있었는데, 손님이 와도 어디 접대할 마땅한 장소가 있어야 말이죠. 돈 없고 친구는 왔고, 방 하나에서 아내와 애들은 복작복작하고…. 그렇다고 커피값도 없는 처지에 다방에 갈 수가 있나. 공동묘지를 가는 겁니다. 우리 집 근처에 있었던 공동묘지에 식사 겸 주전부리 겸 호빵 사서 가는 거죠. 묘지 앞에 앉아 만화 이야기 실컷 하고… 우리 집 응접실은 공동묘지였던 셈이죠. 허허."80년대... 만화가들의 무덤, 그리고 르네상스만화가들에게 '무덤'같은 시간이 또한 80년대이기도 했다. 독재정권은 "검열이란 아주 못된 짓"을 했고, 걸핏하면 언론은 '불량만화' 운운하며 맞장구를 치기 바빴다. 무슨 사고라도 났다 치면, '만화 원죄론'을 토해냈다. 요즘 '컴퓨터 게임 배후론'처럼 말이다. "만화 보고 흉내냈지?"가 먹혀들던 시절, 만화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누르면 누를수록 그만큼 골고루 퍼져나갔기 때문일까. 한국만화 르네상스가 활짝 꽃핀 시기 또한 1980년대라는 점은 역설적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만화평론가)는 '80년대 만화사'를 통해 "80년대는 한국만화 역사상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만화와 사회가 관계를 맺었으며, 또한 그 다양한 방식 모두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연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당시 활동했던 작가들의 면면만 잠깐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길창덕·김수정·윤승운·신문수·이두호·이상무·이현세·이희재·황미나·허영만 등 쟁쟁한 작가들이 즐비했다. 한국만화사에 획기적인 사건도 일어나기도 했다. 1982년 한국 최초로 창간된 만화전문잡지 <보물섬>, 김동하 선생에게는 '요정 핑크'란 작품으로 명성을 안겨준 잡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