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15지구에 있는 한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
남소연
젊은 세대는 왜 아이를 안 낳는 것일까? 여자들이 예전보다 약아져서? 무책임해져서? 아이보다 자신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젊은 세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직장도 없는데? 비정규직이 무슨 용기로 결혼을? 결혼해서 언제 집을 사나?""아이를 낳으면 누가 돌보나?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는 아이를 보아 주실까?""아이를 키우는 비용은 다 어떻게 대나? 대학까지 가르치는 그 교육비는 어떻게 대나? 아이는 낳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잘 가르쳐서 잘 키울 수 있을까?""아이가 생기면 내 장래는 어떻게 되나? 임신하고 출산하느라 직장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애 키우는 동안 남들에게 뒤떨어지지는 않을까?" 저출산은 출산·육아의 비용이나 육아노동의 문제만이 아닌 고용과 임금, 주택, 교육, 기본소득의 보장, 노후소득보장, 보건의료의 부족 등이 모두 모여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프랑스의 출산율이 높은 것은 단순히 '저출산' 대책이 좋아서가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시간당 임금에서 큰 차이가 없고, 각자가 자기 직업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인생은 한 줄로 세워진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다양한 자기 선택의 결과이다. 주택은 모기지 제도를 통해서 안정되고, 교육은 기본적으로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다. 의료는 실질적인 무상의료이다. 고용보험을 통해 취업 때와 큰 차이 없는 실업수당이 나오고, 노후에도 큰 걱정은 없다.
물론 프랑스가 천국은 아니다. 나름 고달픈 삶이 있다. 실업을 해결한 나라는 없고 프랑스역시 그렇다. '그랑제콜'이라는 엘리트 대학이 있다. 누구나 '샤토'에 사는 것도 아니다. 의료비는 먼저 본인이 내고 보험에서 나중에 갚아주는 '후불제'라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도 부담이 된다. 이민자에게 차별을 안 한다지만, 막상 그들에게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의 짙은 그림자가 지워져 있다.
출산·육아로 가는 길에 놓여 있는 수많은 장애물출산과 육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은 생애 전체를 관통하며 매 시기에 걸쳐 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만 들어서 한국과 프랑스가 어떠한 상황인지를 비교해 보자.
[결혼의 난관]한국 : 부조금을 거두고 나서도 부모의 재산을 축내서 결혼·혼수비용을 대야 한다. 10년 이상의 수입을 꼬박 모아야 집을 산다. 집 살 때까지 몇 번의 셋집 이사, 전세값 인상을 겪는다. 부동산 파동도 각오해야 한다.
프랑스 : 관청에 가서 가볍게 결혼 또는 동거 신고한다. 원하면 교회에 간단히 결혼식을 올린다. 혼수 장만은 안 한다. 모기지제도로 살만한 집은 마련하고 천천히 갚는다. 부동산, 전세값 파동은 없다. 세입자는 보호된다.
[출산의 난관]한국 : 임신기간 중 직장과 동료의 눈치를 봐야 한다. 건강보험에서 산전·산후·출산 혜택을 늘리기는 했지만, 본인부담금이 여전히 꽤 많다. 출산 및 육아의 유급 휴가는 약 2달 반. 무급휴가는 추가로 약 10개월까지다. 이걸 다 받아내도 되는 직장이 몇이나 있을지? 비정규직이라면 실직을 각오할 일이다.
프랑스 : 임신을 직장에서도 축하받는다. 산전·산후·출산 비용은 무료다. 출산 수당을 받는다. 유급휴가는 약 7달 반. 무급휴가는 2년 3개월까지 추가로 쓸 수 있다.
[육아의 난관]한국 : 조부모의 도움을 받든지, 보육시설과 유치원을 찾고 그 비용을 대야 한다(이 부분은 2003년 이후 정부 지원이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보육시설이 돌보아 주지 않는 시간 동안은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 학원에 보내야 한다. 직장과 집안의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수퍼맘이 되어야 한다. 집에 늦게 오는 남편과의 갈등을 감수해야 한다.
프랑스 : 보육비용은 식대를 제외하고 정부가 전액 부담한다. 직장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맡아 준다(그래도 출퇴근 시간은 바쁘다). 사설 학원에 보낼 일은 없다. 다만, 보육시설이 부족한 것이 흠이다. 약 절반정도의 수요만을 채워 주고 있다고 하지만, 이럴 경우에는 가정보육서비스를 이용한다. 남편이든 아내든 칼퇴근 한다. 가사 노동은 남편과 아내가 분담한다.
[교육의 난관]한국 :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때로는 학원비를, 때로는 대학등록금을 부담해야 한다. 자칫 대학원 학비까지 대주어야 한다. 자식이 제대로 공부를 못하면 부모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프랑스 : 그랑제콜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한 부모가 자식 교육에 돈 쓸 일이 없다. 공교육이 모든 교육을 책임지며 창의력 교육을 해준다. 입시용 사교육은 없다. 어떤 직업이든 본인의 선택이다. 직장과 사회가 학력이나 학벌로 차별하는 일은 없다. 일류대학에 못 갔다고 가슴에 못 박고 사는 일은 없다.
[자식 결혼시키기의 난관] 한국 : 다시 결혼비용과 집장만이다. 남부럽지 않은 혼인식을 치러줘야 하고 자식들의 살 집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손자를 보면 봐줘야 할 부담도 생긴다. 60이 넘어도 목돈 들어갈 일이 많다. 그런데 연금은 불충실하다. 한국의 노후는 특별히 불안정하다.
프랑스 : 자식들은 18살이면 독립한다. 그러니 약 50살 정도가 되면 목돈 들어갈 일은 없다. 60살 이전에 은퇴하고 연금생활자로 살아가도 큰 불편이 없다.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은 단순히 보육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프랑스는 GDP대비 가족예산 비율이 3.79%에 달해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긴 기간 동안 만들어온 복지국가의 바탕 위에 특별히 강력한 육아지원 정책이 제공되었기에 저출산 극복이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서 복지란 주택, 교육, 고용과 임금, 사회보장, 소득 보장을 아울러 하는 말이다.
경제성장 앞세워 지체시켰던 복지, 성장 장애물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