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안 낳는'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다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 27] '선성장 후분배'가 가져온 불행

등록 2010.05.06 17:04수정 2010.05.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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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 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하고 있다. 그 첫 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이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 취재했다.

이번 글은 특별취재팀의 편집자문위원을 맡았던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의 기고문으로, 우리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지닌 문제점을 총정리했다. [편집자말]
 프랑스의 몽마르뜨 언덕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내 전경. 모처럼 화창한 오후를 맞은 파리가 햇살가득 눈부시다.
프랑스의 몽마르뜨 언덕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내 전경. 모처럼 화창한 오후를 맞은 파리가 햇살가득 눈부시다. 남소연

프랑스로 취재 여행을 가자는 <오마이뉴스>의 제안에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 프랑스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유명한 나라였다. 그게 60년대의 후반이다. 그 당시 한국은 평균 4.53명을 낳고 가족계획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니 아이를 안 낳아 문제라는 프랑스의 소식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습기까지 했었다.

알고 보면 1970년에 프랑스는 2.47명을 낳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산율이 낮았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그들은 출산을 장려했다.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한다는 프랑스가 당시 우리나라의 출산 억제 정책에 정반대여서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었던 듯하다. 그러면 프랑스가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시점은 언제였을까? 1993년의 1.63명이었다.

1990년 일본사회가 술렁거렸다. 전년도의 출산율이 1.57명에 불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저출산(일본말로 '少子化')이 급격히 전사회적인 과제로 부상하였다. 이것을 '1.57 쇼크'라고 한다. 일본의 출산율 최저치는 1997년의 1.39명이다.

한국은 2002년의 출산율이 1.17명이라는 사실이 2003년 7월 발표되어 일본이 준하는 '쇼크'를 먹었다. 한국의 최저치는 2004년의 1.08명이다, 

한국은 왜 낮아지는 출산율을 방관했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저출산을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단계와 시점이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은 대체로 20세기 초반에 출산율이 2명 정도로 감소하면서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저출산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국이 이 수준으로 출산율이 낮아진 것은 1983년이다. 그런데 불과 2~3년 후인 1985년경에 일본이 충격을 받은 1.57명으로 내려갔다. 그 즈음 출산율은 놀라운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그 이후 잠시 올라갔다가 1995년 경 다시 1.6 수준으로 내려갔다. 그 때도 아무런 반응은 없었다. 그야말로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였다.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출산율의 충격에 그만큼 둔감했다. 일본보다 0.4명이나 적어져서 소위 '극저출산(extreme low fertility) 상태'에 들어가서야 이를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가 인구정책을 전환해야 했던 시점은 2003년이 아니라 그보다 20년 전인 1983년경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다. 우리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서 가장 잘못한 일은 저출산을 정책 과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20여년을 허송한 것이다. 무료피임사업을 중단한 것이 '1989년'이었다!


어쨌든 2004년 한국 사회는 저출산에 화들짝 놀랐다. 그 이후 저출산은 언제나 우리 사회의 큰 걱정거리가 되어 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도 저출산 현상의 정체는 쉽게 이해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저출산, 고용·임금·주택·교육 등이 모여 나타난 사회현상

 프랑스 파리 15지구에 있는 한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
프랑스 파리 15지구에 있는 한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남소연

젊은 세대는 왜 아이를 안 낳는 것일까? 여자들이 예전보다 약아져서? 무책임해져서? 아이보다 자신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젊은 세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직장도 없는데? 비정규직이 무슨 용기로 결혼을? 결혼해서 언제 집을 사나?"
"아이를 낳으면 누가 돌보나?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는 아이를 보아 주실까?"
"아이를 키우는 비용은 다 어떻게 대나? 대학까지 가르치는 그 교육비는 어떻게 대나? 아이는 낳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잘 가르쳐서 잘 키울 수 있을까?"
"아이가 생기면 내 장래는 어떻게 되나? 임신하고 출산하느라 직장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애 키우는 동안 남들에게 뒤떨어지지는 않을까?"

저출산은 출산·육아의 비용이나 육아노동의 문제만이 아닌 고용과 임금, 주택, 교육, 기본소득의 보장, 노후소득보장, 보건의료의 부족 등이 모두 모여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프랑스의 출산율이 높은 것은 단순히 '저출산' 대책이 좋아서가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시간당 임금에서 큰 차이가 없고, 각자가 자기 직업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인생은 한 줄로 세워진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다양한 자기 선택의 결과이다. 주택은 모기지 제도를 통해서 안정되고, 교육은 기본적으로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다. 의료는 실질적인 무상의료이다. 고용보험을 통해 취업 때와 큰 차이 없는 실업수당이 나오고, 노후에도 큰 걱정은 없다.

물론 프랑스가 천국은 아니다. 나름 고달픈 삶이 있다. 실업을 해결한 나라는 없고 프랑스역시 그렇다. '그랑제콜'이라는 엘리트 대학이 있다. 누구나 '샤토'에 사는 것도 아니다. 의료비는 먼저 본인이 내고 보험에서 나중에 갚아주는 '후불제'라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도 부담이 된다. 이민자에게 차별을 안 한다지만, 막상 그들에게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의 짙은 그림자가 지워져 있다.

출산·육아로 가는 길에 놓여 있는 수많은 장애물

출산과 육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은 생애 전체를 관통하며 매 시기에 걸쳐 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만 들어서 한국과 프랑스가 어떠한 상황인지를 비교해 보자.

[결혼의 난관]
한국 : 부조금을 거두고 나서도 부모의 재산을 축내서 결혼·혼수비용을 대야 한다. 10년 이상의 수입을 꼬박 모아야 집을 산다. 집 살 때까지 몇 번의 셋집 이사, 전세값 인상을 겪는다. 부동산 파동도 각오해야 한다.
프랑스 : 관청에 가서 가볍게 결혼 또는 동거 신고한다. 원하면 교회에 간단히 결혼식을 올린다. 혼수 장만은 안 한다. 모기지제도로 살만한 집은 마련하고 천천히 갚는다. 부동산, 전세값 파동은 없다. 세입자는 보호된다.

[출산의 난관]
한국 : 임신기간 중 직장과 동료의 눈치를 봐야 한다. 건강보험에서 산전·산후·출산 혜택을 늘리기는 했지만, 본인부담금이 여전히 꽤 많다. 출산 및 육아의 유급 휴가는 약 2달 반. 무급휴가는 추가로 약 10개월까지다. 이걸 다 받아내도 되는 직장이 몇이나 있을지? 비정규직이라면 실직을 각오할 일이다.
프랑스 : 임신을 직장에서도 축하받는다. 산전·산후·출산 비용은 무료다. 출산 수당을 받는다. 유급휴가는 약 7달 반. 무급휴가는 2년 3개월까지 추가로 쓸 수 있다. 

[육아의 난관]
한국 : 조부모의 도움을 받든지, 보육시설과 유치원을 찾고 그 비용을 대야 한다(이 부분은 2003년 이후 정부 지원이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보육시설이 돌보아 주지 않는 시간 동안은 피아노 학원이나 미술 학원에 보내야 한다. 직장과 집안의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수퍼맘이 되어야 한다. 집에 늦게 오는 남편과의 갈등을 감수해야 한다.
프랑스 : 보육비용은 식대를 제외하고 정부가 전액 부담한다. 직장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맡아 준다(그래도 출퇴근 시간은 바쁘다). 사설 학원에 보낼 일은 없다. 다만, 보육시설이 부족한 것이 흠이다. 약 절반정도의 수요만을 채워 주고 있다고 하지만, 이럴 경우에는 가정보육서비스를 이용한다. 남편이든 아내든 칼퇴근 한다. 가사 노동은 남편과 아내가 분담한다. 

[교육의 난관]
한국 :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때로는 학원비를, 때로는 대학등록금을 부담해야 한다. 자칫 대학원 학비까지 대주어야 한다. 자식이 제대로 공부를 못하면 부모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프랑스 : 그랑제콜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한 부모가 자식 교육에 돈 쓸 일이 없다. 공교육이 모든 교육을 책임지며 창의력 교육을 해준다. 입시용 사교육은 없다. 어떤 직업이든 본인의 선택이다. 직장과 사회가 학력이나 학벌로 차별하는 일은 없다. 일류대학에 못 갔다고 가슴에 못 박고 사는 일은 없다.   

[자식 결혼시키기의 난관]
한국 : 다시 결혼비용과 집장만이다. 남부럽지 않은 혼인식을 치러줘야 하고 자식들의 살 집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손자를 보면 봐줘야 할 부담도 생긴다. 60이 넘어도 목돈 들어갈 일이 많다. 그런데 연금은 불충실하다. 한국의 노후는 특별히 불안정하다.
프랑스 : 자식들은 18살이면 독립한다. 그러니 약 50살 정도가 되면 목돈 들어갈 일은 없다. 60살 이전에 은퇴하고 연금생활자로 살아가도 큰 불편이 없다.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은 단순히 보육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프랑스는 GDP대비 가족예산 비율이 3.79%에 달해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긴 기간 동안 만들어온 복지국가의 바탕 위에 특별히 강력한 육아지원 정책이 제공되었기에 저출산 극복이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서 복지란 주택, 교육, 고용과 임금, 사회보장, 소득 보장을 아울러 하는 말이다.

경제성장 앞세워 지체시켰던 복지, 성장 장애물이 되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남소연

OECD 본부에서 30개 나라의 출산율과 출산대책을 모니터링하고 대응전략을 연구하는 윌렘 아데마(46·Willem Adema) 박사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훌륭한 통찰력을 가지고 분석하고 있었다. 필자는 좀 일찍 귀국하느라고 이 분을 만나지 못해서 아쉽다. 만났더라면 하루 종일 토론을 할 뻔 했다.

그는 짧지만 내가 무릎을 칠 또 한 가지 원인을 지적했다. 손병관 기자의 정리에 의하면 아데마 연구원은 이외에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수도권에서의 긴 출근시간 등을 저출산율의 원인"으로 들었다. '긴 통근 시간' 이것도 저출산의 원인이다. 

파리의 통근시간이 서울보다 짧다고 말하면 누구나 "아! 파리는 지하철이 좋으니까"하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다니며 본 파리의 지하철은 서울보다 형편없다. 물론 서울의 지하철이 파리보다 조밀하지는 못하지만 서울의 지하철은 어느 도시보다 훌륭하다.

수도권의 교통 문제는 교통수단보다는 인구 집중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파리와 인근 수도권지역을 합치면 인구는 1397만명, 프랑스 인구의 21% 정도다. 서울과 수도권은 2452만명, 전 인구의 50%이다. 프랑스 수준으로 수도권 인구 비중이 줄어든다면 한국의 수도권 인구는 1030만명이 된다. 통근 시간은 얼마나 줄어들까? 강준만 교수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지방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다고 했다. 충청에서는 대전이, 전라에서는 광주가, 영남에서는  대구와 부산이 서울과 똑같이 독식하는 체제를 반복하고 있다.

프랑스처럼 인구가 지방의 중소도시에 고르게 분포한다면 한국도 살 만한 나라가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불균등 성장 이론'과 '선성장·후분배'의 논리를 강조하면서 국민들의 삶을 보살피는데 게을리 한 결과가 양극화로, 저출산으로, 고령화로, 대도시의 고통과 지방의 피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지체시켰던 복지가 이제 성장 자체를 발목 잡고 있다. 민족의 장래를 발목잡고 있다. 시장과 성장의 맹신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우리 사회에 무슨 짓을 했었던 지를 돌이켜 반성해 볼 일이다. 

프랑스 저출산 정책의 섬세함를 배우자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자문을 맡은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자문을 맡은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 남소연
저출산이 극복되는 것은 생애에 걸친 이러한 난관을 넘어설 수 있는 지원시스템이 완성되는 그날이다.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점은 지원의 크기만이 아니다. 생애 주기를 따라가면서 저출산의 어려움을 제거해 주는 정책의 섬세한 배치다.

▲주택가격의 안정과 주택 구입의 지원 ▲가족친화적 기업의 보편화 ▲출산비용을 부담할 건강보험 급여의 확대 ▲유급 출산휴가의 충분한 제공 ▲질 좋은 육아시설의 균형 있는 배치와 육아 비용의 사회적 부담 ▲방과후 보육과 교육의 충분한 확대 ▲대학까지의 무상교육 ▲공교육의 중심적 역할 복구 ▲학력차별이 없는 사회 ▲건강보험, 요양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이 충분히 성숙된 사회보장 ▲장애, 실업, 노후의 어느 경우라도 소득이 보장되는 사회안전망. 이런 것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야 저출산은 극복될 수 있다.

이것이 어려운 일인가?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저출산 때문만이 아니다. 심해져 가는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국민들이 하나가 되는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서울과 지방이 같이 사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이는 우리가 반드시 만들어 가야 하는 사회 제도다.

현실은 어떤가? 4대강 사업은 정부 발표 예산만 해도 22조 원, 민주당의 주장에 의하면 36조 원이다. 최근에는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기 위해 3조 원을 투입한다고 한다. 이건 하도 여러 사람이 거론한 것이어서 반복하기도 피곤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

21세기의 한국 정부가 예산을 투자할 포인트가 물적 자본인가, 인적 자본인가? 사람인가, 강물인가?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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