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눈길을 걸었다. 발이 푹푹 빠졌다.
유혜준
눈은 서울에도 많이 내렸다. 하지만 눈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했다. 결론은, 서울은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없는 대도시에, 일터가 있고, 생활공간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울이 무조건 삭막하다는 주장은 아니다. 돌아다녀 보면 아름답거나 정취가 가득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눈이 온 뒤, 출근하면서 아침에 빙판으로 변한 눈길을 종종걸음을 걷다 보면 정취를 느낄 겨를이 없다. 게다가 나는 빙판길에서 여러 번 넘어진 경험이 있는지라, 그런 길을 볼 때마다 겁부터 덜컥 난다. 그러니 그저 눈이 불편하게 여겨지고, 제설작업을 제대로 못 한 서울시를 원망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다르다. 마음이 느슨해지고 그에 따라 평소에는 굳었던 몸도 조금은 유연해진다.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의 바탕에는 여유를, 일탈을 느껴보겠다는 작정이 깔려있어서 그럴 것이다.
지난 12월 30일,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 철원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 철원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 '시골쥐' 만나기와 걷기. 어느 길을 걸을 것인지는 철원이 '나와바리'인 친구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덕분에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머리 아프게 코스를 잡지 않아 마음이 편하긴 했다. 숙소 역시 친구가 잡았으니 더더욱.
친구는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다. 도보여행을 하면서 길 위에서 만난 친구다. 걷다 보면 이렇게 저렇게 길 위에서 친구가 생겨, 만나고 그리고 헤어지게 된다. 헤어질 때는 훗날을 기약하지 않는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 같이 걸을 수 있을 테니까. 인연이란 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길 위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