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묵묵히 시험본 친구들에게 물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바라본 '일제고사'

등록 2013.06.26 11:18수정 2013.06.2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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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준 학업 성취도평가'가 오늘(25일) 시행되었다. 이 시험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국어, 수학, 영어 3개의 과목을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시험보는 것이다. 소위 '일제고사'라고도 불리며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교육 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체계적으로 진단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시험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이 시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1998년에는 1~3%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표집 학업성취도 평가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10년 만에 전국 해당 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 일제히 시험을 치르는 방식으로 바뀌자 '일제고사'라는 명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2008년 일제고사로 전환된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 서열화, 성적지상주의와 과열경쟁, 좋은 결과만을 위한 사교육 부추김 등 부정적인 영향을 낳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교육청에서 학교에게 일제고사 점수를 높이라는 압박을 주고, 일제고사 공부를 위해 0교시나 주말학습까지 감행하는데다 몇 점을 넘으면 문화상품권 등 상품을 주는 학교가 있다는 기사는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막상 시험을 직접 치르는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인가를 받은 중고등학교의 중3, 고2 해당 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시험을 치른다. 필자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특성화 학교의 분류에 속해 있지만, 소위 '인가형 대안학교'라고 불리는 곳이다. 공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학생 중심의 자율적인 프로그램, 경쟁교육이 아닌 배움의 공동체, 생태적인 삶 등을 지향하며 제 3의 교육을 모색하는 학교라고 볼 수 있다.

필자의 학교 역시 교육청의 인가를 받았기에 오늘 일제고사를 치렀다. 아침조회를 하러 모인 8시 30분, 두 명의 친구가 담임선생님께 시험을 치르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렇다면 시험을 보고 싶은 사람은 누가 있겠느냐, 교육청의 지시라 인가학교의 한계라는 이유 등으로 거부당했다. 그렇게 묵묵히 시험을 본 우리반 19명은 자리에 앉아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문제를 풀어나갔을까.

친구들에게 물었다. 일제고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찝찝하다. 나의 기록이 남겨지고 하나 하나 평가받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 "무엇을 위해 보는지 모르겠다. 시험 자체가 내키지 않는 것도 있지만 시험 치는 목적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지도 않으면서 시험지만 던져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제고사 성적으로 학교를 평가, 등급을 나누고 예산 삭감 따위를 하는 것이 싫다", "자기 실력을 평가하는 것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보지 않아도 되는게 아닌가", "이왕 보는 시험이라 열심히 풀긴 했다만 왜 하는지는 모르겠다" 등의 부정적인 답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고사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마다 무의미, 불필요 등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친구는 "문제를 풀긴 풀었으나 백지를 제출했다. 국가가 주는 등급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평가받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비단 우리학교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인가형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물었다. 이 시험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냐고.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학교에 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수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학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답답하다. 개인의 능력을 보는 기회가 성적 때문에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혹은 "국가가 왜 우리의 학업 성취도에 신경을 써주는지 모르겠다"는 극단적인 대답까지 나왔다.

물론 다른 생각을 한 친구도 있다. "대안학교 학생의 경우 일제고사를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문제를 열심히 푸는 친구들을 방해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는 듯싶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자신이 시험을 거부하는 것에 이유가 있는 것처럼, 또 다른 친구는 그 시험에서 중요성과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시험을 본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은 일제고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어쩌면 다른 유형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일제고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아니면 별 생각 없이 당연히 치르는 시험 중 하나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대안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학교 등급화를 중단하라는 일제고사 폐지 요구나 집단 시험 거부에 대한 기사가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일제고사 시스템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고사 뿐만 아니라 모의고사, 영어듣기평가 등 쏟아지는 국가 주도 시험에 학생들은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고 있다. 시험을 직접 치르는 학생들이 불편함과 불안감, 불행을 겪는다면 일제고사는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 국가와 교육청의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고, 학생들 역시 무조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시험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제고사 #대안학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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