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참사 발생, 7시간 내 100만 명 대피 가능할까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5] 월성원전 사고대비 실태

등록 2017.10.14 20:12수정 2018.11.0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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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 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 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편집자말


[기사 보강 : 10월 15일 낮 12시 8분]

마을 단위로 웅성웅성 버스에 오른 주민들. 처음엔 대피 훈련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모였다가 '발전소가 터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어린아이를 끌어안는 젊은 엄마, 버스에 같이 타지 않은 아들 때문에 애를 태우는 노모. 버스 운전대를 잡은 처녀는 어떻게든 원전에서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지만 곧 망연자실한다. 너나없이 몰려나온 차들 때문에 다른 도시로 나가는 길이 꽉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멀리서 몰려오는 방사능 구름.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정신없이 달아나지만 얼마 못 가 여기저기서 토하고, 쓰러지고, 다른 이들에게 떠밀려 넘어진다.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 '영화 속 상상'일 뿐일까  


지난해 개봉한 영화 <판도라>의 일부 장면이다. 가상의 원전 재난을 다룬 이 영화에 대해 찬핵 전문가들은 '과장이 심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경주 월성원전 등 핵발전소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실제로 사고가 일어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제가 학술적으로 계산 한 바에 의하면 원전사고로 방사능이 밖으로 누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7시간입니다. 그 안에 대피해야 하는데, 누가 가만히 있겠어요? 세월호 사건 같은 국가 재난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트라우마가 있어요. 집에 가만히 있으란다고 집에 있겠어요? 다 서울로 갑니다. (월성원전 인근 100만, 고리원전 인근 300만) 누가 통제해요? 안 발생할 거라고 우기지 말고 논리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경주시에 캠퍼스가 있는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의 박종운(53) 교수가 지난 10일 <단비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태처럼 핵발전소에서 전체 정전이 일어나 '셧다운(작동중지)'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사고 진행 시간을 측정했다고 밝혔다.

신고리원전5·6호기를 기준으로 핵연료봉이 녹아 압력용기를 뚫고 나온 뒤 격납용기 안에 쌓이는 '멜트스루'가 일어나는 데 3시간, 그곳을 둘러싸는 원자로격납건물의 압력이 올라가 파손될 때까지를 10시간으로 계산했다. 3시간과 10시간 사이, 즉 공기 중으로 방사능 물질이 나오기까지 7시간 안에 사람들이 대피해야 피폭을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에 있는 모든 경수로(감속재로 물을 사용하는 원자로) 원전에 이런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데, 월성원전과 같은 중수로(감속재로 중수를 사용하는 원자로)의 경우 조금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격납건물의 설계 압력이 더 낮아 더 빨리 깨지기 때문이다. 또 지역의 인구밀도와 상황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다를 수 있다고 부연했다. 대체로 방사능이 대기에 누출되기 전 7시간이 '골든타임'이라고 볼 때, 월성원전의 경우 반경 30킬로미터(km) 내에 사는 경주, 울산과 포항 일부지역 주민 약 100만 명이 이 시간 안에 위험지역을 벗어날 수 있는가가 문제의 초점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반경 30km를 상한으로 해서 각국이 상황에 맞게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지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환경단체들은 비상계획구역 범위가 '최소 30km'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다울 그린피스 선임캠페이너는 "후쿠시마는 (사고 당시) 강제피난구역이 20km, 권고피난구역이 30km였는데, 이후 실제로 보니 최대 40~45km까지 고농도로 오염된 지역이 있었다"며 "그런 현실을 감안해서 최소 30km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현재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30km로 정하고 있다.




일단 '자가용 등으로 알아서 대피'가 원칙 


"대피 개념이라는 게 일차적으로 지정은 마을별로 돼 있지만 일단 자가 대피가 원칙입니다. 스스로가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친척 집으로 갈 수도 있는 거고.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자기 차량을 이용해서 자가 대피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고요. 예를 들어서 거동이 불편하다든가 차량이 없다든가 이런 분들은 차량을 지정해서 또 (저희가) 2차적으로 대피를 시키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자기가 대피하고 싶은데 일부러 집결지에 모여서 이렇게 갈 필요는 없잖아요."


경주시청 원자력정책과 박대선 원전방재팀장은 지난달 28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재난 대피계획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박 팀장은 자가용 차량이 없는 주민들을 위해서는 관내 군부대 차량이나 관광버스 등을 동원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버스회사 연락처 등 관련 정보를 확보해 두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상 주민들의 자가용 차량 보유현황 등에 대해 파악된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 과연 즉각적으로 차량 수요를 파악해 신속히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대피구역 내 주민들이 개별 차량으로 일제히 이동할 때 <판도라>에서와 같은 도로 정체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지난 1979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비상조치구역인 30km 반경 내 주민은 13만 5천여 명이었다. 또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30km 반경 내 주민은 16만 명이었다. 후쿠시마의 경우 일본 정부가 원전사고의 심각성을 부인하다 점진적으로 대피명령구간을 확대했기 때문에 주민들의 대피는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두 달여 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현대 도시에서 100만 명가량의 대규모 대피가 몇 시간 안에 이뤄진 전례는 아직 없는 셈이다. 


비상대피구역 내 주민들이 유사시 '어디로' 갈 것인가도 문제다. 경주시가 지정한 20개의 구호소 중 원전에서 30km 반경 밖에 위치한 곳은 8개소뿐이다. 예를 들어 3050명의 이재민을 수용할 수 있는 경주실내체육관은 원전에서 불과 25km 떨어진 곳에 있다.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UPZ) 설정이 지자체별로 지형적 특성 등을 감안해 원전반경 20~30km범위에서 유동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경주의 경우 원전 반경 22~28km밖에 구호소를 정한 것이란 설명이다. 경주시가 긴급보호조치계획 구역을 25km로 할 경우 피난대상 주민은 5만 3천여 명이지만 30km로 할 경우 19만여 명으로 급증한다.






30만 경주시민 방사능방재 훈련 예산 1억6천만 원  


원전에서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주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까. 경주시의회 정현주(52·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사시에 본능적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지난해) 경주 지진 후에도 구호소 리스트만 뿌릴 뿐 세부적으로 시행해보는 등의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주민 신용화(46·여·양남면 나아리) 씨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에서 아이들에게 대피훈련 시킨다고 몇 번 한 것은 기억나는데 별로 실질적인 소득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외곽 지역에 있어서 마을 방송이 잘 들리지도 않고 훈련한다는 공지도 제대로 못 받았다"며 "한수원 사람들 많이 사는 양북면은 방송시설이 좋은데 우리 양남은 힘이 없으니 방송시설 개선해달라고 해도 아무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경주시청은 지난해 지진 후 방사능 방재 훈련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박대선 원전방재팀장은 지난 8월 22일 실시한 을지대피훈련에 '방사능 누출에 따른 주민 대피' 등 원전방재 관련 항목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비상계획구역 내 주민 중 300여 명을 선정한 뒤 환자후송 등 필요한 훈련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실제 대피 훈련 등에 대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지자체 수준에서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경주시의 방사능방재 예산은 교육·훈련 집행액이 지난해 9152만5000원에서 올해 1억6525만원으로, 장비구입 집행액이 4억5713만원에서 5억1640만원으로 늘어난 정도다. 지난 8월 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훈련에 이미 4천여만 원이 들었다고 박 팀장은 밝혔다.    


지난 연말 기준으로 경주시가 갖추고 있는 방사능 방호물품 및 방재장비를 보면 주민보호장구가 2만9310세트, 방재요원보호장구가 70세트, 갑상선방호약품(요오드) 45만7990정, 방사선(능) 측정기 360대, 고정형 환경방사선감시기 25대, 이동형 환경방사선감시차량 1대, 공기시료채집기 1대 등이다. 박 팀장은 "2013년부터 개당 1만5000원 상당의 방재복을 마을회관 등에 비치해 놨다"며 "방사능 피폭으로부터 100% 보호는 불가능하지만, 공기 중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재계획에 따르면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 원전 인근 주민들은 일단 방호 물품이 있는 마을회관 등 집결지에서 보호장구와 약품 등을 받아 마을 별로 배정된 구호소로 이동한다.



박 팀장은 방재복을 개별 가정에 나눠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소중한 소지품도 집안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리기 쉬운데, 방호물품은 매년 전수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하기 쉽지 않다"며 "유사시에도 마을회관 등에 보관했다가 전달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근본적 대책은 원전을 줄이는 것 

그러나 정현주 의원은 경주시의 방사능 방재대책이 불충분하다며 "(월성원전 인근) 동경주 주민을 대상으로 실제 소개(피난) 훈련을 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유사시에) 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광역 지자체를 총괄할 수 있는 협조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특히 "지난해 경주 지진과 태풍 당시 도로, 터널, 상하수도 등의 관리 책임이 각 기관에 분산돼 있어 주민들 입장에서 문제 해결이 어려웠다"며 "관련 기관 간 소통을 원활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운 교수는 '7시간 내 대피'를 주장하는 자신과 달리 한수원 측에서는 방사능이 대기에 누출될 때까지의 시간을 '30시간에서 50시간까지'로 잡는다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자동차를 살 때 정면충돌하면 어떻게 될까를 걱정하지, 시속 30km로 달려 벽에 부닥쳤을 때 어떨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어느 정도가 최대의 위험인지를 보고 거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전 재난을 막는 데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원전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발전소가 많아지면 사고확률이 높아집니다. (한 군데) 몰아 지으면 안 됩니다. 국가가 철학을 가지고 '이것은 위험해서 안 된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당장 원전을 다 닫자는 게 아니고) 천천히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로 대체해 가자는 것, 국민들 안전하게 하자는 것인데 왜 이걸 반대하나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월성원전 #대피시나리오 #경주 #원전사고 #한국수력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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