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오라잍125화

그냥 퇴근하기 싫은 중년의 워킹맘이 하는 '이것'

[혼술 하는 중년] '혼술'이라 쓰고, '위로'라 읽는다

등록 2019.06.21 13:53수정 2019.06.2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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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더이상 1인 가구 이야기가 아닙니다. 혼술하는 중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혼술을 하는 이유
 
 나는 가끔 혼자 먹는다. 그런 날은 위로받고 싶은 날이다.
나는 가끔 혼자 먹는다. 그런 날은 위로받고 싶은 날이다.ⓒ CoolPubilcDomains,출처OGQ
 
나는 가끔 퇴근길에 혼자 식당에 들러 밥을 먹는다. 반주로 술을 곁들인다. 흔히 말하는 혼밥, 혼술을 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혼자 먹는 것이 처음이 어렵지 자주 하다 보니 익숙하다. "혼자 오셨어요?" 하는 점원의 질문에도 자연스럽게 "네"라고 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는다.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처음엔 어색했다. 젊은 사람이 혼자 먹으면 '선택'한 것 같지만, 나이든 사람이 혼자 먹으면 조금 처량해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나. 세상풍파 다 겪은 노인이 마시는 소주 한 잔 같은 느낌. 별로 풍요로워 보이지 않는 그런 느낌 말이다.


딱 그런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그런데 몇 번 해보니 알겠더라. 사람들은 의외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각자 자신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음식과 동석한 사람과의 대화에 신경 쓸 뿐, 옆자리에 홀로 앉은 나이든 여자에겐 관심이 없었다.

퇴근길에 혼자 먹는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증거다.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너무 밉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싫고, 모든 상황이 지겹도록 싫을 때가 있다. 무언가 내 스스로 자괴감으로 괴롭고 흔들릴 때, '그거 하나쯤 괜찮아' 혹은 '누구나 다 그래'라고 말해 줄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데 중년이 되어보니 그 누군가를 찾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더라. 그리고, 내 상황을, 그날의 기분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의 대화는 잘못하면 신세한탄만 하게 되니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서 먹는 것에 집중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 누군가가 그리운 날이 있다. 그런 날 나는 혼술을 한다.

혼밥, 혼술의 시작
 
 중년의 직장인은 벼랑끝에 홀로선 느낌일때가 많다.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중년의 직장인은 벼랑끝에 홀로선 느낌일때가 많다.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ashkned, 출처 Unsplash
 
혼자 먹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일본에서 교환 학생으로 있을 때였다. 운이 좋게 일본 교환학생으로 뽑혀서 갔다. '운이 좋게'라는 표현은 일본어를 하나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할 줄 몰랐으니 친구를 적극적으로 사귈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사서 학교 잔디광장에 앉아서 먹곤 했는데, 그때 주위를 돌아보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혼자 먹는 것이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웠다. 기숙사 근처 이자카야에 가서 홀로 작은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때 알았다. 혼자서 먹는다는 건 진정한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음식에 집중하고 씹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 동안 오늘 하루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세월이 흘러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다. 가정과 일 사이를 정신 없이 오가다 문득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을 것 같지만, 외로움이라는 친구는 치열한 삶의 빈자리를 용케 찾아내어 비집고 들어온다. 또 외로움은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 허무함이라는 친구도 동반한다. 그런 날 허한 가슴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서둘러 퇴근하기 바쁜 모습이다. 붙잡고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말하기도 어렵다. 중년의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다. 점점 외로워진다. 같이 일하던 동기들도 하나 둘 퇴사하거나, 이직을 하고, 잘 나가는 동기들은 잘 나가서 만날 시간이 없다. 아랫사람이랑 먹자고 하면 그건 꼰대다. 저녁식사는 업무가 되어버리니까.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전화번호를 뒤져보니 당장 달려올 사람들도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알겠더라. 저녁에 약속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인지를. 그 과정에서 친구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사실, 일찍 결혼한 친구들 입장에서는 내가 정리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당장 부를 친구도 없었지만, 불러내기도 귀찮았다. 불러내고 시간 맞추는 시간에 혼자 얼른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혼술의 시작이었다.

혼술의 안주는 따뜻한 국물
 
 따뜻한 국물이 주는 위로
따뜻한 국물이 주는 위로ⓒ jadlimcaco, 출처 Unsplash
 
혼술을 한다고 말하면 모두들 내가 엄청 술을 잘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딱 1, 2잔이 내 주량이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술보다 안주다. 안주는 주로 따뜻한 국물이다.

국밥이나 라면종류인데, 소량의 알코올과 따뜻한 국물의 조합은 외로운 느낌이 드는 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가끔 생각한다. 마음의 존재는 위장 어디쯤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따듯한 국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초라하고 추웠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지니까.

국물을 먹으며 생각한다. 지나온 모든 일, 앞으로 해야 할 모든 일, 내 안의 모든 감정을 되돌아 보게 된다. 바빠서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 감정들도 되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분노, 미움, 부끄러움, 불안을 들여다 본다.

직장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내일에도 반복될 출근을 생각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말이 있다. 먹고 사는 일은 그만큼 엄중하고 귀중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국물과 함께 삼켜버린다. 그리고 남은 말은 이렇다.

'괜찮아! 괜찮아! 뭐 그게 대수라고!'

따뜻한 국물은 그래서 위대하다. 모든 감정을 녹여버리듯, 위장 속으로 들어간 온도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대신 외쳐준다. 나는 그 위로가 좋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이래서인가 싶기도 하다. 국물과 소량의 소주를 비우고 나면 내 자신에 대해서 조금 관대해진다. 식당 문을 나서면서 생각한다.

'미운 사람 미워해도 된다. 인생, 조금은 비겁해도 된다. 세상 사람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볼 일이다.'

그렇게 약간의 알코올과 국물을 마시고 나와 도시 산책을 20여 분쯤 한다. 술을 깨고 집으로 오면 평소보다 퇴근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늦어진다. 그때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마무리 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도 잘 살아냈다는 생각과 함께.

혼술이라 쓰고, 스스로 위로하는 일이라 읽는다
 
 결국 혼술은 나를 위로하는 과정이다
결국 혼술은 나를 위로하는 과정이다ⓒ geralt, 출처 Pixabay
 
혼자 먹어보니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일단 술을 과하게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딱, 반주로 먹을 만큼만 적당히 먹고 나올 수 있다. 같이 마실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

술자리에서 오가는 뒷담화에서도 자유롭다. 뒷담화는 말할 때는 편하지만, 뒤돌아서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뒷담화를 하다 보면 현재 스트레스의 원인이 남 탓이 되기도 쉽다. 자칫하면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고 마음은 허전해진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길은 뒷담화보다 위로다.

타인에게 하소연을 하고 위로를 받으면 가장 좋겠지만, 위로는 잘못하면 동정이 된다. 타인간의 위로는 조심스럽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어렵고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혼밥, 혼술은 스스로 내 안에서 만나는 위로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다. 외부에서 받은 상처가 내면을 파고들어 외로움과 자리잡고 있을 때, 스스로 하는 위로도 필요한 법이다.

스스로 하는 위로에서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 소주 한 잔, 내가 나에게 건네는 '괜찮다'는 한 마디,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여유, 그것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오늘도 참 괜찮은 하루였다'고 적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혼술 #혼밥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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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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