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직장인은 벼랑끝에 홀로선 느낌일때가 많다.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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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일본에서 교환 학생으로 있을 때였다. 운이 좋게 일본 교환학생으로 뽑혀서 갔다. '운이 좋게'라는 표현은 일본어를 하나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할 줄 몰랐으니 친구를 적극적으로 사귈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사서 학교 잔디광장에 앉아서 먹곤 했는데, 그때 주위를 돌아보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혼자 먹는 것이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웠다. 기숙사 근처 이자카야에 가서 홀로 작은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때 알았다. 혼자서 먹는다는 건 진정한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음식에 집중하고 씹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 동안 오늘 하루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세월이 흘러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다. 가정과 일 사이를 정신 없이 오가다 문득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을 것 같지만, 외로움이라는 친구는 치열한 삶의 빈자리를 용케 찾아내어 비집고 들어온다. 또 외로움은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 허무함이라는 친구도 동반한다. 그런 날 허한 가슴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서둘러 퇴근하기 바쁜 모습이다. 붙잡고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말하기도 어렵다. 중년의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다. 점점 외로워진다. 같이 일하던 동기들도 하나 둘 퇴사하거나, 이직을 하고, 잘 나가는 동기들은 잘 나가서 만날 시간이 없다. 아랫사람이랑 먹자고 하면 그건 꼰대다. 저녁식사는 업무가 되어버리니까.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전화번호를 뒤져보니 당장 달려올 사람들도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알겠더라. 저녁에 약속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인지를. 그 과정에서 친구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사실, 일찍 결혼한 친구들 입장에서는 내가 정리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당장 부를 친구도 없었지만, 불러내기도 귀찮았다. 불러내고 시간 맞추는 시간에 혼자 얼른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혼술의 시작이었다.
혼술의 안주는 따뜻한 국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