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찾아낸 수도계량기. 이게 뭐라고 그렇게 안 알려주려고 했을까? 지난 2017년 <중부일보>에 따르면, 평택시의 한 아파트는 수도요금을 세대당 월평균 5천 원씩 과다 부과해 조성한 2500만 원으로 수도배관 교체공사를 진행하다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김나라
'진짜 미심쩍네.' 수도요금 문제로 아파트 입주자 대표와 통화를 마친 후 생각했다. 새 집에 이사 온 뒤로 몇 달간 수도요금이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동일 면적 대비로는 만 원 이상 차이가 났고, 전에 살던 집과 비교해 봐도 물을 더 많이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수도사업본부에 연락해서 집안 여기저기 누수 점검을 받았다. 그런데 수도계량기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연락하라고 했고, 일전엔 달변이던 회장은 이상할 정도로 말을 빙빙 돌렸다. 그럼 계량기가 멀리에 있는 거냐, 접근할 수 없게 돼 있는 거냐 물어도 알쏭달쏭한 답만 돌아왔다.
결국 서너 번 같은 질문을 한 끝에야 겨우 우리 집 바로 위인 '옥상'에 있다는 걸 알아냈지만, 상수도사업본부 직원에게 말하자 옥상은 검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수에 대한 생각은 접기로 했다.
대표와 그런 통화를 하고 나니, 누수가 아닌 비리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스스로 한 달간 계량기가 몇 미터 돌아갔는지 기록했다가,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의 '
요금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계산해 봤다. 고지받은 수도요금과 비교하니 내 계산보다 약 5천 원 높게 청구된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이걸 오차 범위 내로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당장 더 해볼 만한 일이 없었다.
관리비 관리, 소규모 공동주택은 어렵다
관리비 사용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싶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우리 아파트는 40여 가구밖에 안 되는 소규모 공동주택이다. 2020년 4월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되어 150가구 미만 공동주택은 입주자 및 사용자의 3분의 2 이상 동의하는 경우 '의무관리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의무관리대상이 되면 정기적으로 외부감사를 받는다. 공동주택 측에서 작성한 재무제표가 아파트 회계원칙에 맞게 작성된 것인지 외부 공인회계사가 확인하는 거다. 또 해당 주택이
K-apt 공동주택관리시스템에 등록되어 세부 정보를 공개하게 된다. 주민들은 이 시스템으로 구체적 사용 내역, 다른 단지와의 비교 결과, 세부항목 지역별 평균 등의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상한 점이 보일 때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300가구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만 의무관리대상으로 삼던 법이 이렇게 바뀐 건, 소규모 공동주택이 관리에서 소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주자 입장에서는 이런 개정안의 실효성이 와닿지 않는다.
전 가구를 방문해 서면 동의를 구하는 일은 개인에게 큰 부담이다. 외부감사에 드는 돈을 세대별로 나누어 부담해야 하기에 필요한 일이지만, 작고 오래된 아파트는 관리사무소나 전체 공지 체계조차 없는 곳이 많다. 더구나 요즘처럼 면대면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방문이 두려운 사회 분위기에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상황을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비혼 여성 등 1인 가구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소규모 공동주택은 익명성이 떨어져서 집단 내 갈등과 신변의 위험을 더 감수하게 된다. 또한 월세로 짧게는 1~2년, 전세로 길어야 4년 한 집에 사는 세입자, 사회 경험이 없는 청년층이라면 나서기는 더 애매하다.
국토교통부가 2014년부터 운영 중인 '공동주택 관리 비리 및 부실감리 신고센터'는 이 같은 상황을 보완한다고 볼 수 있다. 신고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참고인의 인적사항 또는 증거자료가 있다면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가 가능하다. 그러나 증거자료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시설 보수가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 등 주민들이 자세히 알기 어려운 사안이 대부분이고, 사용 내역 등은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월세 상한제가 낳은 조삼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