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문은 왜 열리지 않았나?

가장 넓은 탈출구 · 다수의 환풍기를 방화셔터가 가로막아

등록 2003.02.21 14:04수정 2003.02.2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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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장 넓은 대피로, 가장 넓은 환풍구를 막아버린 방화벽, 그것은 피해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통곡의 문, 절망의 벽이었다.

가장 넓은 대피로, 가장 넓은 환풍구를 막아버린 방화벽, 그것은 피해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통곡의 문, 절망의 벽이었다. ⓒ 한상훈

대구지하철 참사가 전형적인 인재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커다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은 화마에 직접 노출된 사람보다 배출된 독가스에 질식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이 더 많다. 질식사한 희생자의 숫자를 더욱 늘린 것은 독가스를 배출할 환기구와 널찍한 통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로역에는 사고 당시에는 전혀 가용하지 못한 상당수의 환풍기와 평상시 중앙로역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통행이 가장 많았던 통로가 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조금의 독가스라도 더 밖으로 배출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탈출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데도 어째서 다수의 환풍기와 통로를 한가하게 놀리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그 번듯한 시설물들 앞에 절망의 벽, 통곡의 문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a 붉은 색의 직사각형이 중앙로역, 지하상가는 중앙로 역 지하 1층의 중심부와 연결되어있다. 동신로에서 서신로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바로 지하상가이다.

붉은 색의 직사각형이 중앙로역, 지하상가는 중앙로 역 지하 1층의 중심부와 연결되어있다. 동신로에서 서신로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바로 지하상가이다. ⓒ 한상훈

사고가 난 중앙로 역은 대구의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중앙지하상가와 연결되어 있다. 알려진 대로 중앙로역은 총 지하3층으로 구성되어있다. 지하 3층은 전동차가 지나다니는 승강장이고, 지하 2층은 전시장을 비롯한 매표소와 개찰구, 그리고 통로다. 지하 1층은 지상과 연결된 통로이다. 중앙지하상가는 지하 1층 통로와 연결되어 있다. 아니 연결하고 있다기보다 지하 1층을 양분한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중앙지하상가의 복도는 평상시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이용하는 통로였다.

a 그림에서처럼 1에서 4까지의 출구보다 중앙을 관통하는 통로가 더 출입이 용이하다.

그림에서처럼 1에서 4까지의 출구보다 중앙을 관통하는 통로가 더 출입이 용이하다. ⓒ 한상훈

중앙로역 지하 1층은 중앙지하상가를 중심으로 대칭형으로 구성되어있다. 1층의 한편마다 제일 끄트머리에 지상으로 통하는 좁고 깊은 계단(넓이 4미터정도, 길이 30여미터, 복도에서 정방향으로 배치되어있지 않고, 한번 꼬여 있다.)이 2군데에 배치되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의 3분의 1정도의 길이에 넓이 20여미터의 널찍한 중앙지하상가의 복도가 있다. 언제나 환하게 불을 밝혀놓은 널찍한 중앙지하상가의 복도에는 4군데에 지상으로 연결되는 계단과 십수개의 환풍기, 킬로미터 단위로 따질 수 있는 긴 중앙지하상가의 통로가 존재하는 것이다.

중앙지하상가의 통로에는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 통로를 따라 뛰어가기만 해도 죽음으로부터는 멀리 달아날 수가 있다. 하지만, 사고가 나자 이 천혜의 탈출구와 환풍구는 단숨에 차단되고 말았다. 그을음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중앙지하상가의 복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중앙로역 지하1층과 중앙지하상가를 이어주는 부분은 화재초기에 이미 방화셔터가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사고 승객들에게 방화셔터는 곧 생사를 가르는 벽이었을 것이다.

a ‘출구5 지하철’이라고 적힌 곳에 방화셔터가 내려져 지하상가와 중앙로역 지하1층은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곳으로는 사람은 물론, 연기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출구5 지하철’이라고 적힌 곳에 방화셔터가 내려져 지하상가와 중앙로역 지하1층은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곳으로는 사람은 물론, 연기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 한상훈


a 중앙지하상가는 이렇게 넓고, 길다. 그리고 출구도 많아 탈출에 가장 용이하다.

중앙지하상가는 이렇게 넓고, 길다. 그리고 출구도 많아 탈출에 가장 용이하다. ⓒ 한상훈

지하 3층에서 난 불을 피해 지상으로 올라오던 사고객차의 승객들은 겨우 겨우 계단을 찾아 지하 2층으로, 그리고 지하 1층으로 올라왔을 것이다. 지하 2, 3층의 계단은 높이가 14미터로 비교적 짧은데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렇지만 지하 1층까지 올라온 승객은 출구가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하 2,3층보다 휠씬 넓은데다 통로의 맨 끝에 그것도 뒤틀어지고 좁고 길어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계단을 찾는 것은 쉽지가 않다.


몇몇 승객들은 예전의 기억을 되짚으며 지하상가방면으로 뛰어왔을지도 모른다. 비상등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운좋게 복도의 끝,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에 다다른 승객들은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반대편, 지하상가 쪽에 다다른 승객들은 나갈 곳이 없었다. 다시 깜깜하고 독가스가 자욱한 통로의 반대편 끝까지 뛰어가야만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a 지상으로 통하는 반대편 출구는 이렇게 좁고, 한번 틀어져있다.

지상으로 통하는 반대편 출구는 이렇게 좁고, 한번 틀어져있다. ⓒ 한상훈


a 방화셔터가 내려진 한쪽 끄트머리에서 다시 반대쪽 출구로 나가려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방화셔터가 내려진 한쪽 끄트머리에서 다시 반대쪽 출구로 나가려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 한상훈

만약, 방화벽이 가로막혀 있지 않았다면, 언제나 환하게 조명장치가 밝혀져 있는 중앙지하상가의 홀은 지하 1층에 다다른 사고 승객들의 시선을 확 끌어 대피율이 휠씬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하에 가득차 있던 독가스들도 지하상가를 통해 많이 분출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곳을 이용했다면 구조작업이 더 능동적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a 지하상가의 홀에만 이런 모양의 지상으로 통하는 탈출구가 8개나 있다.

지하상가의 홀에만 이런 모양의 지상으로 통하는 탈출구가 8개나 있다. ⓒ 한상훈

지금까지 언론과 재해본부는 화재를 감지한 열감지센서가 방화셔터를 자동으로 차단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화재초기에 지하 3층, 2층을 거쳐 지하1층으로 올라온 소량의 연기를 감지한 센서가 방화셔터를 닫았다는 것이 진실일까? 방화셔터 밖에는 수동스위치가 있었다.

센서가 작동하지 않아도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고, 설령 자동 셔터가 닫혔다고 해도 다시 수동으로 셔터를 올릴 수가 있다. 정전이 일어나도 예비 배터리에 의해 작동이 되는 구조니까 화재가 났다고 다시 개방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셔터를 관리하고 조작할 책임이 있지만 화재대응에 대해 상식조차 없었던 누군가가 당황한 나머지 안일하게 셔터를 내려버렸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a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동 제어스위치가 셔터 바깥쪽에 달려있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동 제어스위치가 셔터 바깥쪽에 달려있었다. ⓒ 한상훈

그렇다면 화재시 이 문제의 방화셔터를 관리하고, 조작하는 것은 누구의 소임인가? 대구지하철공사인가, 지하상가의 관리업체인 대현실업인가? 만약, 지하철공사가 관리, 조작을 하도록 되어 있다면 방화셔터 조작미숙이라는 큰 실수를 하나 더한 것이 된다.

만약, 지하상가 관리업체 대현실업이 조작하였다면 이는 그 민간업체와 더불어 대구시에게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기업은 생리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자기재산을 보호하는 집단이다. 그네들에게 방화벽 조작을 전임했다면 대구시는 시민들의 안전을 특정업체에 넘겨준 꼴이다.

얼마 전 대현실업이 임대기간이 만료된 3지구의 상점을 명도받기 위해 시민들이 다니는 도로인 지하상가 복도에 격등, 난방차단, 환풍기차단을 하는 불법전횡을 방관한 무책임한 전력이 있는 대구시의 행태를 떠올려보면 후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하튼 화재 초기부터 지금까지 굳게 닫혀진 방화벽은 화재에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또 하나의 커다란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a 지난 2월 15일, 지하상가 3지구의 환풍기차단, 입구점등에 항의하는 시민단체의 방독면 1인시위, 이렇게 일찍부터 대구시는 안전불감증에 결려있었다.

지난 2월 15일, 지하상가 3지구의 환풍기차단, 입구점등에 항의하는 시민단체의 방독면 1인시위, 이렇게 일찍부터 대구시는 안전불감증에 결려있었다. ⓒ 한상훈

이번 사고를 대형참사로 만든 것은 사람들의 실수였고, 소식을 접한 이들을 분노케 한 것은 그들의 실수보다도 진실을 은폐축소하려는 움직임이다. 여기 제기하는 방화벽 의혹도 일말의 의구심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진상규명해야한다. 더불어 이글을 보는 많은 독자들은 여러 사이트로 이글을 옮겨 사고당시 지하상가를 거닐던 행인들을 찾았으면 좋겠다. 방화셔터가 내려진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말이다.

a 중앙로역에 인접한 상가에는 약간의 그을음 때문에 물건을 손봐야했지만, 거의 피해가 없었다.

중앙로역에 인접한 상가에는 약간의 그을음 때문에 물건을 손봐야했지만, 거의 피해가 없었다. ⓒ 한상훈


a 넓찍한 지하상가에서 중앙로 역으로 향하는 통로, 방화셔터의 바깥쪽은 이렇게 깨끗하다.

넓찍한 지하상가에서 중앙로 역으로 향하는 통로, 방화셔터의 바깥쪽은 이렇게 깨끗하다. ⓒ 한상훈


a 그렇지만 셔터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안쪽은 독가스에 의해 생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셔터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안쪽은 독가스에 의해 생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 한상훈


a 방화셔터를 힘껏 밀고 있는 개혁국민정당 정책위원 박종하씨, 이렇게 셔터를 아무리 밀고 당겨봐도 요지부동이다.

방화셔터를 힘껏 밀고 있는 개혁국민정당 정책위원 박종하씨, 이렇게 셔터를 아무리 밀고 당겨봐도 요지부동이다. ⓒ 한상훈

덧붙이는 글 | 사고당일, 사고 시간에 중앙로역과 지하상가를 잇는 통로로 지나신 분들의 증언을 듣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사고당일, 사고 시간에 중앙로역과 지하상가를 잇는 통로로 지나신 분들의 증언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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