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세상에선 초등학생이 무서워요

온라인 게임으로 본 초등학생의 언어병폐 심각

등록 2003.03.14 22:00수정 2003.03.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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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정이 넘은 시간에 온라인게임 사이트에 접속하여 보면 초등학생들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199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디지털 문명의 혜택을 태어날 때부터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넥슨사가 제공하는 ‘퀴즈퀴즈’나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주된 이용자인 초등학생들을 감안하여 운영되고 있는데 서비스 중 하나인 아바타(avatar)는 유료아이템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매우 좋다. 이제 그들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활동하는 자신을 당연하고 친숙히 여긴다.

그런데 이처럼 초등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나는 현재 친구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관리를 도와주고 있는데 그곳에 찾아오는 초등학생들의 언어 행태를 보고 적잖이 놀라고 있다. 주변에서 요즘의 초등학생들이 음란채팅을 하고 쉽사리 욕설을 내뱉는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그들과 접할 기회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늘도 왔구녀... 헐..
저 오늘은 많이 이겼음.
범범파이터 이젠 맵도 지겹고 재미없더여. 그리고 님아 답변쓸 때 지겨울수도 있겠죠
같은글 올릴려고 대들지마셈
그리고 난 님보다 나이가 많아요
또 어떤 xx늠이 나랑 경쟁 붙어서 xx거리고 있어. 즐이다.
그래서 지금 다운로드 업로드1위 뽑힐려고 어떤 xx늠하고 파일로 경쟁하눈데 암튼 그xx늠좀 찾아서 뒤지게 패주셈 ㅋㅋ
참 뿌요 da 에레나스티브스 얘 나이 몇살이에염?
혹시 설마 초3학년은 아니져?
구럼 뒤지게 패죽여야징 ㅋㅋㅋ


윗글은 초등학생으로 추정되는(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아이가 홈페이지 방명록에 남기고 간 말인데, 맞춤법이 이상할 뿐만 아니라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라 내용에 거리낌이 없다. 이처럼 언어파괴와 초등학생들만의 은어, 욕설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예전에는 통신하는 사람들이 채팅을 할 때 의사전달을 빨리 하기 위해서 말을 줄여서 쓰기도 했지만(통신체) 근래의 상황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하다. 한글과 일본어, 영어와 특수문자를 섞어 기괴한 문자를 만들어내고 외계어라 불리는 이러한 복잡한 글자들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이다. 이쯤 되니 웹상의 여기저기에서는 심각한 언어 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헐”, “허거덕”, “님아”, “~하셈”, “즐” 등의 말은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에서는 어디든지 찾아볼 수가 있고 심지어 실제로도 쓰이고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랄 일이다. PC방에 우르르 몰려와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초등학생들에게선 쉴새없이 그들만의 언어가 흘러나오고 어느 학급에서는 “즐” 이란 말을 금지해 이를 어기면 벌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쓴웃음이 나온다.

이러한 은어들이 난무하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음란물을 전할 수 있는 ‘가상현실’ 상황에서 초등학생들의 인성은 지금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편리함과 익명성이라는 장점을 갖춘 인터넷 미디어에 온라인 게임(초등학생들의 만남의 장)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그들은 가장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충분한 수용력과 지각능력이 뒷받침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 피해는 상상보다 크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음란사이트 접속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기에 바쁘고 아이들은 헐거운 규제의 틈새에서 병들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듯이 지금의 초등학생에게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현재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신 예절, 즉 통신 윤리를 가르쳐주는 일이라 생각된다. 집 밖에서 노는 시간보다 컴퓨터로 인터넷을 즐기는 시간이 더 익숙하고 즐거운 오늘의 초등학생들이 나는 참 안쓰럽다. 해질녘까지 친구와 고무줄을 뛰며 놀고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재촉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가는 기분을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느끼지 못할 테니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그들만의 유대를 쌓는 것으로 외로움을 표출하는 것은 아닐까? 주변의 따뜻한 관심이 부족한 것 같아 살짝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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