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걸기 '대안연대'냐, 재벌개혁 '대항연대'냐

[반론] SK사태를 맞은 재벌개혁의 기로에서

등록 2003.05.19 23:00수정 2003.05.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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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K글로벌의 회계분식 및 부실문제를 둘러싸고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가 개진한 재벌개혁론에 대해 대안연대 이찬근 교수가 자본 국적론을 근거로 반박한 글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이 글은 금융감독원 오용석 박사가 금융 및 금융감독업무의 이론 및 실제에 비추어 대안연대의 입장을 재반박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사안에 대한 다양한 주장 및 반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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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재벌개혁이 창조냐 아니면 파괴냐 하고 따지려는 것은 기혼 남녀간의 사랑이 로맨스냐 아니면 불륜이냐를 가려보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함에도 이른바 '대안연대'는 참여연대 식의 개혁이 우리 경제에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공개 비난하면서 경제위기 이후 재벌개혁의 선봉에 선 참여연대와 진검 승부를 겨루자고 한다. 지금 SK사태가 숨가쁘게 진행되는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자중지란'인가.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자중지란이 아니며 새삼스럽게 놀랄 일도 아니다. 재벌개혁에 관한 한 참여연대가 그간의 개혁성과는 인정하면서도 개혁의 불철저성 및 지지부진을 매섭게 질타하였음에 반해, 대안연대는 2001년 4월 창설된 이후 월스트리트의 신자유주의 논리를 전면 거부하고 국민의 정부가 취한 제반 개혁조치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면서도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시종 일관하였고 대안(代案)이 아닌 '대안(對岸)'의 연대를 강화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대안연대는 지금이라도 미국식의 냉혹한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포기하고 유럽식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로 나가자는 것이다.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고 지금은 더 더욱 그러하다. 97년 말 국가부도위기에 직면한 우리 경제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에 입각하여 IMF가 요구하는 미국식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수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당시에는 유럽식 자본주의마저 소위 '제3의 길'이란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고 이러한 방향의 변화는 현재 가속화되는 중이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공격적 야수성을 여실히 보여주기까지 한다. 대안연대의 주장처럼 노동자나 공익대표 등의 이해 당사자가 기업경영을 직접 감시하고 조언하는 것은 최선의 윤리대안일지 모르나 결코 현실적인 경제대안은 될 수 없다. 공허한 논의에 불과하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답답한 노릇이다. 이제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좌충우돌하면서 재벌개혁에 정면으로 대항하자는 것인가. SK글로벌의 부실문제가 드러나는 와중에서 영국계 크레스트 증권의 SK주식 매집사건이 발생하자 대안연대는 (개별) '기업'의 국적을 외국자본으로부터 보호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한국형 기업집단인) '재벌'의 지배권이 손쉽게 외국자본에 넘어갈 수도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현행 재벌개혁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성급히 결론 내린다. 왜냐하면 재벌은 (법적으로) '사유재산'임과 동시에 (경제적으로) 국민적 사회적 '자산'이므로 재벌의 경영권이 외국자본의 위협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이다. 개별기업과 기업집단간의 구별도, 재벌전횡체제의 역사적 특유성도, 소유재산과 자산간의 개념차이도 임의로 넘나들고 논리의 선후와 인과관계를 뛰어넘으면서 결국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주장을 이끌어내니 가히 몽상가 집단의 연대로 불릴 만하다. 머지않아 대안연대가 초국적 외국자본은 사유재산임과 동시에 전세계 인류의 자산이므로 초국적 외국자본을 적극 옹호하자고 나선다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미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이 정리되고 비록 누더기일망정 출자총액제한제가 유지되어 SK글로벌의 부실문제는 종전의 대우그룹 등과는 달리 그룹 전체가 아닌 개별기업 차원의 문제로 축소 가능하다.

만약 SK글로벌의 존속가치가 크면 법정관리로, 청산가치가 크면 파산으로 처리하고 시장안정을 위한 세부 보완책을 강구하면 그만인 것이다. 외국인의 SK 등 상장기업 지분소유는 금융자유화, 자본자유화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직면하는 새로운 과제이며 이에 상응하는 처방이 요구될 뿐이다.

그러함에도 대안연대는 SK 등 우량개별기업의 독립경영, 전문경영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재벌그룹의 전횡체제를 온존, 강화하자는 것인가. 대안연대여,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정경유착 대신 재벌과 은행간 밀실거래인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SK그룹의 손길승 회장은 이제 원죄와도 같은 과거의 멍에를 벗어 던지자고 나선다. 박정희 정권에서 수출부실을 키운 선경(SK글로벌)이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는 자신보다 더 큰 유공(SK주)과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을 삼키는 특혜까지 누렸으면서 그런 과거를 호시절이 아니라 어찌 멍에라 부를까.

최태원 회장의 변호인단은 'SK글로벌의 부실이 70~80년대 무리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당시 고등학생이던 최회장에게 부담을 고스란히 전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한다. 최 회장 자신도 '분식회계는 경영권을 넘겨 받으면서 숙명처럼 유산받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변호인단은 먼저 한정상속의 승인신청을 해야 하지 않을까.

더욱 가관인 것은 주거래은행인 하나은행의 김승유 행장이 이번 사태의 원만한 해결에 최 회장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면서 최 회장의 석방탄원을 주도하는 것이다. 최 회장의 그룹경영권 유지를 미끼 삼아 SK글로벌의 부실문제를 SK 등 그룹 전체의 부실로 확대재생산시켜 은행들의 금융부실은 은폐하려는 것이다.

지금 채권은행단과 최 회장 측은 이를 둘러싸고 그들만의 밀고 당기는 밀실거래를 벌이는 중이다. 만약 우량계열사의 희생으로 4조원대의 해외부실을 고스란히 갚아준다면 외국의 채권은행들은 감지덕지하면서도 비웃을 노릇이다.

서울대 조동성 교수는 <조선일보> 기고에서 SK글로벌 사태와 관련하여 '과연 우리는 종합상사에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미 효험을 다한 '재벌교'의 신도들이 SK글로벌에 이른바 '생명수'를 부어넣기 위해 다시 결집하자는 것인가. 어느 누구도 돌을 던지지 않으며 시대의 사명을 다하고 이제 소멸하려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볼 따름이다.

재벌개혁의 꿈은 이루어진다

재벌개혁의 방향만 바로잡히면 꿈은 이루어진다. '개혁의 말'을 타고 가느냐 아니면 지고 가느냐는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이른바 '속도조절론'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기회가 주어질 때 실기해서는 아니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SK글로벌 문제와 관련하여 유지창 산업은행 총재는 '과거처럼 어떤 기업이나 그룹을 꼭 살려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지원하기는 힘들다'면서 '경우에 따라선 법정관리로 가거나 청산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시장이 감내할 수 있고 정책으로 통제 가능한 정도의 시장불안을 국민경제 전체의 위기상황으로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의 신용카드사 대책을 두고 참여연대가 '개혁은 간 데 없고 안정만 남았다'고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마당에 SK글로벌의 처리방향이야말로 참여정부의 개혁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내처럼 대기업들이 가공적 자산을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권력을 훔쳐가는 풍토에서' 재벌의 경영권 안정화 논리는 경찰에게 도둑을 보호하라고 하는 격이라고 한다. 만약 참여정부가 실패한 재벌에 대해서조차 경영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다면 창조적인 재벌개혁의 꿈은 처음부터 접어두는 것이 그나마 시장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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