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신문에는 중국인에 관한 기사가 심심치않게 올라온다. 그만큼 유학이든, 사업이든 아니면 관광이든 그 숫자가 상당히 많이 늘었기에 그들의 행동이 이미 눈에 띄기 시작한 탓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미국의 화장실에서 태연히 화장실 문을 열고 용변을 보다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야기, 유럽에서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백화점에 들어서서 물건을 파는 여성 앞에서 콧구멍을 아무렇지 않게 후벼 여직원이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 등등 끝없이 가십거리가 되고 있다.
이미 영주해서 잘 살고있는 중국계 화교나 기타 외모가 거의 같은 한국계나 일본계 현지인 들의 인상마저 흐리게 하고 있다.
흔히들 중국인에 대에 하는 얘기가 있다.
"중국인은 꽌시(關係)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귀기는 어렵지만 일단 사귀고 나면 의리를 지킨다. 외모는 초라해도 묻어둔 거액 현찰의 부자가 의외로 많다. 도교, 유교 등의 발생지인 만큼 동양철학에 대한 조예가 깊다" 등등의 많은 선입견들은 이미 변질된 공산 륙의 중국인 마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중국의 고대 훌륭한 전통의 맥을 연연히 잇고 있는 사람들은 300만이 넘는 재미 화교(엄밀히 말해서 華人이다)나 그 외 세계 각 국에 퍼져있는 화교, 홍콩인, 대만인, 중국계 싱가포르인 정도다.
서방세계의 중국계 화교들이 대륙중국인을 경시하는 것도 경제적인 우월감보다는 전통과 문화가 결핍된 중국 대륙인에 대한 연민과 애증의 복합적 감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륙인들의 의식구조는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고로 중국에 머물면서 서방세계인의 눈으로 그들을 보려고 하면 중국에서의 삶은 항상 스트레스의 연속일 것이다.
대로변이나 일반 대중식당은 그들의 가래침과 아무 데나 코를 풀어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다. 또한 대로변이든, 자동차에서든 마구 던지거나 버리는 쓰레기, 식당에서도 이들의 야만성은 멈추질 않는다.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거기는 중국인의 노상변소(?)다.
아무 데나 방뇨한 냄새, 더 인적이 뜸한 곳에는 여기저기 배설한 대변이 흩어져 있으며, 여름철에는 쇠파리까지 번식하여 잘못 들어갔다가는 똥 묻은 쇠파리 떼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대학가는 좀 나을까 하는 바람도 역시 기우였다. 대학가나 공공장소의 화장실에는 항상 용변 본 대변이 고여있다. 수세시설이 고장 난 게 아니다. 아니면 습관이 안 된 것도 아니다. 내가 대변 물을 안 내리고 가면 다음에 오는 사람이 무척 불쾌할 거라고 생각하는 중국인은 별로 없다. 그만큼 남을 배려하는 사상이 공산화되면서 망각되었다.
변소 문을 열어제치고 대변을 보는 것은 습관이다(공원 등 많은 공공화장실은 남녀의 구분은 엄격해도 옆 사람과의 차단용 벽이나 문이 없는 곳이 아직도 많다). 심지어는 용변도 중에 핸드폰이 울리면 바지도 안 추스른 채 밖으로 나와 전화 받는 넥타이 맨 신사 분도 여럿 목격했다.
수많은 비공산권 진영의 중국인들이 개탄한다. 경제적 상실보다 더 회복하기 어려운 이 문화와 철학의 상실은 그들의 역사적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무산계급(無産階級)인 노동자와 농민 중심의 사회주의 운동이 부패한 자본주의 국민당을 본토에서 몰아내고 해방(?)을 쟁취하여 중화민국의 시대를 1949년 9월 30일로 종말을 고하게 하고, 같은 해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1958년 대약진 운동을 거치면서 지식인 정풍운동의 기치 아래 수많은 지식인들이 독재정부를 비평하는 반동분자로 처형되었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이른바 5·16 지시에 따라 모든 지식인들은 사상 개조를 위하여 하방(下放)당했기 때문에 모든 학문 연구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모든 학문에 대한 저술은 무산계급이 써야 한다며 교수나 지식인들이 학술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공장의 노동자, 학생들이 조를 짜서 쓴 통속적으로 왜곡된 기술이 범람했다.
즉 모든 지식의 배경은 모택동 사상을 주축으로 한 무산계급, 중국공산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전제가 되었다. 문혁(文革)의 10년간 중국의 지식층은 제거되고 학문연구는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자로 몰리거나 대독초(對毒草)로 간주되었다.
정부시책에 반기를 드는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이나 처형을 면하기 위하여 낮은 포복자세로 엎드려 지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하여 가까운 사람도 밀고하여야 했다.
'남과 나는 전혀 별개의 관계다'라는 사상이 이 혼란 시대에 정립되었으며 이런 사상의 영향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재는 6000만이나 되는 충성 공산당원 중에서 나오면 되는 것이고, 일반 백성은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아무 탈없이 잘 지내는 것만이 최고의 처세법으로 여기게 되었다. 길 가던 행인이 자동차에 부딪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어도 구경꾼만 되는 것은 이들이 인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괜히 남의 일에 끼어 들어 내 신상에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관념과 상통한다.
기차역에서 애인인 듯한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머리가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 울고불고 하여도, 살짝 받았다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노인의 뺨을 때리는 새파랗게 젊은 기사를 봐도 이들은 애써 무덤덤하다.
난세에서 잘못했다가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르므로 애써 태연히 모른 척 하려고 하는 이런 중국적 사회주의적 관념의 발로가 오늘날 대륙의 중국인들을 독단적 이기주의자로 만들어 왔다.
그러므로 대륙 중국인에게는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도덕관, 즉 남을 배려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생각하는 의식의 세계와는 거리가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장애인이나 불우 이웃이나 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이런 '자원봉사'가 이들에게는 무척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기에 중국인 직원과 조화를 유지하려면 의리나 신뢰감 등을 내세우면 안 된다.
회사가 잘 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가치관의 형성이 그들에게는 어렵다. 그러므로 직장 생활도 이합집산을 밥먹듯 하니 애사정신이 있을 리 만무하다. 회사 생산품을 도둑질 해 가도 누구 하나 뭐라고 얘기하기는커녕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회사가 잘되고 못되고는 나와 상관없다"는 사회주의식 독단적 이기주의 사고가 무섭다.
남을 타고 가든, 밟고 가든 모로 가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게 최고라는 기형적 배금주의가 현재에는 만연하고 있다. 고로 이들에게 너무 논리적인 부분을 강조하지 말고 보수에 대한 조건부터 확실히 결정한 후 이득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해야 마음이 움직인다.
또한 중국인들은 한국인에 비해 약하고 인내심이 떨어진다. 사회주의의 사상주입식 교육의 영향으로 중국의 어느 지역을 가도 지방의 특색은 사람을 통해서 발견하기는 어렵다. 이미 군인처럼 획일화되었기 때문이다.
10월이 오면 추운 북쪽이나 남쪽이나 동시에 내복을 입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군대도 징병제가 아니므로 대부분 군대 생활도 안 해봤고, 중국 고유무술인 '우슈' 등도 특별한 학교나 가야 배울 수 있으므로 신체단련의 기회가 적어 체력이 약하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감기만 걸려도 링겔 주사를 처방 받는 낙후 된 의료 시스템으로 인하여 치아가 까맣게 변한 젊은 노인(?)도 많다.
21세기에 거대한 한 제국으로 다가오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중국, 우리는 그들의 지적 철학이 결여된 정신적 빈곤이나 후진성을 비평만 할 게 아니라 그들만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 파고의 격동을 꿋꿋하게 헤치고 오늘날 당당히 국제사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그들의 과정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막혔던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보다 더 가깝게 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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