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대신 날적이를 꺼내다

[홍건아 학교가자 3] 의사소통의 부재, 촌지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등록 2005.03.18 17:47수정 2005.03.18 18:55
0
원고료로 응원
10분만 일찍 나올 걸. 일에 밀려 조금만 조금만 하다 결국 늦었다. 어차피 학부모 연수회에 참석할 생각은 없었지만, 연수회 후 교과서를 나누어준다길래 그 참에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안면도 트고 학교생활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3월 9일 오전 10시, 홍건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입학생 부모들을 위한 연수회가 있었다. 연수회에 참석했던 엄마들이 삼삼오오 운동장으로 흩어져 나올 때에야 허겁지겁 학교에 도착한 나는 '엄마는 아직 안 왔어요'하며 교과서 9권을 혼자서 꿋꿋이 받아 온 윤홍건과, '무거우니 받아준다고 해도 기어이 가방에 넣는대요'하는 방과후 선생님을 '방과후 터전'까지 모셔다 드리는 것에 만족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야 했다.

그 날부터 궁금증은 나날이 증폭되었다. 윤홍건이 박스테이프를 꺼내 막무가내로 교과서를 묶어야 한다고 할 때, 주간계획서에 미리 기재되지 않은 준비물에 대해 한참 설명하는데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을 때 친구네 전화번호라도 하나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윤홍건은 초등학생이 되고 가장 달라진 것이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과 '앞에 커다란 검정 벽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누가 엄마인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아이의 친구나 그 부모를 전혀 모르는 것'과 '선생님과 안면을 어떻게 터야 할지 막막한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직은 전달력이 부족한 아이를 통해 얻는 제한된 학교 소식, 그보다 더 소상한 것을 알고 싶을 때, 혹은 알아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상머리에 앉는 대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느라 한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입학식 전날, 윤홍건이 간단한 한글과 지인들의 이름 정도만 안다는 사실을 선생님께 알리기 위해 편지를 쓸 생각을 했었다. 다음 순간 그 '하얀 봉투'가 자칫 촌지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

다행히 입학식 날 받은 가정환경조사서는 선생님과의 첫 번째 소통도구 역할을 훌륭히 해주었다. 그러나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위안하고 앉아서 기다려야 하나?


아이를 먼저 학교에 보낸 선배들은 충고한다. 어릴 적 내 어머니처럼 학교 선생님께 무조건 따라갈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해라. 공동육아라는 소수만이 선택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운 것부터 부모의 교육철학과 '일방통행 교육'의 부당함까지. 혹자는 대안학교로 도망갈 생각을 하기에 앞서 학교 운영위원이 되어 우리 공교육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더 많은 아이들이 민주적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라고 종용한다.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이다. 그러나 직장 다니며, 아이 하나 돌보며 하는 가사일과 대충 챙기는 집안대소사도 허리가 휠 지경에 무슨 슈퍼우먼이라고 학교까지 넘보겠는가.


별난 엄마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일주일을 생각한 끝에 '날적이'를 꺼냈다. 날적이(날마다 적는 이야기)는 어린이집에서 교사와 부모들간의 소통수단이었다. 쓰라고 할 때는 '매일 만나 수다 떠는 사이에 무슨 할 말이 또 있냐' 했다. 이럴 때를 일컬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하는가 보다.

답은 즉각적으로 왔다. 지금까지 궁금증은 일시에 해소되었다. 결국 문제는 내 학창시절 무의식 속에 쌓여 있던 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그 때 엄마가 찔러 넣어주시던 '흰 봉투'와 그것을 목격한 나의 수치심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어머니도 지금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시다 남들 하듯 봉투 하나 들고 교무실 문을 여셨을 것이다. 일 년 가야 한두 번도 못 오셨던 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나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 막막함을 엄마와는 다른 방법으로 풀어보자. 운영위원을 하며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뛰어다니지는 못하지만 촌지봉투 대신 날적이를 꺼내는 작은 변화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3월 17일 저녁, 보름이 넘도록 친구 전화번호 하나 못 알아오던 윤홍건이 자기 반 비상연락망을 내밀며 손가락으로 'V' 사인을 그렸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는 그렇게도 알고 싶었던 윤홍건의 '우리 동네 학교친구'를 발견했다. 우리 동네는 학교에서 꽤 떨어진 변방이라 이사를 잘못 왔나 후회막급이던 터였다.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해묵은 내 낯가림을 밀어내고 새로 발견한 윤홍건의 '우리 동네 학교친구'네와 모둠을 해볼까. 공동육아의 '공동'이 힘겨웠던 기억이 채 잊혀지지 않았지만 나는 또 다시 '공동'을 구상 중이다.

관련
기사
- 윤홍건은 아직 한글을 모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