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정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보면 주로 돌아가신 분(?)의 곡만을 연주하게 되는 것 같다.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등 어느 분도 살아계시지 않으니 말이다.
예전에 수학을 가르치는 어느 미국 선생이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곡만을 부르는 성악가에 대해 왜 죽은 사람 곡만 부르느냐고 심각하게 물어 왔던 기억이 난다. 새로 만들어지고, 누구나 들으면 흥겨워지는 대중음악을 젖혀두고, 늘상 이삼백년 전 곡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고전)음악인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서 말이다.
그렇다 보니 성악도 아닌 피아노 독주회나 음반을 통해 딱히 연주자의 히트곡(?)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게 된다. 히트곡이란 새로운 곡을 소개할 때 정말 히트되는 것인데, 항상 리바이벌만 계속하다보니 그런 개념이 클래식 연주 무대에선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지난 이삼년 사이 내게 히트곡이라 이름할 만한 곡이 생겼으니, 바로 '아리랑 변주곡'이다. 평양음악무용대학의 전권이라는 40대 작곡가가 아리랑 멜로디를 가지고, 화려하고 애잔하게 각색한 곡이다.
내가 이 곡을 히트곡(?)으로 가지게 된 배경은...
2000년 처음 평양에 연주하러 갔다가 악보를 구하게 되었다. 훈련이 잘 된 북한 피아니스트들은 누구나 이곡을 칠 줄 안다고 한다. 그곳의 제일 큰 콩쿠르에서 본선 과제 곡으로 늘상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2년의 국내 독주회 때 '내 고향의 정든 집'이라는 곡과 함께 소개를 하였는데, 정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고, 이런 익숙한 멜로디를 피아노로 듣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너무 반가웠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생소하다는 말은 우리가 그동안 정말 서구의 돌아가신 분들 곡만 연주했었기 때문일 테고, 반갑다는 말은 감상 방법을 딱히 알지 못하더라도 공감하며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에 대한 표현이리라….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어느 무대에서 연주를 하든지 간에 앙코르 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해야지만 음악회를 마칠 수 있는, 명실 공히 필자의 히트곡이 되었다. 만일 내가 북쪽에서 이곡을 연주했다면 당연히 필자만의 히트 곡은 안 되었겠지만 말이다.
특별히 감상 방법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아리랑 멜로디가 나온 후, 다시 반복될 때마다 왼손의 리듬이 점차 분화하는데, 처음엔 한 박에 두 개, 다음엔 세 개, 네 개로 증가한다. 피아니스트의 손은 당연히 더 바빠지면서 현란하고 화려한 테크닉의 과시가 있게 된다.